본문 바로가기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살전 4장 16절 ~ 5장 11절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 주약교회 주일설교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그것이 살아 있는 날을 더 소중히 여기도록 해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애도는 더 했던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죽은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재림의 혜택을 살아있는 자만큼 누리지 못할 것이라 걱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이들 때문에 슬퍼하는 우리에게 당신만을 의지하도록 가르쳐 세상에 대한 애착을 치료하고자 하신다(요한 크리스소스톰).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죽은 이들을 두고 울며 슬퍼하는 것은 이해할 만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절망에 빠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유튜브 영상설교의 사운드가 하워링이 심해 음성을 단조롭게 해서 듣기 쉽게 다시 편집했습니다. 영상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올수 있도록 썸네일을 제거했습니다.)


1. 서로 위로하라

 

재림 전에 죽은 성도들로 인하여 근심하는 이들에게 참된 위로는 무엇인가? 재림하실 때 그들을 데리고 오시되 살아남은 자들보다 먼저 오실 것이다. 죽은 자들이 그날에는 살아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주와 함께 항상 있을 것이다. 주님 안에서는 죽임이 영원한 죽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바울은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사건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산자보다 더 우선적으로 참여할 것이라 확언한다. 산자나 죽은 자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사랑한 이들이 믿음 없이 죽은 이들과 달리 죽어 복된 곳에 간다는 것을 아는 특권을 지녔으며 그래서 즐거워할 수 있다(암브로시우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죽어 없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말이다. 도리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는 잠이 들었으며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는 여행을 떠났으며 주님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이다.”

 

(12:2-3)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2. 밤에 도둑같이 임할 주의 날

 

바울은 종말에 관해 자세히 알려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이를 말리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종말이 있다는 사실이고 우리는 그날을 고대하며 훌륭하게 살아야 한다(오리게네스, 요한 크리소스톰). 종말이 올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가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심을 우리는 안다(테오도레투스). 그래서 우리는 늘 준비하고 깨어 있을 수 있다.

젊다고 안심하지도 말고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말한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갑자기 임한다.”

(24:38-39)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임신한 여자는 자기 태 안에 태아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는 모른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알지만 그때가 언제라고 확실하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주의 날은 구약에서 종말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이다 그 날에 하나님이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악을 소멸하시고, 그의 백성을 신원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도둑 같이 예기치 못한 때에 신속하게 임할 것이다.

(24:10-13)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살아있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향한 태도는 무엇인가? 그날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 날을 대비하는 삶이다. 그 날이 어둠에 있던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오겠지만, 영적인 어둠과 밤에 속하지 않은 자들,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 된다.

(25:)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3. 낮에 속한자의 삶

 

그날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 지체 간에 서로 낮에 속한 삶을 권면하는 일이다. 악을 부추기거나 유혹하기보다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을 권면해야 한다.

평안하다, 안전하다하며 취한 자들을 깨워서 근신하는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그날 우리가 주의 노하심에 이르지 않고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잇든지 죽어 잠을 자고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같이 사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쯤 깨어 있는 채로 자야 한다. 잠든 사람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밤중이라도 자주 잠에서 깨어 하나님께 찬미를 바쳐야 한다. 그분을 위하여 깨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늘 깨어 있다는 천사들처럼 되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교육자).

신자들은 허를 찔려서는 안 된다. 밤과 어둠의 자녀와는 다른 빛과 낮의 자녀에게는 주의 날이 놀람으로 임하지 않는다. 하지만 빛과 낮의 자녀도 그날까지는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졸고 술에 취하는 것은 밤에나 할 법한 행동으로서 이들의 새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 신자들은 낮에 속한 자로서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써야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언제든 있을 수 있으니 잠들지 않고 늘 깨어 준비한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술 취한 것처럼 방종하지 않고 종말을 기다리는 자답게 적절히 행동하는 것이다.


4.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

 

(2:1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누구보다 더 계속해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워줄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3:12-13)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전도서 4:12-13)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