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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디모데후서 4장 6-8절 선한 싸움을 싸우고

 

  첫 사역지, 2000년 크리스마스를 지난 새벽한시 한 슬픈 소식을 또한 들었습니다. 동아대병원에서 암으로 5년간 투병하던 사랑하는 박병윤 형제가 스물다섯의 나이로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눈물을 금할 수 없었고, 그의 성경책에서 그의 신앙의 글귀들을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메시지' 성경을 집필한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 목사가 22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피터슨 목사는 죽기 직전까지 폐렴으로 호스피스 치료를 받았다.(20181023)

피터슨 목사의 유족들은 NavPress와의 인터뷰에서 "목사로 살면서 항상 안식일로 기념했던 월요일날 돌아가신 것이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평생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온 목사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온전함 안으로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안심이 된다"고 전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마지막으로 유족들에게 "Let's Go"라는 말을 남겼다.

  피터슨 목사는 생전에 약 35권의 책을 저술했다. 피터슨 목사의 가장 유명한 책은 의심할 바 없이 '메시지'(The Message)이다. 성경을 현대어로 직접 번역한 '메시지' 성경은 말씀이 가진 본래의 힘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한 길 가는 순례자', '유진 피터슨 목회 멘토링 시리즈', '물총새에 불이 붙듯' 30여권의 책을 써냈다.

 

  오늘 본문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고 바울은 적고 있다. ‘떠난다라는 것은 배가 항구에 닻줄에 묶여 정박해 있다가 풀려 놓여져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이 땅을 떠나야할 촉박한 시기에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서신서를 남겨두고 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아가리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도리어,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사자의 입에서 건지심을 받았느니라.(딤후 4:17)”고 과거형으로 덧붙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딤후 4:18)” 자신의 순교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다.”

바울 사도는 바친다라고 하지 않고 바쳐 진다고 한다. 하나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따라 부어지듯그리스도를 섬기는 가운데 자신이 죽임을 당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께 바쳐지는 포도주로 표현된다. 참된 신앙을 위하여 자신의 피가 바쳐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고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고 한다.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낙담한 제자를 위로하고, 용기를 가지라고 한다. “할 바를 모두 다 하고 영광스러운 종말을 맞는 나는 화관(면류관)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친다. 이 서간 전체가 위로의 말이고 일종의 유언장이다.

경기를 하자면 많이 애써야 한다. 경기가 끝날 때 어떤 이는 승리하고 다른 이들은 망신을 당한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 종려나무 가지나 화관이 수여되는 일이 있는가?

 

(116:6-7)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씩씩하게 경기를 치른 이는 이 위로의 말을 가슴에 담는다. 바울 사도도 이런 마음으로 한 것이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고나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다.”

이 땅의 삶이라는 경기를 만족스럽게 완수했고 그래서 주님께서 너에게 잘해 주셨으니이제 평온으로 돌아가라 한다. 그 안식은 그들의 행실에 따른 대가가 아니라 너그러우신 하나님께서 당신께 희망을 둔 이들에게 내리시는 은총이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이러한 여정으로 보았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만나 그의 인생을 회고하며 또 새롭게 각오하는 고별설교가 나온다.

바울은 손은 어떤 손이었을까? 천막을 깁는 고생스러운 일을 하느라 뼈마디 굵어지고 거칠어지고 투박해진 손이었을 것이다. 복음 전하러 다니느라 그의 신발도 헤어지고 아마 발에도 굳은살이 짙게 배였을 것이다. 오순절 전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계획으로 시간을 아껴 사역하는 바울, 밀레도에 머무는 동안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한다.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0-24)

 

 

 한편,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 경기에 비유합니다. 고린도 전서의 주 무대인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아주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아테네는 올림픽의 발상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고린도 역시 올림픽 경기와 무관하지 않았겠지요. 특히 고린도에서는 올림픽 다음으로 큰 운동경기인 이스티미아라는 경기가 3년마다 열렸다고 합니다. 이 운동 경기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종목이 육상 경기, 달리기와 권투 시합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던 운동 경기, 그 중에서도 달리기와 권투 경기에 신앙생활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27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 선생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이 선한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이 싸움을 싸운 것이다. 그리고 마치 운동선수가 골인지점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듯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달려갈 길을 마친 것이다. 믿음을 지킨 것이다.

 

죽음 앞에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한해를 돌아보며 또 인생의 어느 한 시점, “나는 할 일을 다했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되길 바란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내게 그것을 씌워 주실 것이다. 마지막 순교의 현장 앞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고 말하는 그 마당에 주님께서 씌워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는 믿음의 경주자 예수의 좋은 군사인 바울의 그 감격에 찬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 면류관은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바로 여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세상 속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우리들에게 언젠가 분명히 주어질 것이 바로 이 의의 면류관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무엇인지 압니까? 바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을 마칠 때 우리의 삶에 다시 태어나도 이 보다 더 잘 살수는 없다고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신 앞에 외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찬양_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순례자의 노래)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그 거룩한곳 아버지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간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서

저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찌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