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가? 이 타락한 지구에서 질그릇들끼리 부딪히며 사는 삶은 우리의 환상을 깨뜨려 버렸고,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함으로써 삶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조차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일은 웬만해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기독교적 노력”을 포함하여 아무리 많은 노력을 쏟아 부어도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항상 흘러가게 만들수는 없다.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 모든 것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된다해도, 우리의 영혼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는다.
1. 믿음안에 확고하게 섬 (너만은)
본문의 뼈대를 이루는 단어는 바로 ‘그러나 너는’이다. 세상의 타락과 종교적 허식과 그릇된 가르침의 홍수 속에서도 ‘그러나 너만은’ 세상과 구별되라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를 자신의 틀 속으로 밀어 넣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롬12:2)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약한 갈대처럼 되지 말라. 도리어 태풍이 불어도 꿈쩍 않는 반석처럼 버텨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며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바울은 먼저 디모데에게 과거를 회상시키고 있다. ‘네가 과연 보고 알았다’는 것이다. 10절에서 13절은 과거에 걸어온 길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14절에서 17절은 ‘그러므로 너는 계속 그것을 하라’는 미래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바울사도는 위안이 되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충분히 굳건함을 보여주었으며 그렇게 한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분은 나의 화관을 더욱 빛나게 만드셨다.”(요한 크리스소틈 『디모데후서 강해』)
(1) 과거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그러나, 디모데 너만은 그들과 다르게 나의 교훈과 행실과 믿음을 따라오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바울이 오래참음과 사랑 인내 핍박 고난 어떠한 핍박을 받은 것 등을 열거하는 것이 무슨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고생한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못해 서운한 마음으로 떠벌리는 것인가? 아니다. 디모데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이라는 것이다. 건물을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모델하우스가 필요하다.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배울 때는 숙달된 조교가 필요하다. 자신이 하나의 신앙의 모델임을 제시하며 그것을 따라 오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살았던 생활과 그가 견딘 고난들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는 거짓선생들이 방종하게 살았던 것과는 달리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의 군사로 전쟁터에 서서 고통과 맞부딪쳤던 것이다. ‘인내’ ‘참음’ 이런 것은 그가 당한 ‘핍박’과 ‘고난’속에서 일구어낸 결실이었다.
특히 갈라디아 세도시인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을 언급하는 데 이는 디모데가 루스드라의 시민이었다. 바울이 이 곳에서 적대적인 폭도들에 의해 돌을 맞고 그 도시에서 끌려나와 죽음의 하수도에 버려졌을 때 디모데가 그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했기에’ 핍박을 받았던 것이다. 디모데도 동일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우리는 질문한다. 그 길은 좁고 힘든데 어떻게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고 할 수 있는가?“ 바울 사도는 시련이라는 것의 본성 때문에 그 길이 힘들다고 했지만, 기꺼이 가는 이에게 그 길은 편한 것이다. 본성에 따라서는 견딜 수 없는 것도 열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가벼워질 수 있다. 고난을 겪은 사도들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치욕을 당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 사실을 기뻐하며 돌아온 일을 기억해야 한다.(요한크리스스톰 『나사로와 부자』)
(행 5:40-42)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수련회 갈려고 기를 쓰니까 집안의 반대 직장의 어려움에 부딪힌다. 예배시간을 지키려고 애를 쓰니까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든 것이다.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세상의 가치와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내 삶에 고난이 있는 것은 내가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면 딱 맞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요15:20) 라고 했다. 세상과 다르니 빛이 어둠에 비추이니 어둠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예따 모르겠다 술먹을 때 술먹고 세상과 더불어 살자 하면서 동화하면 핍박이 없다. 또 이누무 세상 불심판에 확 망해뿌라 하면서 혼자 기도원 어디가서 숨는 다면 핍박도 없다. 하지만, 세상과 그리스도 안에 동시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핍박이 가해진다.
악한 사람들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그들에게 발전은 좋은 길로의 발전이 아니라 악한데 더 지혜로와 지는 거꾸로 된 발전이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이다.” 바울사도는 말한다. 원수들이 그들을 공격한다. 그래서 이승의 삶이라는 여행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 늘 무장한 채 야영 생활을 해야 한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진영에서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끊임없이 경계하고자 한다면, 바울 사도의 이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설교집』)
(딤후 2:3-4)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2) 미래
바울은 이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로부터 디모데를 구별하기 위하여 ‘그러나 니는’이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악한 자들이 속이고 또 속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이미 배운것에 거하라는 것이다. 디모데가 전할 것은 새롭게 연구하고 발견할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서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면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다(1:13,2:2)
2.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바울에서 배우고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성경이다. 이 성경에 거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 스며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은 시나 소설이나 역사책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쓰신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다. 이 성경의 목적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그분이 죽어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생명으로 다시사셨다는 것이다. 구약은 이 오실 주님을 말하고 복음서는 바로 오신주님의 이땅의 모습을 그려준다. 사도행전은 이 예수의 복음이 예루살렘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는 확장을 보여준다.
서신서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계시된 교회속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고, 계시록은 이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책이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래서 결국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을 붙들지 않기 때문이다. 1주일에 설교 한 두번 듣는 영성으로 식사시간에 5초 기도하는 영성으로 하나님의 선한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은 없다. 있다면, 시대가 하도 악해서 그런 사람을 특별히 보낸는 지 모른다. 말씀보기를 게을리 말자. 컴퓨터 게임의 영성은 pc방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있는데 말씀은 주일날 예배때 한번 편다면 어떻게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겠는가? 비디오 텔레비젼의 영성 앞에서는 일주일에 열시간 스무시간 교육받는데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시간은 너무 적지 않은가?
소그룹모임 큐티나눔하고 에스라 성경공부하고 예배 말씀 깊이 새겨듣고 성경암송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 질 수가 없다. 왜? 보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릴 수 있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을 제대로 아는 이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화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 우리는 자유인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일이 있고 일어나도록 놓아두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한 일도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모든 일이 그분의 뜻에 따라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뜻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있다. 그분께서 모르는 일이란 없다. (요한크리소스톰 『디모데후서 강해』)
▶ 정곡을 콕 찌르며
이 시대 사람들은 교회에 미치지 말라고 한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은 예배조차도 정착하지 못하고 교회에 아웃사이드로 돌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처럼 교회에서는 교인처럼 행세하고 적당히 산다.
“그러나 너는” “확고하게 서라, 네가 비록 젊고 경험이 부족하고 소심하고 육체가 허약해도 걱정하지 말고 배우고 확신한 하나님 말씀에 거하라. 이것이 너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강하게 무장시켜 줄 것이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고 기도하며 말씀따라 살기를 몸부림쳐라 그러면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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