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결생활에 대한 두 번째 촉구(1-6절)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로 고통을 맟으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의 죽음으로 사람들의 죄와 그의 관계가 종식되었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그들의 형벌을 담당하신 것이다. 그는 ‘죄 속에서’ 혹은 ‘죄 아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to sin) 죽었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비로소 연합되어 그의 죽음과 부활을 누리는 자들은 첫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결과의 죄와의 관계를 단호하게 끊고, 둘째로 그들의 여생을 육체의 쾌락추구에 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전폭적으로 바칠 것을 깨닫고 명심해야 한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롬 6:10-12)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신자의 지상생활은 회심 이전의 지나간 때와 회심이후의 육체의 남은 때로 양분된다. 그는 후자의 시기를 전자의 특징대로 탕진해서는 안 된다. 회심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인의 뜻을 좇아 살았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로 예비된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게 되어있다.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롬 14: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실제로 요청되는 것(7-11절)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갈 뿐 아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다. 성경이 우리를 깨어 있게 채찍질 해주는 말씀은 바로 이 종말론적인 신앙이다. 이 땅에서의 시간이 또한 이 땅이 얼마 남지 않았고, 도적같이 생각지도 못한 때 예수님이 임하신다는 것이다. 종말을 아는 자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게 되고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일 죽일터이면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한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종말이 자기 인생의 종말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하지만, 종말이후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한다면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다. 고3이 졸업이 오는 것을 알고서 졸업이 목적이라면 어떻게든 시간만 잘 보내고, 재밌게 놀려는 계획만 세울 것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수능시험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의 졸업이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을 믿고, 또 지금의 학교내신이 가야할 직장과 대학교에 영향이 있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하루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믿는가? 우리의 기도의 수준은 종말의 가까움을 아는 절박함이 있는가? 의례히 행하는 종교적인 의무인가? 우리가 좀 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또한, 우리는 과연 열심히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말과 혀로만 떠들어 대고 있는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는데 우리의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어느 정도까지 덮어줄 수 있는 크기인가?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며, 서로 봉사하기를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것이다.
대접하고 봉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가 남을 대접했는데 타인이 대접을 못 받는 다는 원망의 마음을 갖는 섭섭함이 없도록 열심히 사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봉사는 마치 내가 잘나서 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청지기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돈으로 섬긴다면, 유세떨 듯이 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돈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맡겼기에 청기지 마음으로 겸손 히 베풀어야 한다. 말로 사람들을 잘 가르친다면 자신이 남보다 똑똑하기에 가르치는 위치에 선 것 처럼 교만히 행할 것이 아니라, 뻣뻣한 입술에 혀가 둔한 자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청지기같이 섬겨야 하는 것이다. 섬김의 베이직에는 이 사랑의 마음이 깔려져야 한다.
말하려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한다면 사랑의 실천으로 봉사하려는 자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 같이 하라고 말한다. 청지기의 자세는 바로 교만이 아닌 겸손이다. 맡기신 자가 주인이 되시기에 말이다. 우리는 분명 시간과 돈과 능력과 건강 내게 있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남에게 베풀고 봉사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으로 봉사할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다.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는 교회와 부서를 섬기면서 그 분의 영광을 가로채는 삯꾼이가 아니면 온전히 주인되신 그 분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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