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절 고난 중에 있는 독자들에게: 개인적 명령들
17-18절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명령의 이유
19절 고난에 대한 결론적 권면
배경이해
고난은 구약과 신약을 포함한 기독교 역사 내내 회자된 해묵은 주제다. 개인과 공동체를 포함해 그 범위와 이유도 다양하다. 때로 이유도 모르고 경험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편지 독자들의 경우는 이유가 분명하다. 진리를 거절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생기는 것이다. 황제 명령에 의해 로마 제국 전역에 내려진 탄압은 아니다. 지역적 혹은 관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인 듯하다. 경제적 위협과 겁박을 수반하며 때로 신체적 위해도 있다.
1. Braek
인간으로 사는 일 자체가 고난을 받는 일이다. 믿든지 안 믿든지 마찬가지다. 다만 무슨 일 때문에 고난을 받고, 무엇을 위하여 고난 받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가치관으로 사는지를 알 수 있다. 가치에 자기를 던지는 고난이 있고, 악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이 있다.
2. Bible
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즐거워하라_
세상에는 숱한 고난이 있다. 그중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한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면, 그것은 치욕이 아니라 영광이다. 그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즐거워할 일이다. 그것인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요, 그 사망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불시험이 다가올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맞아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시련하려고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로 그 분이 영광으로 오시는 때에 그 분 앞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구선수에게 몸을 향해 야구공이 자꾸만 던져져 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많은 다양한 공을 대함으로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 자신의 공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하는 연단의 기회인 것이다. 그런데, 공이 자꾸 자기를 향해 온다고 짜증을 부리는 야구선수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시험이 안오는 것을 이상히 여겨야 하는데, 시험이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 내 모습이 아닌가? ‘당연히 올 것이 왔구나’ ‘이제 세상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좀 알아 보는 구나’ ‘이 시련이 나를 얼마나 신앙으로 발돋움 시키고 연단시킬까?’ 이런 마음으로 잠간의 고난 후에 올 큰 영광의 때를 즐거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단련시키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 고난은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바울의 표현을 빌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이요 ‘예수의 흔적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다. 마치 과거 군사독재정권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지고 감옥살이한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면 영웅이 되듯,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 받는 자면 그의 영광의 때에 그 수치와 고난이 하나도 빠짐없이 영광이 되는 것이다.
② 악행으로 고난 받지 말라_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들이다. 따라서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으로 고난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은 시작될 것이다. 그날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주 앞에 설 수 없다.
그렇게, 고난을 받아야지 해서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에 간섭해서 고난 받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는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한다. 고난은 그 당시에 부끄럽고 힘들다. 하지만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너희는 기뻐 뛰놀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며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예수믿은 것도 감사한데, 고난을 통해 면류관까지 얹어주시려나이까? 아니, 천국도 감사한데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허락하시나이까?”
③ 고난 중에 하나님께 의탁하라-
우리 힘으로 고난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의 순간에 우리 영혼을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난은 창조
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받는 고난이어야 한다.그것이 축복이요 생명이 될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고난받는 자들은 그 영혼을 조물주께 부탁해야한다. 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에 보응하시는 것을 알고 이 땅에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분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까지 심판하시는 분임을 깊이 깨달아 혹은 고난이 경각에 달아 죽음의 가능성에 까지 직면했다면 우리 영혼을 주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심판주로 믿고 있는가?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게 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잠11:31) 세상이 나를 악인으로 ‘야수장이’ 혹은 ‘환자’ 혹은 ‘염병 같은’ 이라고 몰아쳐도 그 모든 것을 결국 심판하실 주님께서 나를 ‘선인’으로 인쳐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할 수 있겠는가?
3. Be Live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기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고난을 수용하고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 고난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누리는 사람이다. 악을 미워하여 당하는 고난이요 의를 추구하여 당하는 고난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만물의 마지막,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를 계속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고난받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받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무엇인가? 이제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하나님의 때가 얼마남지 않았으니 세상을 거스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해 당하는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이 서신을 받던 흩어진 나그네인 신앙의 유대인들은 네로황제의 핍박기속에 사자의 밥이 되고, 검투장의 유흥거리와, 밤을 밝히는 화형대의 제물로 드려졌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고난 당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 시대에 베드로사도의 이 말씀은 어떻게 들려지는가? 우리자신의 안주하는 신앙을 벗고 전투적 신앙으로 거듭날 것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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