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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후서 강해

베드로전서 3장 1-7절 아내들이여, 남편들이여

 

   고대사회에서 여성과 종은 둘 다 열등한 존재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윤리의 주체는 가부장적 사회의 남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베드로사도는 둘 다에 대해 존엄성을 부여하고, 남편과 아내가 함께 유업을 받을 자로서 영적 동등성을 강조한다. 바울사도도 부부들에게 서로 복종하라고 권고한다. 아내의 복종이 남편의 사랑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5:21-28)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아내들은 가정에서는 순종하지 않으면서 가정밖에서는 잘 순종하고 있지 않는가?밖에서는 부지런하고, 참으로 겸손히 행하면서도 집안에서는 게으르고, 거만해 있지 않은가?

특히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 말씀에 순종치 않는 남편이라도 말없이 행하는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너희의 경건하고 순결한 행위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닌 행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에서 믿는 아내가 선행하는 것을 본다면 불신 남편까지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들이여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행위로서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관용하는 주인에게뿐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자유하나 하나님의 종들처럼 주를 위하여 순복하듯이 말입니다.

믿는 남편이라면 더욱 믿음안에서 주께서 가정에 세우신 머리로 알고 존경하며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가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존경하며 순종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믿지 않는 부모님이라도 구원할 만한 성실하고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아내의 단장은 외모가 아닌 마음의 숨은 사람으로 하라고 권면한다.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는 질문한다. 외모를 단장하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옷을 잘 입거나 미용 도구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보다는 시간과 에너지의 비중과 관심의 중요한 영역이 너무 그곳에 함몰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여인들의 값진 단장이 무엇입니까? 머리를 치장하고,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 입니까? 도리어 썩어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마음에 숨은 사람은 단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우리의 단장은 외모보다 심령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악세사리로 그 사람을 판단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도 그렇게 판단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의 눈을 의식하면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편의와 멋을 위해 옷을 사면서 혹은 사지 못해 안달해 하면서도 우리 내면이 자만과 게으름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해 하지 않습니까? 13평아파트가 좁다고 불평하면서 자기 마음이 자기 이기심으로 좁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한탄이 없는 우리가 아닙니까?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마음의 숨은 사람을 단장하는 일에 더 열심을 가져야 한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란 어떤 불편스러운 상황도 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요구를 견디는 심정이다.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제, 거룩한 부녀들이 남편에게 이와같은 것으로 순복한 것과 특히 사라가 아브라함을 라 칭하여 복종한 것을 예로 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여인들이었는데 그 소망이 남편을 로 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다고 하면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의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는가?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너희도 선을 행하고 아무리 놀랄 만한 일에도 무서워 하지 않으면 사라의 딸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6v).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우리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2. 남편들아

 

이제, 남편들에게 이와같이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에 대해 순복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동거하고 귀히 여기는 자세를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직장의 일로 아내와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 많다면 자주 연락해서 함께 있음을 인식시켜 주어야 하고, 아내를 귀히여기는 섬김의 자세를 잊지 않아서 아내가 귀히 여김을 받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집안정리, 청소.... 작은 일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을 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으로 이해하면서 살아야 하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귀히 여겨야 하는가?

당시 이 서신을 받던 소아시아 지역은 헬라문화권의 지배아래 있었다. 그들은 여자를 도덕적, 지적, 육체적으로 연약한 자로 여겨 그것을 열등하고 무능한 것으로 치부했다. 플라톤은 내가 동물로, 이방인으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신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약함에 대해 이것은 여성을 더 많이 배려해야할 이유로 베드로는 제시한다. 또한 영적 유업을 함께받을 동등한 인격자이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인 기도는 사람과의 관계 특히 가장 가까운 아내의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약함을 볼 때 약한 자의 연약함을 담당하는 자세로 보아야지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들이 배우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기도가 막힐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의 열매를 요구받는다. 가장 가까운 부부간에 서로 살피고 돌보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남편들은 혹시 밖에서는 잘하면서 집에서는 잘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제자훈련교제에 이런 일화가 있다.

유명한 전도자인 휫필드는 한번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 저 쪽에 서 있는 저 남자 분은 크리스천인가요?‘

그러자 목사님의 대답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의 부인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지 않았거든요.’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