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성전미문에 올라가다가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언 (행3:6)하는데 걷기도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한다. 이에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 달려 나아가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의 이름으로 이것을 하였다고 증거할 때에 남자만 오천명이 이 말씀을 듣고 믿었다.
그러자 이튿날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 대제사장 안나스가 참예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고 심문한다.
이에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이다” 라고 강력히 증거한다. (행4:11)
◆ 본문과 씨름하며
1. 산돌이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아 죽음에서 살아났다.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해야할 자칭 건축자들인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분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예수는 ‘보배로운 산 돌’로 비유된다. ‘산 돌’의 개념은 실제 유대인들 사이에서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구약성경에 정통한 유대인은 다니엘서의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온 신상을 무너뜨리신 산 돌의 예언을, 모세과 이끄는 광야의 조상들을 먹인 물이 돌을 쳤을 때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절망적 상황을 풀어줄 메시야로서 '산 돌‘을 그들은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바로 예수가 그 ‘산 돌’ 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베드로는 너희도 ‘산 돌 같이’ 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아니라 어린양 같은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너희도 ‘산 돌’이라는 것이다. 마치 자석에 붙어 있는 못이 자석처럼 자성을 발하듯이 ‘산 돌’이신 예수의 피에 적셔진 너희는 ‘산 돌’같이 된 것이다.
우리는 ‘산 돌’로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바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직접 들려주신 말처럼 ‘네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했듯이 이 복음을 들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전 곧 교회가 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 것이다. 구약의 제사장이 무엇을 했는가?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대신 양이나 소의 제물의 죽음을 통해 고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가 모두가 바로 거룩한 제사장이 된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전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구약의 제사제도를 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분 앞에 누구든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이다.
우리는 천주교에서 처럼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사제가 마리아에게 마리아가 예수님께 죄를 고해서 용서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예수의 피에 의지해서 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신분은 바로 ‘거룩한 제사장’이다. 하지만, 이것도 알기만 하고 써먹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인가? 1억이 있어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돈이지만, 어디 장독에 숨겨두었다가 죽어버리면 휴지 조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하고 용서받는 이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의 말인가? 아니다. 구약성경에도 기록된 말씀이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 예수는 믿는 자에게는 ‘보배’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건축자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 그들에게는 거절당하신 것이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된다. 요즘처럼 아스팔트가 나 있지 않은 당시에 길가에 불필요한 돌들이 있어서 사람들이나 수레가 지날 때에 얼마나 귀찮고 껄꺼럽게 느껴졌겠는가? 예수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희는 예수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왜? 그들이 말씀을 순종치 않기 때문이다. 믿지않는 자는 바로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이다.
우리에게 예수는 어떤 분인가? 예수는 보배가 되든지 거치는 반석이 될 수 밖에 없다. “예수님 당신 때문에 내 행동에 너무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좀 잠시 어디 가 계실 수 없습니까? 죄를 지으려고 하는데 당신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군요” 라고 우리가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면 빛 가운데 행하는 자가 빛으로 오듯이 예수님을 보배롭게 여기게 되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자 하면 어둠에 행하는 자가 빛으로 오지 않고 두려워 하듯 예수님을 귀찮고 껄꺼럽게 여기는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요1:12)
우리는 머리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신자면서도 삶으로는 그 분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않는 불신자는 아닌가? 믿지않는 것의 척도는 순종함으로 나타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그 분의 말씀을 보배롭게 여기고자 하는가? 걸 거치는 돌로 여기고자 하는가?
2. 거룩한 백성인 우리
베드로사도는 이제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해서 확실히 밝혀준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성민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적 이스라엘’인 것이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다. 왕같은 제사장은 무엇인가? 바로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다. 우리가 ‘산 돌’ 예수를 영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만국을 통치하는 왕이 될 것이며, 동시에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가 될 것이다. 거룩한 구별된 나라가 되어지고, 그 분의 피의 대가로 구원함을 받은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이다.
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신분을 주셨나? 그것은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다.
“와! 나는 이런 엄청난 사람이야” 그런 자기 만족에 머물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 주신 분의 덕을 선전하여 다른 사람도 그런 은혜를 입게 해야 한다. 배고픈 거지가 어디를 뒤지다가 떡을 한 것 발견했다. “야 이제 나는 배고프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만족하면, 배고파 뒈져가고 있는 다른 거지는 어떡하겠는가? 그네들에게도 가서 “저기에 우리가 모두 나눠먹어도 풍족한 떡이 있다”고 전해야 되지 않겠는가? 바로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이렇게 바꾸어주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믿고 보니 정말 이게 좋더라” 이렇게 떠들어 대는 것이다. 실제로 좋은 것도 없는데 억지로 좋은척 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은 먼저 예수안의 좋은 것을 발견해야 한다. 이번 구정에 친척들이 모이는데,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자랑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새로 산 냉장고, 적금, 비싼 옷이 없어도 그 보다 더 고귀한 예수 안의 기쁨과 소망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가 되었다. 바울사도의 표현을 빌자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이다.
◆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는 예수님을 ‘산 돌’로만 생각하고, 우리가 그 분으로 ‘산 돌’이 된 것을 잊고 있지 않았는가? 우리의 신분이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인 것을 망각하고 있지 않았는가? 세상이 우리를 향해 학벌도 없고 얼굴도 못생기며 가난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 비아냥 거린다해도, 심지어 우리 자신 속에 ‘니도 예수쟁이냐? 죄를 짓지않겠다고 하고 또 죄짓고 니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지?’ 하면서 우리에게 사단이 독한 절망의 말들을 들려준다 해도, 우리는 본문을 통해 들려주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어서 우리주 예수께 언제든 죄를 고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고,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처럼 하나님이 택하시고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자존감은 주위의 말이나 내면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에 근거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음’을 찬양하자.
(계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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