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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후서 강해

베드로전서 1장 1-2절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가 쓴 두 통의 편지는, 성령께서 베드로 안에 빚으신 예수의 성품을 드러내 보여준다. 특권보다는 고난을 기꺼이 껴안으려는 마음, 책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 활력과 상상력을 잃지 않은 겸손이 그것이다. 베드로의 초기 이야기에서 알 수 잇듯이, 그는 골목대장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담대한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우리는 이 두 편지에서 그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말한 전혀 새로운 생명,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다.

 

그는 로마의 악명 높은 네로 황제의 핍박기에 이 편지를 적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1-2

베드로는 (편지하노니)

/사도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그네[]

/흩어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미리 아심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성령의

/순종함과(=순종함을 위하여)

/뿌림을 (얻기)위하여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너희에게

 

 

베드로.... 갈릴리 바다에서 청년시절 고기잡기에 열중하던 그가 예수님께 불려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제자가 되어 3년이라는 시간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지내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고 통곡했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여자들의 소식에 예수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달려가 빈무덤을 확인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났지만, 다시 게네사렛 바닷가에 가서 고기를 잡고, 찾아오신 예수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씀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여 주님의 양을 치는 자가 되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오심을 체험하고 나가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하여 5000명의 결신자를 얻고, 초대교회의 기둥으로서 살았던 베드로, 네로 황제의 핍박기에는 로마를 떠나 가다가 언덕길에서 환영으로 나타나신 예수가 로마를 향해 가시는 모습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퀘바디스 안나 도미네) ” “나는 네가 로마에 버려둔 십자가를 다시 지기 위해 간다는 말씀을 듣고그 걸음을 돌이켜 로마의 십자가 형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그는 이 순교의 일이 있기 전 네로의 핍박기에 이 편지를 적고 있다.

얼굴에 주름이 패이고 머리가 희끗희끗 희어진 노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편지를 적고 있는 이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라. 사도바울처럼 많은 서신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베드로전후서를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유산과 복음의 말씀을 남겨준다.


본문과 씨름하며

 

1. 흩어진 나그네인 성도

 

212절에서 이방인 중에 행실을 선하게 가진 자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희랍 교부들과 칼빈 등은 수신인이 유대교에서 회심한 자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주석가들은 전에는 백성인 아닌것으로 기술된 자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된 자들 2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로 보아, 이방인이라고 한다.

흩어져 있다는 말은 디아스포라라는 고유명사가 되어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이방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민족을 지칭하게 되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이런 지역들은 지금의 터키 일대로 당시에 로마의 속주였다. 포악하고 잔인한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던 그 시기에 로마의 속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은 많은 핍박과 시험가운데 있었다. 이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펜을 든 것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나그네일 뿐이다. 본향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떠나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참 이스라엘인 교회와 신자가 이 땅 가운데 사는 것은 바로 나그네로서의 삶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때가 온다.(1:24) 그리하여 외모로 보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17) 고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집을 사고 재산을 모으지만, 이 땅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잠시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여인숙에서 하룻밤 머물고 곳 떠나는 것 처럼 이 땅의 삶은 나그네로서 잠시 머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본향인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땅에 순례자 (philgrim)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세상 나몰라라 등지고 교회에서만 살아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사명을 마치면 언젠가 떠날 것이므로 이 땅에 궁극적인 소망을 두지 말고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살아라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땅에 복음의 스파이로 살고 있다고 어떤 신학자는 말했다. 간첩이 우리 땅에 살고 있어도 자신의 목표와 사명을 위해 사는 것이지, 곧 그 일을 이루면, 자기 땅으로 철수 하는 것 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 복음의 스파이로 나그네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심으로 선택된 자이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받은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선택함을 입은 자들이다. 우리가 이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소속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택하심을 입은 자이다. 우리 자신에게 나의 소속은 과연 어딘지 한 번 물어보자.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나 어찌 만날까? ... 그런 복음성가가 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의 영원히 살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택함받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는 나그네 길을 살고 있습니다. 이 나그네 길에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잠간의 고난이 있지만,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하신 하늘의 기업을 바라봅시다. 우리의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순수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내실 때 존귀를 얻게하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비록 우리가 예수를 보지 못하나, 그 분을 믿고 사랑하며 나아갈 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가 이땅을 떠나지만, 새로운 부활의 영광으로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기쁨으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