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님의 약속 말씀

85th 약속 _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중력에 이끌리듯 땅의 현실에 몰두하느라 영혼이 납작해진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길을 걷는다.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가 버겁기만 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성경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이것을 새롭게 해 주고 있다.

 

(24:32-39)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6:5-10)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이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정성을 다해 만든 것들을 물로 심판하시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다시 생명 보존의 계획을 도모하신 것이다.

도예가가 몇 날에 걸쳐 정성을 다해 만들고 구운 도자기들을 깨 버리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도예가가 흙으로 만든 도자기를 부수는 것도 안타까움이 있을 터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생명있는 피조물들을 포기하고 없애 버리시기로 결정하시는 일은 오죽하시겠는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시던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는 일을 하는 그 상한 마음을 우리는 과연 헤아릴 수 있을까?

 

하나님이 화가 나신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세상이 살도록 뜻하신 법도를 인간이 고의적으로 위반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악의가 없는 방관자는 동물들이다. 우선, 여기서는 하나님이 무엇을 보셨는지를 언급(5)하고, 이어서 하나님이 어떻게 느끼셨는지(6)와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로 의도하셨는지(7)를 언급한다. 하나님은 죄의 광범위함과 심각함을 보셨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 문제는 땅에 가득하다. 65~13절에 ”(하아레츠)8회나 언급되는 것을 주목하라. 여기서의 묘사는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상황의 모든 모습이다.

이런 부패가 인간의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마흐쉐보트)까지도 지배하기 때문에 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인간의 마음 역시 삐뚤어졌다.

 

본문주해는 WBC 창세기 주석을 참조했다.

5"여호와께서보시고는 다른 구절들에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개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사용된다6:12; 29:31: 22534431 . “그것은 갑작스러운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존재해 온 어떤 상황에 대한 성찰과, 그 이유로 어떤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Cassuto, 1:302; 참조 30:195015. 여기서 그 문구는 분명히 1장의 반복구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그것의 정점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심히 좋았더라1:31을 상기한다 그 대조는 아마 가장 절대적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모든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 마음의 계획들의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 구약성경의 본문들 중에서 인간의 죄악됨과 부패의 정도를 명시할 때 이처럼 명확하고 포괄적인 것은 거의 없다.

 

[ 6 ]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ni-아사'한탄하사*cn:-나함.'' 그는 그것에 격분하셨다心 一아차브. 이 세 개의 핵심 어근은 5:29에서 라멕이 노아의 이름을 지을 때도 사용했었다. “이 아들이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손의 고통으로부터 우리에게 안위를 가져오게 하소서.” 영어 번역 히브리어 본문의 반어적인 언어적 유희를 분명하게 나타낼 수 없다. 노아로 인해 위로를 얻으려는 라멕의 소망은 피조 세계에 대한 창조주의 실망과 대응한다.

후회하다또는 유감으로 여기다는 단순한 태도의 변화를 암시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후회하실때는 다른 일을 행하기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는 것은 변덕스럽다고 비난받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을지는 모르지만 성경은 그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2319참조. 삼상 1529. 그와 같은 말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교리와 또 그것과 관계가 있는 인간의 책임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지만. 신학적 체계는 성경 설화자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후회는 사람의 마음의 변화-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마음에 근심하시고." 어근 아차브그되는 사람 감정의 가장 격렬한 형태분노와

쓰라린 고통이 뒤섞인 심정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 7-8 ] “내가 쓸어버리리라는 기록으로부터 이름을 지우는 것에 대해서예를 들어171432:32-33그리고 그릇을 씻는 것에 대해서왕하 2113사용된다. 물이 때때로 이러한 결과를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에5:23),선택된 그 어휘는 아마도 인류의 완전한 절멸이 이루어지게 될 방법을 암시할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는 상세한 설명은 홍수가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한 행위를 뒤엎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바로 그 어법이 창세기 1장의 기사를 반영한다참조. 1:20, 24-30.더욱 파멸적인 문장을 상상하기가 어렵긴 하지만그래도 그것은 가냘픈 희망을 수반한다. 그것을 선언하기 위해서 사용된 용어들후회하다cn]_나함쓸어 버리다nno-마하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던中一노아미에 대한 유사 음어에 의한 언어적 유희를 암시한다.

은혜를 입다는 말은어떤 사람이 윗사람에게 간청을 할 때예를 들어, 33:8, 10나 권력 있는 사람이 비천한 사람을 도와줄 때 394사용되는 의례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때때로 사람들이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도 사용되지만예를 들어, 18:3: 33:12, 13, 16,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다고 명백하게 표현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한 예가 모세다3317. 따라서 이 문장은 노아를 구약성경의 가장 위대한 성자들 중 하나인 모세와 동등한 위치에 두고 있으며, 물론 우리로 하여금 노아가 다가오는 대홍수를 피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앤더슨(B. W. Anderson. JBL 97[1978] 38)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과도기적 도입부(6:9-10)

1. 피조 세계의 강포(6:11-12)

2. 첫 번째 신의 담화: 멸하기로 결심하심(6:13-22)

3. 두 번째 신의 담화: “방주로 들어가라”(7:1-10

4. 흥수의 시작(7:11-16)

5. 불어나는 물(7:17-24)

하나님께서 노아를 권념하심

6. 줄어드는 물(8:1-5)

7. 땅의 마름(8:6-14)

8. 세 번째 신의 담화: “방주를 떠나라”(8:15-19)

9. 질서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8:2022)

10. 네 번째 신의 담화: 언약(9:1-17)

과도기적 종결부(9:18-19)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주목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동물들도 세상에 부패에 기여했거나 아니면 죄 없는 희생자이다.

8절 대부분의 성경역본들은 노아가 여호와께 호의를 발견했다고 번역한다(개역개정 은혜를 입었더라”) 일부는 노아가 여호와께 호의를 획득했다”(win)고 번역한다(NEB), enf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호의를 발견하는 자로 지정된 사람이 가진 도덕적인 자격을 나타내지 낳는다. 후자는 반대다. “발견하다는 의미가 더지지 받는다. 은혜는 발견되고 주어지는 것이지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9-10절은 노아를 세대들의 목록(그의 세 아들의 목록)의 시작점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노아 자신의 세대에서 독특한 삶을 살았던 존재로도 제시한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니. 이 세문장은 히브리어에서 단 열 개의 단어로만 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보면, 노아의 행위를 묘사하는 이 부분은 노아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노아의 이름으로 끝난다. 저자는 노아를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밀어 넣고 노아가 최대한 주목받게 한다.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노아를 통해 은혜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패괴한 사람들 가운데서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아껴 볼 가치가 없을 정도로 사회가 타락해 버린 상황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궁극적으로 인생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다. 근심하고 한탄하시지만 그것이 인생들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약화시키지 못한다.

은혜 받은 자 노아가 말씀을 믿고 준행하기 위해 흘린 땀을 보라.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쓸만한 나무는 대부분 낮은 곳에 있다. 그것을 베어 산꼭대로 옮겨 와 방주를 짓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 길이가 약 130.5m, 너비가 약 22m, 높이가 약 13.4m의 방주를 짓는다는 것은 당시의 문명을 고려해 볼 때 결코 쉽않는 것이었다.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22)’하기까지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오랜 기간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는 오지 않고 사람들의 비웃음은 계속되었다. 사실 노아는 홍수를 경험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그 말씀에 준행한다.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는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 그는 또 다른 수고의 땀을 흘린다.

하나님의 생명보존 계획은 이렇게 믿는 자 노아의 땀을 통해서 현실화 된다. 노아의 가슴은 하나님의 가슴에 포개어졌던 모양이다. 하나님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노아는 땀으로 흘려낸다.

 

 

   인간의 타락 이후로 이 세상은 다양한 재해 (hazard), 재난 (disaster), 그리고 재앙(catastrophe)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1) 그런데 크리스천은 이런 재난을 다양하게 해석한다.

유신론자는 신의 심판과 회개를 강조하고무신론적 철학자는 신의 심판이나 섭리라는 신정론을 반대하며사회-자연과학자는 사회와 자연의 원리를 따라 이성적으로 원인을 규명하고치인은 신앙과 학문의 통찰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오용하여 대중을 선동하기도 한다.2)

   지구가열학(global heating)로 인해 전 세계에 다양한 자연재해가 점증하고 인재(人災)도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생태계는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길들여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되갚아준다.3) 또한 지구촌의 도시화 덕분에 재난은 더 빠르게 확산한다. 이에 맞서 생태신학과 교회가 총체적 선교 차원에서 재난 사역(disasterministry)을 수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과 산업 그리고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자대기질을 비롯하여 생태계는 개선되었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착취한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인재(人災)이자하나님께서 생태를 보존하시려는 방책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범죄가 이런 재난을 초래했다면코로나19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확성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통하여 심판하실 때 우리의 감추어진 죄는 드러나게 되며철저한 회개를 해야 소망이 있다.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수퍼 코로나-20’과 같은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인이 절망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리가 철저히 회개한다면부활과 자비의 하나님은 무너진 잔해더미로부터 새롭게 일을 시작하실 것이다. 이런 심판과 회개를 통한 정학는 주님의 재림까지 반복될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그분은 부활의 주님이시다. 심판의 시대에 우리는 마음을 찢고 겸손히 라고 물어야 한다(1610). 그리고 이유를 깨닫고 새롭게 실천하며 회개해야 한다.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안(Justinian) 재위 당시인 AD 540년경 쥐와 벼룩을 통해 흑사병이 처음 퍼졌고 그 후 다시 확산되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에베소의 요한(507-586)은 그 재앙을 가장 위험한 역병인 인간의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역병의 처방전은 이타적 구제였다. W. Witakowski, Pseudo -Dionysius of Tel-Mahre: Chronicle. Part III (LiverpoolLiverpool University Press, 1996).

   코로나19 재난은 160개국 이상으로 확산되었기에죽음의 코로나를 덮어쓰고 위세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크리스천이 많기에이 전염병의 최종 목적은 파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재난에 직면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리심과 돌보시는 은혜를 믿고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자기 의()에 충만하여 질병과 실직 등으로 고난당하는 형제자매를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고하나님께서 재난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성학시키는 은혜를 베푸시도록 간구해야 한다(828). 그리스도인은 두려워하는 이웃을 위로하면서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과 살아계심을 선행으로 알려야 한다. 주일 오전예배나 특별한 절기 때만 교회당을 찾는 초신자나 종교인들이 오프라인 예배가 불가능한 시기에 교회에서 더 멀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보여야 한다. 또한 북한의 지하교회를 비롯하여 박해로 인해 주일에 회집하지 못하는 지구촌 형제자매를 기억하며 기도하고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