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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갈라디아서 3장 1-9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우리는 우리의 빈 잔을 주님께 가져와 채워 주시길 기도합니다. 낡아 헤어진 옷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가져와 꿰매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잔이 채워지고 우리의 옷이 꿰매어 질 때 우리는 주님을 잊어 버리고 살아갑니다.

 

마치 지붕 위를 오르려던 사람이 올라갈 도구를 찾다가 사다리를 발견하여 지붕에 대고 타고 올라간 이후에는 그 사다리를 잊어버리듯 주님을 잊어버릴 때가 없습니까?

처음에는 주님을 갈망하고 필요로 하며 그 분의 은혜의 자리에 나아와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응답되면, 이제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고, 뭔가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자만해 하지 않습니까?

 

우리 속담에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져 버리는 것을 비꼬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새해에는 수련회때는 그렇게 뜨겁게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배도 지각하고 혹은 빠져먹고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니 하나님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생각과 욕망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을 발견한 적은 없습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의 어리석음


오늘, 사도바울선생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모습을 보며 야!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고 안타까워하며 펜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뜨겁게 그렇게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진리에 확신있게 서 있던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제와서 유대인의 율법을 이야기하고 한마디로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씩이나 너희가 성령받은 것이 율법이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는 말을 대조하고 있다. 도대체 너희가 이같이 듣고 믿음으로 성령받는 그 많은 체험이 참말로 허사 였냐고 반문하고 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너무 답답해서 그렇게도 어리석으냐고 두 번이나 다그치고 있다. 바로 그들이 시작은 좋았는데 지금의 모습이 너무도 형편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됨


아브라함이 의롭다된 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가 아들을 바쳤기 때문인가? 자기고향땅을 떠나 가나안 땅에 왔기 때문인가?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하는 미덕을 베풀었기 때문인가? 이 모든 것을 부인하고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의로 여긴 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가 먼저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대가로 약속을 주신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15을 보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니! 나이 많아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이가 태어나서 후사를 잇겠다니 그것을 믿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는 아주 상식적인 대답을 했다. 당시의 풍속처럼 아이를 못 낳기에 하인을 양자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들이 법적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선언하신다.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이 많아 질 것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6)

 

그리고 하나님과 아브람사이에 약속을 수립한다. 우리가 친구들이랑 약속할 때 어떻게 하는가? 손가락을 걸지 않는가?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에 딴 말을 하지 않도록 믿고 손가락을 거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동물들의 중간을 쪼개어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기다린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이 이미 준비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다.

왜 하나님의 명확한 모습이 이 쪼갠 고기사이롤 지나가는 것일까? 그 다음 18절에 보면 대답이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다. 동물이 쪼개져 하나님이 그 사이를 지나간 결과로 계약이 세워진 것이다.

 

동물이 쪼개지고 그 사이를 지나감으로써 계약의 당사자들은 생과 사를 건 서약을 하였다. 이 일로 그들은 스스로에게 저주의 맹세를 세운 것이다. 만일 계약에 있는 약속을 어기게 되면 예식에서 동물이 쪼개진 것 처럼 그들 자신의 몸도 조각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친히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이행하셔야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보여주셨다.

또한, 아브라함은 소망없는 중에 소망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모든 믿는 자에게 복의 통로가 되었다(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