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찬양의 요청(1-3절)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시 114:) 『[1] When Israel came out of Egypt, the house of Jacob from a people of foreign tongue, [2] Judah became God's sanctuary, Israel his dominion. [3] The sea looked and fled, the Jordan turned back; [4] the mountains skipped like rams, the hills like lambs. [5] Why was it, O sea, that you fled, O Jordan, that you turned back, [6] you mountains, that you skipped like rams, you hills, like lambs? [7] Tremble, O earth, at the presence of the Lord, at the presence of the God of Jacob, [8] who turned the rock into a pool, the hard rock into springs of water.』
유진피터슨 ‘물총새에 불이 붙듯’의 시 114편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보았다.
성경은 알아듣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도는 소화하고 흡수하고 살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도 없는 성경은 영혼이 없다. 성경 없는 기도는 내용이 없다. ... 예배는 성경과 기도의 융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주읠 끄는 것은 시편 기자가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 노예생활로부터 구원받았을 때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 사건에 관련될 수 있도록 상상력을 동원한 동참을 요구하는 잊지 못할 시를 지어서 기억하는 것이다.
시 114편의 놀라운 점은 그 상상력이다. 바다가 달아나고, 요단강이 도망가고, 산들이 숫양과 어린양처럼 껑충거리며 뛰고, 바위와 돌이 물줄기를 쏟아낸다. 이 시편을 다시 보면 그 초점이 분명하다. 자연에 대한 시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시다. 이집트로부터의 탈출 사건을 기도하는 시다.
시 114편의 초점은 마술이 아닌 기도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방식을 다루는데, 자연이 거기에 어떻게 공모하는 지를 이야기한다. 우리의 편의에 맞게 역사를 짜 맞출 수 있다고 암시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땅은 우리가 사용하라고 있지 않다. 땅은 하나님의 행동 무대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1-2절)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단어 곧 대명사이다. ‘그분’의 지성소와 ‘그분’의 영토 곧 ‘하나님’의 지성소와 ‘하나님’의 영토이다. 이 기도는 우리가 현실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흔히 파악하는 두 가지 –서 있는 위치와 주변에 보이는 것- 가 더 크고 더 친밀한 어떤 것, 곧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의 행동에 포섭되어 있음을 보도록 도와준다. 역사와 장소가 예배 가운데, 기도 가운데 하나로 모아진다.
두 번째 절은 다소 장난스러운 신명으로 우리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모세가 내리치자 바다가 갈라지고 히브리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게 마른땅을 드러내었다가 그들이 다 건너자 “도망을 갔던” 길에서 돌아와 원래의 바다가 되어 이집트 사람들을 묻어 버렸다. “요단이 등을 돌렸다”는 이스라엘이 요단강 앞에 가로막혔던 사건을 기억하는 구절이다. 그래서 언약궤를 든 제사장들이 물가에 섰고, 그러자 물이 갈라지고 사람들은 걸어서 그 강을 건너 땅을 정복하기 ㅈ시작했다. “산들이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어린양처럼 뛰었다”는 모세가 저 위에서 율법을 받는 동안 폭발할 듯 부글거리고 흔들리는 산 앞에서 경외감에 빠져 시내에서 한참을 기다렸던 상황에 대한 언급이다.... 그것은 땅 자체가 그 계시에 반응하고 참여한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이다.
바울은 그것과는 다르지만 그것만큼 놀라운 이미지를 사용한다.
(롬 8:22-23)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자연의 중심에 있는 인격은 마지막 절에서 표현된다.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7-8절)
떠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 하는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거룩한 장난스러움, 믿음의 놀이에 더 가깝다. 땅과 하늘 바다와 산이 기도를 한다. 깡충거리고 춤을 춘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에 꽁꽁 묶인 우주에 사는게 아니다. 야곱의 하나님 앞에는 예측할 수 없는 생명이 있다. 변화할 수 있는 자유, “바위를 물웅덩이로, 돌을 샘물로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존재가 될 자유가 있다.
시 114편 시인은 출애굽 사건을 유일한 시의 제목으로 삼고 그 사건에 대한 것만을 노래o하는 유일한 사람이라 하겠다. 이 시인이 이해한 출애굽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이 사건은 단순히 민족사에서 길이 찬양해야하라 “해방의 사건”만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쏟아진 거룩한 하나님의 사건이라 하여 찬송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출 19:5-6)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신 4:20)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히브리 시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호고 있다면, 오경웅은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피조물들이 그분의 임재에 기꺼이 호흥하는 것으로 그렸다. 큰 산악이 패기에 찬 숫양처럼 뛰어오르고 언덕들이 어린 양같이 뛰어놀며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거꾸로 흐르는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피조된 만물의 외경이다. 구원의 사건에 온 세상이 진동하며 감격으로 동의하고 천지가 놀라운 생명사건에 기꺼워한다. 구원은 자연이나 역사와 무관한 개인적이거나 단편적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구원은 진실로 역사적 사건이며 우주적 사건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
오경웅 시편사색 114수 해방가
옛일을 살피노라! 그 옛적 이스라엘 애굽을 벗어나니 야곱의 집안은 노예살이를 벗어났네
유다는 야훼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나라가 되었도다
홍해 물결 감히 밀려오지 못했고 요단 강 넓은 물결 뒤로 물러났도다
큰 산은 숫양처럼 높이 뛰어 오르며 언덕은 새끼 양처럼 춤추듯 뛰어 놀았네
이에 묻노라 홍해여 어찌하여 밀려오지 못하였고 요단강아 어찌해서 뒤로 물러 났더냐?
큰 산아 너 어찌 양처럼 뛰어다녔고 언덕들아 너 어찌 어린양처럼 춤추었더냐?
야곱의 하나님 이 땅에 임하시니 이 땅도 두려워 벌벌 떨었구나
뉘 있어 주 앞에서 태연할 수 있으랴? 사막은 변하여 옥토되었고 굳은 바위 열려 샘물 내었네 주님의 위엄 한없이 높고 그분의 자비 가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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