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3편 거름더미에서 보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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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5-7절)
1/ 찬양의 요청(1-3절)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2/ 찬양의 이유(4-9b)
[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3/ 찬양의 크레센도(9c)
할렐루야
<NIV>
(시 113:) 『[1] Praise the LORD. Praise, O servants of the LORD, praise the name of the LORD. [2] Let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both now and forevermore. [3] From the rising of the sun to the place where it sets, the name of the LORD is to be praised. [4] The LORD is exalted over all the nations, his glory above the heavens. [5] Who is like the LORD our God, the One who sits enthroned on high, [6] who stoops down to look on the heavens and the earth? [7] He raises the poor from the dust and lifts the needy from the ash heap; [8] he seats them with princes, with the princes of their people. [9] He settles the barren woman in her home as a happy mother of children. Praise the LORD.』
캘빈 밀러는“격려의 말은‘자기혐오’라는 질병에 허덕이는 세상사람들을 치유하는 은혜의 혈청이다”라고 말했다. 격려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도구다. 격려는 좌절의 나락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방법이다. 나아가 격려는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을 분출시키는 방법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도 그 거룩한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한다. 1%의 가능성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하나님의 격려는 거룩하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실의에 빠지고 위험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할 수 있는 권능이 누구인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격려가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하나님의 격려가 없는 곳에 죽음이 있다.
유대인들의 예배 전통에서 113-118편 전체를 한 그룹의 찬양으로 생각하여 주로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 월삭제, 그리고 성전 헌당식 축제 등 고유한 예배의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올 때, ‘순례자의 노래’로 불러왔다. 114편과 118편을 제하고 모두 그 시의 서두나 마지막에 ‘할렐루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시집’이라고도 부른다.
이 시편은 단순한 찬양시가 아니라 가장 빼어난 찬양시다.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친다. 시인은 주님을 3가지 관점으로 찬양하고 있다.
첫째,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 (1-3) : 여호와의 이름
네 번에 걸쳐 찬양하라고 한다. 공간적으로는 해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시간적으로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1절)
첫 절에 3번에 걸쳐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한다. 세 번 모두 그 정도가 최상인 찬양을 요구한다. ‘찬양(히. 할렐, hallel)’은 ‘밝다, 빛나다, 화려하다, 자랑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풍성함, 환호, 축하’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때문에 밝아지며, 그분을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둘째, 높으시나 스스로 낮추시는 주님을 찬양하라 (4-6) : 여호와의 긍휼
이 시편의 중앙에서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라고 묻는다. 주님은 높으실 뿐 아니라 스스로 낮추는 분이시기에 비교 불가능하시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 영광이 하늘보다 높으심을 노래했다. 이는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니이다”(97:9)라는 선언과 같이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이시므로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우상 숭배자들은 헛된 우상 숭배를 중단하고 만물과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존재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높이 계신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사 땅의 것들을 살피신다. 그분은 이 세상을 살피시고, 인생의 웅덩이 속에 갇힌 인간을 만나려고 내려오신다. 이 높고 거룩하신 하난미이 스스로 낮추사 타락한 인간에게로 다가오신다. 그렇게 하심으로 가난한 자를 일으키신다. 극심한 고통이라는 진토에서 가난한 자를 올리신다. 하나님이 낮은 데로 다가오셔서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들어 올리신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를 이렇게 또 다른 측면에서 제시한다. 하나님이 만물을 초월하실 뿐 아니라 스스로 낮추셔서 낮고 천한 세상에 임하시고 그 세상을 사랑하신 것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와초월자이실 뿐 아니라 세상에 내재하시며 모든 역사를 선하신 계획과 뜻대로 섭리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로우신 분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가난한자를 구원하시며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에게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고 노래함으로써 세상가운데 큰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7) 십자가의 자리까지 낮아지셔서 죄인을 구속하신 구원의 역사에서 잘 드러난다. 주의 종들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함이 마땅하다.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찬양은 입술의 찬미만이 아니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는 그리스도의 새 계명에 순종하는 것으로 선포되어야한다. 성도는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뿐 아니라‘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히 13:15〜16). 우리의 존재와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드러나야 한다.
주님의 높으심을 찬양함은 그분의 낮추심을 기억함이다. 주님의 크심을 찬미함은 그분께서 작고 연약한 것을 돌보심에 감사함이다. 한없이 높고 크신 분과 연약하여 제 몸 돌보지 못하는 인생 사이에 무한한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을 어찌 숨 있는 인생이 메울 수 있으랴. 그분이 친해 해주셔야만 한다. 높으신 하나님은 당신을 낮추시는 하나님이다.
셋째, 낮은 자를 높이시는 주님을 찬송하라 (7-9)
주님이 지존하신데 낮추신 이유가 무엇인가? 낮은 자를 높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 세상의 왕들은 현 체제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주님은 운명을 역전시키시는 분이시다.
이 시편의 마지막 소절에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방백들과 대조를 이루며 잉태치 못하던 여자와 자녀를 가진 즐거운 어미가 대조를 이룬다. 진토와 거름 무더기에 있던 자들이 왕들과 함께 한다. 이 운명의 역전은 주님께서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역전 시키셨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 인간 사회에 있는 불공평한 사회제도를 바꾸어서, 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높이 들어 귀인들과 함께 앉혀 주신다고 8절에서 말한다.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우리l가 믿는 하나님은 공평의 하나님이시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서 우는 사회를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이런 사회적 모순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오경웅 시편사색 113수 궁빈휼과
야훼의 모든 종들아 은혜 주님 찬미하여라
이제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해 뜰 녘부터 해 질 녘까지 주님 거룩한 이름 찬양하여라
높디 높은데 계신 주님이시나 낮고 낮은 인생을 굽어 살피시니 주님의 위엄 세상을 감싸시고 그 영광 하늘에 가득하도다
가없이 넓으셔라! 표현할 길이 없고 감히 견줄 바 없으니 높고 크셔라
이리도 고귀한 주 겸허히 낮추시어 이 땅의 사정을 굽어보시니
가난한 인생 진토에서 구하시고 외로운 이들 진흙탕에서 건지셔서
제후들과 말머리를 같이 하게 하시고 귀족들과 그 어깨를 나란하게 하시네
아일 갖지 못했던 여인 내실에 거하게 하셔서 많은 아이의 어미 되니 그 즐거움 끝없구나
참고문헌--------------
김정준, 『시편명상』, 한국신학연구소, 1996
스티브 J. 로슨, 『Main Ides로 푸는 시편 76-150』, 김진선 옮김, 디모데, 2008
『생명의 삶 플러스』. 두란노, 2019년 7월호
오경웅, 『시편사색』, 송대선 옮김, 꽃자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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