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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3장 1-13절 너희를 위하여 갇힌 자

 

 

 

 

 

 

   에베소교인들중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힘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의 반대자들은 이것을 악용해 바울과 에베소 교인들을 이간질하려 하였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갇힌 이유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라고 한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 로마감옥에도 다양한 죄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갇힌 이유는 세상적인 이유이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벌이었다.

 

  우리의 고난의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면, 시련의 이유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시련의 폭풍속을 지나고, 위기의 벼랑끝에 매달려 있다해도 우리는 친밀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자신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잠못이루고 고통스러워 하는가? 세상적인 염려때문인가?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 성적으로 대학이나갈까, 부모님은 왜 내 맘을 몰라주지, 나는 왜 이렇게 몸이 허약할까, 대체 나는 잘하는 게 뭐지.....)

부모들이나 어른들 입장에서 (우리는 언제쯤 집을살까? 노후준비는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아이들은 빗나가지 않고 자기길을 잘 찾아갈까? 몸이 어디 아프지는 않는가? ) 이녀석이 물론 이런 고민을 우리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감옥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까? 언제 누가 나를 빼내주나를 고민하기 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고민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혹시 잘 되지 못할까 하는 것이었다.

 

 

 

성경보기 때문에 친구들의 비아냥 거림을 받고 기도하기 때문에 꼭 티를 내야되냐는 빈정거림을 당하고 전도하기 때문에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어느 종교믿든지 선하게 살면되지라고 핀잔을 듣는 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일로 가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한번 잘 믿기 위해 소외된다면 그 가운데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로 이 땅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고, 우리가 속한 곳에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가 시행되기를 바라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처럼 이 땅 가운데 이루시길 우리 삶으로 살아낼 때, 사람들이 죽어서 천당가면 되지 이 땅에서 꼭 이래야 하나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로 인해 갇힌 그는 그 비밀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말한다.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을 기록함과 같으니 읽으면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배고픈 거지가 음식있는 곳을 발견하고 가서 다른 거지에게 그 장소를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 거지가 뭐 대단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먼저 발견한 좋은 것을 다른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거지는 그 말을 믿고 따라가 보면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나요?” 푸념하지 말고, 이미 기록된 말씀에서 그 뜻을 발견하자. 우리는 기록된 말씀속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기 위해 얼마나 읽고 연구하는가?

여기 한 종이에는 시험예제가 있고 다른 종이에는 문제풀이와 답지가 있다고 하자. 우리는 답지를 놔두고 머리싸매며 풀다가 이것은 도저히 답이 없는 문제라고 단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스도의 비밀은 기록되어져있다. 읽자, 성경을 사랑하는 것은 성경을 깨끗하게 잘 모셔두는 것이 아니라, 너저분해질정도로 때가 닳도록 읽는 것이다. 우황청심원 아무리 잘 전시해도 소용없다.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밀은 다른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 세대에 열어주신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 시대는 그런면에서 참 복된세대이다. 지하철을 타면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지만, 닫히면 떠나는 것처럼 항상 복음을 들을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코로나시절 특효약이 나와서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백신 접종해 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 참 좋은 기회군하며 가지 않는 것과 공짜로 나눠주는 기회가 없어서 얻지 못하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우리에게 이 복음은 죽음을 폐하고 생명을 얻게하는 것이다. 이 복음을 지금 이세대에 우리로 듣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슬람지역 혹은 공산권지역에 태어나 복음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우리 인생은 어찌 될 뻔 했겠는가?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이 복음을 자유롭게 듣게될지 알수 없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왔어도 일제치하에서는 성경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안이숙 여사는 그런시대가 올 것이라는 경고를 듣고 성경을 외워서 옥중에서라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후사, 지체,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 후사는 대를 잇는 자식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나라를 상속할 후사로 부름받은 것이다.

재벌 2세 대통령 아들만 해도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가? 예전에 이명박 서울시장 아들만 되어도 히딩크랑 사진 찍는 특권을 누린다. 우리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이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딸라 내가 일꾼되었노라고 바울은 말한다. 일꾼된 자신의 모습을 모든 성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고 했다.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 집사를 죽이고 하나님의 이 은혜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나에게 이러한 사명을 맡기신데 대한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의 영성은 나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의 크심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크심을 알고 나의 작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중에 혹시 내가 바쁜 시간중에 예수 믿어 주고 교회나와 주는 것으로착각하는 사람이 있느냐? 바울의 신앙은 이런 지극히 작은자보다 더 작은 나를 하나님의 일꾼 귀한 일에 불러 주셨음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은혜를 받은 이유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려하고, 하나님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함이라고 했다.

경륜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천하를 통치하는 것인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우주적 지배, 통치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영원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으로 교회로 말미암아 정사와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게 된다.

우리는 감히 죄인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그 앞에 떨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죄인으로 재판관앞에 선것처럼, 잘못하고 학생 주임선생님한테 걸린 것처럼, 그런데 우리의 죄를 자기육체로 친히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게되었다. 이것이 계산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돈으로 다 계산할수 없듯 하나님앞에 당당한 자녀로 나가게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측량할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은 왜 자신의 환난을 에베소성도들의 영광이라고 하고 있는가? 자기의 환란이 저희에게 영광을 주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이 살아있으면 한 알 그대로지만, 죽음으로 많은 결실을 맺히듯 말이다. 태아의 건강은 어머니의 양분을 뽑아감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애기를 낳은 여인은 뼈도 약해지고 애기 밴 배가 남아 배도 접쳐진다. 엄마의 몸이 처녀시절 같지 않은 희생 때문에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영광을 위해 자신은 환난을 당했다. 양각을 드러나게 하기 위한 음각이 된 것이다. 우리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종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종될 수 있는 신앙의 경지에 올라야 할 것이다. 본질상 우리는 지독히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바울에게 들어난 이 복음은 바울의 삶을 바꾸었다.

빌립보서에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은 빌립보교인들이 자신이 병든 것을 알았음을 인하여 염려한다. 우리는 자신이 고생하는 것 사람들이 혹시라도 몰라줄까 염려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복음 안에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고생을 사람들이 알면 어떡할까 그것이 그의 염려였다.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면 그 만큼 하나님앞에서 상이없다. 사람들이 몰라주는 모든 수고와 선함은 오직 하나님앞에서 그날에 다 상급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수고는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행하는 일을 다 갚으신다고 말씀하셨다. 바울과 같이 우리 지체를 위해 섬기는 사랑속에 우리를 던질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붙드시도록 기도하자.

우리가 주를 위해서 신앙의 지체들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낙심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영광스러움이다. No croos No crown이다. 히딩크도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소신을 가지고 견뎌냄으로 월드컵의 쏟아지는 함성속에 서 있었다. 고난을 통과한 후에 영광스러움이 주어진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무엇인가? 있는가? 없다면 한번 주님앞에서 부끄러울 우리의 모습에 안타까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