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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말씀 묵상

시편 42 편 43 편 _ 내 영혼아 주를 바라라 _ 주약교회 수요설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시인, 우리 또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만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1

2

3

4

5

다윗

왕국

왕 없음(파괴)

유배지

귀향

1~41

42~72

73~89

90~106

107~150

하나님이 그의 왕을 대적에게서 구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레위지파, 아삽)의 경험에 대한 묘사이다.

어떻게 주가 다윗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고 나라가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는가?

유배지에서 돌아올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고국에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윗보다 위대한 왕.

네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으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41:11,12)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72:17)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89:38, 3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106:47)

하나님의 말씀을 경축하며 5권의 무게중심이 되는 시편(119)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110:1)

다윗과 그의 왕국

바벨론 포로기 이스라엘의 위기

포로기후의 삶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150:6)


 

고라자손의 마스길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시인, 우리 또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만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불안함은 여러 증상으로 나타난다. 낙망한 영혼에는 울고 싶은 억제된 슬픔이 있다. 낙망한 영혼은 불안하다. 시편 42편과 43편에 낙망과 불안이 쌍둥이처럼 함께 동반되어 등장한다. 낙망한 영혼에는 버림받은 거절감이 자리 잡고 있다.

   낙망의 원인은 다양하다. 한 원인은 영적고립이다. 성도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짐을 느끼면 낙망이 온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에, 사회적 고립도 낙망의 원인이다.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왕따 당하면 삶의 의욕을 잃는다. 무엇보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은 깊은 낙망의 상처를 남긴다. 난치병은 모든 삶의 용기를 꺾어 버리려 한다.

   낙망의 치유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낙망의 느낌을 직면해야 한다. 나를 낙망케 한 상황이나 사람들을 도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관계 안에서 낙망의 원인을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낙망해 있는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성찰의 기도이다.

낙망에 대한 궁극적 처방은 소망이다. 이 소망의 궁극적 실재는 나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이다. 시인은 자기 영혼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라고 절규한다. 이 소망을 경험하는 얼굴에는 새로운 내일을 향한 믿음과 비전의 생기가 감돈다. 그의 입술에선 찬송이 시작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깊음은 무엇일까? 그 깊은 바다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바다의 깊음은 다른 무언가의 깊음, 즉 나의 깊음을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마음에 두고 계시는 현실의 토대(바다의 깊음)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우리의 깊음)을 토대로 부르고 있다. 7절을 읽으면 분열된 자아가 통합되어 하나님과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 그 깊은 곳에 그분이 계신다. 하나님 그분이 계시기에 폭포가 소리를 지르고 파도가 우리를 휩쓸어간다.

 

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른다. 하나님은 깊은 바다시다. 해변가에 찰싹 거리는 물거품이아니시다. 날씨에따라 조석으로 지변하는 파도가 아니시다. 물거품이 사라지고 높은 파도가 숨을 죽여도 여전히 고요하며 요동치 아니하시는 깊은 바다시다. 그는 우리의 존재의 근거와 바닥이시다. 심연을 간직한 바다시다.

 

바다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또한 바다로 지으셨다. 깊은 바다이신 그분은 우리 또한 깊은 바다로 지으셨다 .깊이 다가와 우리의 깊은 곳에서 만나고자 하신다. 우리는 깊은 바다를 깊은 바다로 만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우리의 형상 따라 지음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 그 존재의 근원을 그리워 한다.

 

성경학자 데릭 키드너(Derek Kidner)는 말한다. 여기에 깊음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1:2)에 언급된 깊음이다. ‘무시무시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가 서 있을 곳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연이은 파도가 그를 삼킨다.’ (요나서 2장의 깊음)

 

찰스 스펄전은 이 깊음을 바다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악의 힘과 연관시킨다. 하나님의 깊음이 시편 기자의 깊음을 부르니 기자에게 희망이 된다고 해석했던 그 부분을 스펄전은 두려움으로 받아드렸다.

 

물결이 쉬지 않고 굽이치니, 바다가 또 다른 바다의 소리를 메아리친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흉악한 암시는 내면의 고뇌와 조화를 이룬다. 시인의 영혼은 도처에서 범람하는 고통과 극단의 공포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위엄에 흠뻑 젖은 듯하고, 하나님의 섭리는 그 고통의 물결 위에서 물기둥이 되어 움직인다. 그는 마치 맹렬한 폭풍이 사납게 몰아치는 고독한 선박이나, 거의 매순간 물에 잠기는 돛대 위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는 선원같다.”

 

시편 42 편 김광영 목사 설교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