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약교회 수요설교
김광영 목사
1/ 시인의 정신상태 (1-3절)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침묵을 지키려는 결심은 말하고 싶은 충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말하고 싶은 충동은 그의 앞에 있는 악인에 의해 유발한 것이다. 그가 사용하게 될 어떤 말도 악한 것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딜레마의 뿌리에서 우리는 시인이 욥이 제기한 문제와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악한 자의 번영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선한 말’을 하지 아니하고 침묵을 지키겠다는 결심은 그에게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다. 문제들은 그 안에서 불타오르고 있었고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끊어 오르는 억제할 없는 불평을 성숙한 말로 바꾸어 놓았다.
예수님 역시 악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예수님을 비웃었을 때조차도 잠잠하셨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그의 혀를 지키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재판장에 서셨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의 침묵에 놀란다.
(마 27:12-14)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 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베드로 또한 예수님의 모습을 말한다.
(벧전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 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시인이 혀를 지켰을지라도 여전히 마음은 휘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잠잠했지만 속으로는 소리지르고 있었다. 마음의 이 타오르는 불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향했다. 그를 모욕했던 악한 자들과 논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마음이 닻을 내렸다.
스펄전은 이 시를 보며 말한다.
‘그의 영혼의 분출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것이어서 다행이다. 오! 만약 내 북받치는 마음이 반드시 말해야 한다면, 주여, 당신과 함께 그것을 말하게 하소서.’
제목에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기록되어있다. 여두둔은 한 개인의 이름이며, 특별히 아삽이나 헤만과 함께 일한 다윗의 주요 악사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해왔다.
다윗의 시, 영장 여두둔으로 한 노래. 여두둔은 궁중, 황실의 성가대 지휘자 몇 사람, 아삽, 헤만 등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다. 다윗은 여두둔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관을 노래하게 했다. 그는 전반부(1-6절)은 인생의 모순성을 증언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긍정적으로 바뀐다. 7절부터 마지막 절 까지는 다윗은 ‘인생의 의미’를 탐구한다.
2/ 인간존재의 무상함 (4-6절) : 그의 삶에 대한 관점
[4] 여호와여 나의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는 ‘악한 자들은 번영하는데, 나는 고난을 당한다.’고 직접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의 날은 단지 ‘한 뼘 길이’박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히브리인의 척도 체계에서 가장 작은 단위이다. 네 손가락들의 너비인데, 약 7cm정도이다. 하나님은 우리 날들을 킬로미터와 광년으로 측량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뼘 길이’ 정도일 뿐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인생의 폭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표현한 것이다.
5절에서 그 비유를 개인적 생명에서 인류전체로 확장한다.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다.’ 6절을 보면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어려움과 곤경들을 해석 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시각을 획득하고 있다. C.S. Lewis가 이 세상을 ‘그림자 세상(Shadowland)’라고 부른 것은 유명하다. 이 세상은 그저 비누거품 정도만큼 견고하고 지속된다.
3/ 시인의 기도 1 (7-12절) :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그것은 분, 성공, 적들에 대하 ㄴ승리, 박해로부터 자유인가? 아니다! 그의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열망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으 ㄹ때, 그의 희망과 바램은 하나님이었다.
이제 외적인 고통의 근원은 더 이상 그의 적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적인 고통의 근원이 된 자기 자신의 범죄에 대한 인식이었다. 인생이 그토록 무상한 것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의미라면, 죄가 존재의 잠재력과 의미를 말살시키지 않도록 하는 일이 매우 중대한 일이다.
그는 신앙의 사람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그의 적들로 인한 압박과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올무들로 인해 삶의 초점을 잃게 되었다. 시인은 9절에서 다시 침묵하게 된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이번의 침묵은 앞의 것과 다르다. 악한 말을 삼가기 위해 스스로 부과한 억제가 아니다. 깨달음의 침묵이다.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시는가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위해서 기도한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4/ 시인의 기도 2 (7-13절) : 하나님을 향한 자비 간구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그는 이 땅에서 덧없이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그의 유일한 고향은 하나님이다. 나그네는 그곳 백성들로부터 보호와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완전한 법적 지위는 얻지 못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서른 살에 울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서 에게해 앞에서 통곡했다. 그가 죽을 때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거든 시체를 관 속에 집어 넣을 때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라. 두 손을 바깥으로 내 놓아라.”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손을 통해 인생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그네 인생길, 순례자의 길로 우리는 소풍 끝내는자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게 이 땅의 정욕과 욕심의 노예가 아니라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로 훌훌털고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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