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시편 전체는 다섯 개의 작은 권들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의 마지막 시편이 바로 시편 41편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시편 41편은 중요한 히브리어 단어 “복이 있다”로 시작한다.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시편 2편도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2:12)라고 말한다.
시편 41편에 이르기까지 메시아가 그를 미워하고 공격하는 적들이 있는 취약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가 경험했던 적대감과 고난이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표지가 아니다. 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의 고난 때문에 그는 “복이 있다.”
유대인들에게 고난받고 거절당한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에 대한 생각은 ‘거리끼는 것’(고전 1:23)이었다. 하지만, 시편의 1권은 메시아가 바로 그러한 분을 조명해 준다.
시편 41편의 분류
1/ (1-3절)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그의 돌보심 때문에 자기를 구할 실 것이라는 확신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 그리고 연약한 자를 돌보는 사람을 복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시 68:5-6) 『[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6]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스펄전은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동전 하나를 던져 주고 자기 길을 가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슬픔을 살피고, 그 원인을 면밀히 조사하며, 그들을 도울 가장 좋은 방법을 연구하고, 실제적으로 그들을구하기 위해 다가간다. 이런 일들은 그들 위에 거룩한 선의의 표시를 확실하게 남기고, 마치 그들이 이마에 낙인을 받은 것처럼 그들은 확실한 주의 초장의 양이 된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 하]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2/ (4-10절) 하나님께 그의 죄를 고백하고 치유를 구함
고백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현미경의 발명이후 우리는 질병의 원인이 세균인 것을 안다. 과학적 사고의 사람들은 질병과 아픔이 영적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무시한다. 모든 병이 개인적 죄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경은 말한다. 어떤 병은 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약 5:14-16)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다윗은 말한다. “나를 치유하소서, 나는 정말 악합니다.”
나는 죄인이고 당신의 은혜, 치유, 용서가 필요합니다. 내가 행하거나 말할 수 있는 것 중 당신의 자비에 조금이라도 자격있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가져갈 수 잇는 모든 것은 내 죄입니다. 나는 몸과 영혼, 나를 치유하실 당신이 필요합니다.
(롬 5:6-8)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반대
다윗이 기도했을 때 절망적이었다. 그의 적들이 잔인했기 때문이다. 그의 적들은 연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다윗의 병과 어려움은 절호의 기회였다.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10]그러하오나 주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인생의 도상에서 경험하는 가장 뼈아픈 고난은 배신의 사건이다. 믿었던 친구가 나를 궁지에 빠트릴 때 우리는 인생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픈 절망에 빠진다. 오죽하면 단테는 ‘신곡’에서 배신자들을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도록 그려 넣었을까?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친구 격인 신하 아히도벨의 반역은 다윗으로 절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속에서도 절망보다 기도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억울함을 탄원하는 기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먼저 자신이 용서와 치유를 구하는 기도였다. 본 시편은 메시아적 예언이 내포된 기도이다. 아히도벨의 반역사건은 바로 가룟유다의 반역의 그림이 된다. 예수님께서 친히 배신을 경험하신 이유는 우리가 걸어갈 인생의 길에서 이런 배신을 보편적으로 경험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발을 씻기심으로써 그 자신을 낮추신 후에 최후의 만찬에서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셨다.
(요 13:17-19)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그리고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기 위해 밤의 어둠속으로 나간다.
경축
3/ (11-12절)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
[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를 구원하셨다. 다우시은 깊은 기쁨과 확신으로 찬양한다.
최후송영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우리가 시편을 읽을 때 이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그 백성을 환난가운데 구원해 내시는 분이시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주께서 그 모든 고난가운데서 건지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하며 찬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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