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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강해

막 4장 13~23절 _씨뿌리는 비유 해석







    

예수님은 먼저 씨 뿌리는 자 비유를 이해하는 것이 다른 모든 비유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점을 전제(3) 하신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나무라신다.

7:17~18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주시는 것이 한 순간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엿보게 된다. 따라서 비유를 들은 제자들은 보다 온전한 이해를 위해 설명을 들어야 한다. 모자라는 이해를 채우기 위해 반복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씨뿌리는 자는 누구인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지칭하겠지만, 부차적으로는 그분의 제자들도 지칭할 것이다.

씨앗말씀(호 로고스)’로 규정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몸소 선포하신, 그리고 제자들도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 포괄적으로 지칭할 것이다.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왓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사람들은 공히 듣는다. 하지만 들은 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첫째 집단의 반응(15)의 특징은 실패 결과가 즉시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겨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서도 그 어떤 기대되는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무반응이 사탄의 활동 결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사탄을 결박하심으로써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는데, 사탄은 아직도 사람들이 말씀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하도록 하는 활동을 계속한다.

 

(2)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

 

둘째 집단은 처음단계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들은 말씀을 즉시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반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잠시 견디다가 즉시 걸려 넘어지고 만다. 그들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외적 요인 때문에 넘어진다.

 

 

(3)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

 

셋째 집단은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처음 두 집단과 달리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들의 문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음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재물의 위력은 대단하여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빼앗아가기 충분하다.

10:17~25 한 부자 청년의 고민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기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재물에 집착하고, ‘말씀은 점점 생명력을 맇어간다. 외적요인보다 마음에서 비롯된 내적 요인 때문이다.

 

(4)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

마지막 집단은 듣고 받아들여서 열매를 맺는다. 그들이 맺은 열매가 무엇인지 언제 맺혔는지는 모른다. 그 열매의 양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다양하게 나온다. 말씀을 들은 제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삶 속에서 다양한 양의 열매를 맺게 된다.

 

마태복음의 경우,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낭비한 씨앗이 너무 많아 보이는 묘사는 하나님 나라의 어떤 성격을 반영할까?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상황 가운데서,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때로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번에 거절을 당하거나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다가도 결국에는 배척당하는 등의, 다양한 반응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 열매 맺지 못하는 일들이 많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분명 어떤 이들은 끝까지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며, 그들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 말씀에 어떤 밭으로 증명되고 있는가? 내 속에 심겨진 말씀은 주일마다 대하는 설교와 성경을 사단에게 뺏기지 않는가? 잠시 즐거워하나 환난으로 뿌리가 타버리지 않는가? 세상염려와 재리의 유혹의 가시 속에 결실하지 못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돌짝밭 같은 곳이 있다. 부산진역 노숙인 급식소, 고신대학교 경건모임반 불신자 아이들, 그런데도 거기서 복음을 듣고 경청하고 반응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밭 옥토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말씀이 팅기워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씨앗을 뿌리는 자는 어떤 밭에 뿌리우는지 알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반응한 그 밭의 열매를 통해 그 땅이 길가인지, 돌짝인지, 가시덤불인지, 옥토인지 알 수 있다.

열매로 나무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든 씨앗을 뿌려야 한다. ‘듣고 받는 자는 영생을 거둘 것이고, 듣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