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유는 왕께서 친히 설명해 주신 두 비유 중의 하나이다. 그는, 누구든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다른 비유들도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한신 것으로 보아 이 비유를 가장 기본적인 비유로서 간주하셨음에 틀림없다.
씨 뿌리는 비유
Sat 2th Mar 19
마가복음 4장 1~12절
1. ‘비유를 들으라’ 1-9절
마태복음 13장과 누가복음 8장에도 이 비유가 나온다.
하지만, 마가복음에만 ‘들으라(아쿠에테)’는 말이 포함되어있다., 9절의 ‘들으라(아쿠에토)’와 함께 비유를 감싸고 있는 이 명령은 비유의 주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보인다.
3절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9절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여기서 ‘듣는다’는 단지 청각 작용이 아니다. 말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신 6:4 ‘들으라 이스라엘아, 하나님은 한분이시니~’
길가에 떨어진 ‘어떤 것(곧, 씨)(호멘)’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다른 것’과 함께 단수로 되어있다. 이에 반해 좋은 땅에 떨어진 ‘다른 것들’은 복수로 되어 있다. 결실의 결과로 미루어 볼 때 뿌려진 씨앗의 수가 셋으로 추정된다.
8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마태는 결실치 못하는 씨앗이 결실한 씨앗에 비해 훨씬 많은 느낌을 주는 반면, 마가는 결실치 못하는 씨앗과 결실한 씨앗의 양이 균형을 이루는 느낌을 준다. 누가의 경우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단수이기에 결실의 종류도 백 배 한 경우만 언급된다(눅8:8)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싹도 나지 못한 채 새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금방 싹은 났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그 결과 뜨거운 햇볕에 말라서 타 버린다(4~5절). 신속한 성공은 이은 신속한 실패다.
가시덤불속 에 떨어진 씨앗은 곧 죽지 않고 계속 자란다. 하지만 햇빛과 영양을 가시덤물에 빼앗긴 결과 결실에는 실패한다.
실패의 시점과 이유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의 이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래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이 비유의 씨뿌리는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라.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아갈 새”
그는 자기 집 근처나 울타리 쳐진 정원에서 씨를 뿌리지 않았다. 그런 토지는 길거리, 가시밭, 돌이 많은 곳이 모두 있을 만큼 그렇게 넓지 못하다. 농부들은 광활한 들판으로 나아갔는데 그곳은 울타리도 없고, 경작한 토지를 가로질러 길이 나 있으며, 주위에는 가시떨기들이 자라기도 하고, 흙이 얇은 곳 밑에는 암석들이 드문드문 깔려있으며, 비옥한 토양이 있기도 하다.
길 옆에 있는 씨앗들을 새들이 와서 부지런히 주워먹기도 하고, 돌멩이가 표면 가까이에 드러나서 쟁기질하기에 곤란한 곳을 괭이를 든 농부가 파헤치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그는 그런 곳에 씨를 뿌리면 토양이 깊지 못해 씨가 곧 말라 버릴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많은 씨앗들이 잡초들이 돋아난 곳에 떨어져 실제로 우거진 잡초들 때문에 성장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씨앗은 좋은 땅에 뿌려지고, 많은 양의 곡식이 들판을 뒤덮게 된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씨 뿌리는 자, 씨앗, 토양 그리고 그 결과이다. 한사람이 씨를 뿌리고 있다. 그는 한 종류의 씨를 뿌린다. 그 씨는 각기 다른 종류의 밭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그 토양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열매를 맺지 못한 세 종류의 씨앗이 처한 운명을 묘사하는 데는 부정과거 시제가 사용된 데 반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과정에는 미완료 시제 ‘자라나고 번성하는 ’과정에는 현재 분사가 사용된다. 싹이 나고 자라고 결실하는 활동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9절)’는 비유의 결론적 권면으로 아주 적절하다.
예레미야 5:20~22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겔 12:1~2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 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비유를 듣고 그 유익을 얻는 것은 듣는 자의 책임이다. 그런데 그 유익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들을 귀가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2. 비유의 목적 (10~12절)
이 단락은 씨 뿌리는 자 비유와 그 해설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구조를 이룬다. 마가는 본 단락과 앞뒤를 감싸는 비유 사이의 긴밀한 주제적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님은 씨 뿌리는 자 비유 말씀 후 ‘큰무리(1절)’로부터 떠나 ‘홀로 계셨다(10절)’ 이 때 ‘주위에 있는 자들이 열둘과 함께 그 비유들에 대하여 그분께 물었다’
그들은 ‘주위에 있는 자들’로 묘사된다. 막 3:32. 34의 예수님 주위에 있는 무리를 반영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 주위의 모인 자들은 그곳에서도 ‘밖에’ 있는 가족들과 대조를 이루었는데, 여기서도 그들은 ‘밖에’있는 자들과 대조를 이룬다(11절).
11절 ‘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제자들에게 주어진 비밀(뮈스테리온)은 무엇인가?
바울서신서에는 ‘비밀’은 인간의 통찰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의미하나.
롬 16:25~2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미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 자신의 인간적 통찰이나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비밀이 주어지지 않은 ‘밖에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예수님께 딴지를 걸었던 바리새인 시기관들, 그 분의 선포에 의구심을 표현한 사람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 데는 관심없이 떠난 무리들이다.
비유는 그들의 태도와 반응의 결과를 좀 더 명확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가진 자는 더 받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25절) 결과를 가져오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씨 뿌리는 자 비유에 나타난 네 종류의 밭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이 모습이다.
예수님은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을 기경하여 좋은 밭을 만들면서까지 결실하도록 하지는 않으셨다. 누구에게나 말씀하시고 초청하시지만, 그 반응까지 억지로 바꾸려 하지는 안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에 대한 반응은 각자의 몫이며, 그 반응에 그들의 운명이 달려있다.
주약교회 김광영 목사 새벽설교
비유는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기능을 한다. 제자들은 비유를 들으며 하나님 나라를 더 풍성이 알게 되지만, 예수님의 말과 삶으로 드러낸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사람은 비유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다. 또한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완악한 백성이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심판이기도 하다. 그들과 달리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며 깨달으니 복이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그분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가? 순종하려고 온 마음과 영혼의 귀로 듣고 있는가? 내 생각을 지지하는 말씀에만 쫑긋하고 세상의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에는 여전히 무감각하지 않는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 참고문헌
양용의,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p.96-107
매일성경 순 2019년 1월 2월, 성서유니온, p.116
매일성경전집 복음서 사도행전, 성서유니온,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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