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롯샘곁에 진치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는 하홋 샘 곁에 진을 쳤다. 하롯이라는 단어는 떨림, 공포, 두려움이라는 단어이다. 기드온은 이곳에서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3)고 한다.
이들은 왜 두려워 하였던 것일까? 삿8:10에 보면, 미디안 군대는 13만 5천명이다. 3만2천대 13만 5천.. 4대 1의 숫적 열세에 있었다. 더욱이 미디안 군대는 칼로 무장한 강병에 낙타병까지 있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무기하나 변변히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두려워 해서는 아니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한 적이있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미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20:1)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께서 싸우시는 전쟁이요 우리는 참여하는 것뿐이다. 예수께서 전쟁의 용사시기에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무리는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가?
이런 상황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드온에게 임하였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백지장도 맞들면 낫지 않을까? 두려워 떠는 병사라도 없느니 보다 낫지 않을까? 더구나 두려워하지 않고 남은 병사는 남겨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전쟁은 숫자가 있지않다.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전쟁으로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려워 떠는 자를 보냈고 1만명만이 남았다. 여룹바알은 집으로 돌아가는 무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 보아야했다. 도대체 몇 명이 남을 것인가? 아무도 남지 않으면 어떡할 것인가?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많으니 남은 1만명의 이스라엘인을 물가에 데려가서 개의 핥는 것같이 핥는 자와 무릎꿇고 손으로 떠서 입에 가져다가 마시는 자를 구분하라고 하셨다. 확실한 것은 3만 2천의 군대를 300명으로 축소하셨다는 것이다. 자그마치 99%나 줄였다. 100명에 1만 남은 셈이다.
보리떡의 공포
그날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7:9)하신다. 메뚜기처럼 아래 골짜기에 누워있는 적군과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약대를 생각만 해도 캄캄한데 300명만 전쟁을 위해 남아있을 때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디안 병사들이 하는 말을 엿듣게 함으로써 기드온의 두려움을 제거하시는 독특한 방법을 택하셨다.
기드온을 뭉클하게 한 것은 보리떡이다. 떡중 맛없고 볼품없어 사랑받지 못하는 떡, 보리떡은 기드온의 자의식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자아상이었다. ‘개떡’...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이번 싸움에도 실수할거야” 하지만 이미 미디안의 의식속에서 기드온은 여호와의 칼날로 인식되어있었다.
기드온이 하나님앞에 보리떡 같으면 같을수록 미디안 사람에게는 날카로운 칼날로 느껴졌다. 기드온은 꿈과 해몽을 나누는 적 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승리의 확신은 우리가 얼마나 잘났는가를 아는데 있지 않다. 우리가 얼마나 능력이 있으며 힘이 있는지를 인식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깨닫는 데 있다.
기드온은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벌거벗음 모습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참 모습을 깨닫게 하신 후에야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신다”(대하25:8),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기드온은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몇 번의 시험과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한 후에는 막강한 지도자가 되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7:15)
하나님이 이루신 대승
도대체 변변한 무기하나 없이 항아리 횃불 나팔만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전쟁하러 가는 것인가? 장난하러 가는 것인가? 그러나 밤중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와 심하게 깨어지는 소리 갑자기 사방에서 타오르는 횃불의 빛은 공포감을 일으키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고함소리가 진동하며 동서남북에서 나팔이 불어 대고, 횃불이 타오를 때 미디안의 군사들은 혼비백산했다.
“삼백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라고 기록한다. 비록 숫자적으로 열세라도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할 수 있다. 여러분 사자같이 담대합시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장막을 무너뜨리는 꿈을 꾸고 혼비백산하여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는 적들을 무서워 필요가 없다.
쫓아오는 자 없어도 도망치는 미디안인들은 그들의 고향인 요단 동쪽 사막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같이 도주하는 적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우선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이 큰 문제였다. 나루턱을 이용해야 했다. 기드온은 가장 강한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에 사신을 보내 도망치는 미디안 군대보다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장악하고 적들을 격파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하여 오렙 (까마귀) 스엡(이리)을 죽이게 된다. 한때 까마귀와 이리라고 하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쳤을 미디안 장군들의 최후를 보라 여호와의 군대 앞에서는 아무도 당할 자가 없다.
결론
우리 군대의 장관이 누구인가? 바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십자가와 부활로 사단의 머리를 깨부수신 주님의 깃발을 들고 영혼들을 구원하는 영적전쟁에 담대히 서자!
'주님의 약속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9th 약속 '하나님의 기쁨' _ 눅 15장3~10절 (0) | 2019.03.25 |
---|---|
28th 약속 사도행전 16장 23~34절_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0) | 2019.03.22 |
26th 약속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_사사기 6장 11~16절 (0) | 2019.03.03 |
25th 약속 '어찌하여 나를 찾나이까' _ 눅 2장 46~52절 (0) | 2019.02.26 |
24th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_ 눅 12장13~21절 (0) | 2019.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