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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25th 약속 '어찌하여 나를 찾나이까' _ 눅 2장 46~52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Sun, 24th Feb 19 졸업입학 축하예배

  

20대도 모르는 10대의 은어

 

무지개 매너: 무지+개매너

(매너가 꽝)

 

엄빠주의: 엄마, 아빠주의

 

남아공: 남아서 공부나해

 

급식체: 학교급식을 먹는 10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

감분교: 갑자기 분위기가 교장 선생님 훈화할 때 같다.

 

인싸(각광받는 친구)

아싸(겉도는 친구)

인싸로 인정받기위해 중요한 것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_ 지식채널 e

 

대한민국에서 급식체: 학교급식을 먹는 10로 산다는 것

 

다음문장을 완성하시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 ) 이번에 친 시험점수

우리 가족이 나에 대해서 ( )공부 잘하는 것만

나의 가장 큰 결점은 ( ) 공부를 못한다는 것

언젠가 나는 공부 잘하는 아무개를 이기고 싶다.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

_자살한 초딩 6학년의 유서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10명중 9명 과외 평균 3.31

이유 없이 아플 때가 많다.

10명중 7명이 학교가기 싫다.

학원에서 배운 것 반복

왜 그렇게 어렵게 가르쳐요 공식만 알려주세요.”

부모와 이야기 3030%

친구들과 노는 시간 거의 없다 30%

가출충동 53.3%

자살충동 27%

자살의 이유 : 성적문제

스트레스 해소 해방구: 게임, 인터넷

 

학원을 조금만 다녔으면...”

 

부산중앙교회 식당에서 들은 초딩들의 대화

초딩 2학년이 제일 좋아, 1학년은 멋도 모르고, 3학년부터는 공부 때문에 놀수 없어. 2학년 때가 제일 잘 놀 수 있어

 

우리에서 키워지는 소나 닭들이 화학적 약물에 의해 키워지고 유통되는 세상이다. 단지 가축들뿐이겠는가? 우리의 아이들도 교육이 아니라 사육되는 현실이다.

입시경쟁에 멍들고 폭력과 경쟁, 따돌림에 노출되고 분노와 불신, 소외가 구조화되는 곳이 바로 학교이다. ‘폭력근절이라는 문구가 학교에 새겨진 것을 보면 그 단어가 주는 정서조차도 삭막하다. ‘화해’, ‘평화라는 긍정적 단어가 사용되면 더 좋을 것이다.

가정의 위기, 마을 공동체 파괴의 시대에 한 생명을 키우고 돌보기 위해 마을 온 생명이 함께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인성교육, 밥상머리교육이 요청되는 시기이다.

<밝은누리공동체 최철호목사>

 

 

 

 

 

 

 

1.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길 잃어버린 예수(40-45)

 

예수님이 자리시는 모습이 4052에 요약되어 있다.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다.

참사람으로 되셔서 인간의 성장 과정을 겪으시는 예수님이다. 모든 일에 한결 같이 우리와 같으시되 죄가 없으신 분(4:15)이었다. 그러기에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능히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이시다.

 

예수님의 12살적 사건이 소개되고 있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더니 예수께서 동행하셨다가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셨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며 절기를 지키는 경건한 자였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이 있는가?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신앙의 본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교회의 리더들은 서야 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예수가 동행중에 있는 줄로 당연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였다. 다시금 왔던 길을 찾으면서 예루살렘까지 돌아가게 된다.

 

 

2.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예수 (46-50)

 

예수님을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선생들 중에 앉아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신다. 듣는 자가 다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

 

마리아는 말한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지만, 그 부모는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이었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왜 성전에 계신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놀라운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았으며,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이시고 성전은 자기 아버지의 집이라는 사실을 밝혀주신다.

 

청소년기 신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보면 (Hall)

0~4세 유아기(infancy)

5~7세 아동기(Chrildren)

8~14세 청소년전기(Youth)

14~15세 청소년후기

 

신체적 전후기는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는 시기다.

 

아동 예수님도 성년이 되어져가고, 율법의 아들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때 예수님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신다.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예수님은 가족과 맺고 계신 특별한 관계와 책임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지만(51) 동시에 하나님나라 하늘 아 버지의 자녀임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책망에 대해서 내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으로 답하신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기에 진학하는 주약교회 청소년 여러분.

 

예수님처럼 세상에 대해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세요.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지능에 학생들이 가장 오랫동안 공부하는 나라다. 하지만 성취도는 높지만 공부 흥미도는 떨어진다.”

_2 수학

 

유대인교육법의 핵심은 바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논쟁하는, 즉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가족들은 항상 저녁을 같이한다. 이 시간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질문한다(가정에서). 무엇이든지 듣고 배우는 것은 그것에 대해 완벽히 이해될 때까지 묻고 논쟁하라(사회에서).”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천자문이나, 소학, 명심보감을 암기하는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유대인들 하브루타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하베르라고 하는 친구, , 동료를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두 사람이 짝이 되어 함께 질문도 하고 대화하며 토론식 대화를 하는 학습법이다. 논쟁을 통해 찬성과 반대를 동시에 경험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격언에 두 사람이 모이면 세 가지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토론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쟁하고 경청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고를 경험하며 의사소통을 통해 설득의 능력을 키우며 평생 친구를 얻게 된다.

    

 

진주 주약교회 주일설교

김광영 목사 

 

 

 

  

 

3. 나사렛에서 자라시는 예수 (51-52)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셨다. 육신의 부모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신 예수님은 그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하여 받드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고르반을 행할 때가 많다.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가족도 이웃도 섬기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원론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서 보이지 않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곁에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의 말에도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육신의 부모를 순종하며 받드시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을 돌아보고 특히 육신의 부모님을 섬김으로 영혼의 아버지를 섬기는 자리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20:12).

부모공경에 따르는 복은 구체적인데 구체적인 축복이 명시된 계명은 부모공경밖에는 없다.

그만큼 부모공경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중요함을 역설해 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내리사랑).

부모를 공경하도록 애써야 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6:1). “자녀들아 모든 이리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3:20)

부모는 자녀를 부당하게 노엽게 해서는 안된다(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써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자녀를 노예처럼 마치 부모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자식을 자기 소유물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부모공경은 약속있는 첫계명이다(6:2). 장수와 형통함의 축복이 약속되어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순종해야하나 부모 또한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부합지 않을 수 있으나 이것에는 순종치 않더라도 부모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