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쉰(21번째) : 161-168절
시인이 대적과 자신을 대조
[161]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말씀을 지키는 자와 그 결과
[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말씀을 따르는 자신의 삶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자음 ‘신/쉰’으로 모든 구절을 시작하는 161〜168절은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61〜163절에서는 시인이 대적들과 자신을 대조한다. 그리고 164〜165절에서는 말씀을 지키는 자신의 모습과 그 결과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다. 166〜168절에서는 말씀을 따르는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161〜168절에도 전체적으로 탄원의 분위기와 신뢰의 고백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162절의 표현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전쟁에서 전리품을 많이 거두고 기뻐하듯 시인은말씀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표현은 시편 전체에서 많은 시인과 기도자들이 고백했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편의 첫머리에서 말한 행복을 아주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행복이며, 우리는 무엇에 즐거워하는가? 시인은 ‘말씀’이라고 대답한다. 우리는무엇이라고 대답하는가?
참된 평안의 근원(161 〜168절)
사람들은 높은 지위를 얻거나 큰 부자가 되면 행복하고 평안 할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 중에 오히려 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왕들은 잠을 잘 때에도, 음식을 먹을 때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권력은 평안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부자들은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으니 늘 기쁠 것 같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오히려 재물이 고민거리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시인은 권력이나 재산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높은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161a절). 그가 가진 재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62절). 그가 사랑하는 것은 주의 말씀이고, 하 루 일곱 번씩, 즉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163〜164절).
시인은 이것이 바로 자기가 누리는 평안과 형통함의 비결이라고 노래합니다(165절). 그는 계속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음을 강조하는데(166〜168 절),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의 근원임 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지위는‘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입니다. 우리가 가지려고 노력해야하는 재산은‘하나님의 지혜‘라는 재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참된 것을 추구할 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진정 행복하고 존귀해질 수 있습니다.
어제 오후 느닷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만하면 다왔다
그정도면 넌 최선을 다한거다
너 스스로를 너무 질책하지 말거라
넌 애썼다. 넌 수고했다. 그걸 내가 안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이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오늘 아침엔
종처럼 살아온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스스로를
옥죄고 다그쳤던
그럴듯한 나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쓸만한 유능한
종으로 부르지 않았다
너는 내 자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걷다가 멈춰서
멍하니 하늘을 보다
저도 진심 고백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내 아버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여러분 마음에 보내주셔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유업을 주실 것입니다" (갈4:6-7,쉬운)
-무명의 산중거사-
(한 목사님의 페북 글에서 )
2/ 타우 (22번째) : 169-176절
탄원
[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고백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간구
[173]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마지막 단락인 169〜176절은 모든 구절이 히브리어 마지막 자음 ‘타브’로 시작한다. 176절로 된시를 마무리하는 이 단락은 다소 평범하고 소박하게 느껴진다. 169〜170절은 탄원. 171〜172절은 고백. 173〜176절은 간구로 나눌 수 있다.
176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이 단락은 다소 평범하다. 마지막 단락에서 기대되는 거창한 미사여구는 사 실상 찾아볼 수 없다. 이 평범한 결론에서 우리는 시인의 초대를 돌아본다.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며, 거기서 행복을 찾은 시인은 이제 우리가 말씀사랑의 단락을 삶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런 뜻에서 이후의 단락은 우리의 몫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계속 말씀을 사랑하고 읽고 지키며 사는 삶으로 우리는 119편의 속편을 이어가야한다.
혼란과 긴장가운데 있더라도(169~176절)
시인은 현실을 직시하며 이 긴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세상의 공격과 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또 하나님이 이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169〜170절).
시인이 자기를 ‘잃은 양같이 방황한다.’고 표현하고,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노래를 마치는 것을 보면, 이 긴 노래가 끝나도록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현실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175〜176 절).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따라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노래하겠노라는 다짐을 멈추지 않으며 (171〜172절), 오직 하나님이 구원자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173〜174 절).
이렇듯 시인은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의 말씀에 착념함으로써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쁨과 소망과 평화를 노래하는 그의 찬양에는 현실에서 경험하는 고통으로 인한 탄식이 섞여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까지 성도에게 이런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 말씀으로 교훈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기에 기뻐하며 찬양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고난을 이기는 신앙,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 간구하는 신앙을 회복하여 참된 행복, 참된 형통을 누리십시오.
노예상으로서 회심했던 존 뉴턴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도 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던 사람도 되지 못했다.
내가 소망했던 사람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전의 악한 모습이 사라졌다.“
언약의 말씀으로 내면이 변화되는 이 능력을 경험한 그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이 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 존래 가락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가락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은혜의 가락을 망각한 것이다. 이 마지막 절은 이 시편이 은혜의 노래임을 다시한번 상기 시킨다.
이렇게 시119편이 마무리되는 것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해야 현실적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모르겠어, 완전히 뒤죽박죽인 것 같아. 언제 실패할지 몰라. 하나님이 속히 구원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기도하고 간구하며 간절히 주님을 바라보는 게 요즘 내 일이야.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 사랑과 소망의 마음이 충만하게 되. 늘 긴장 상태야.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의 은혜에 나를 전부 맡겨버렸다.”
옛날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들만 노리는 사탄이 그의 조력자들을 모아 어떻게 하면 그들을 꾀어낼 수 있을까 방법을 궁리했다. 어린사탄이 대답했다.
“나는 죄지으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반짝 반짝 빛나는색깔로 그에게 보여 줄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죄는 슬픔과 파멸을 가져온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서 네 말을 듣지 않을 거야.”
다른사탄이 대답했다.
“나는 의인의 삶에 놓인 시험과 자기부인의 모습을 보여 줄 거 야. 그러면 그런 삶을 피하려 들걸.” “그것도충분치 않아. 그는 의인의 길이 평화와 기쁨의 길이라 걸 알고 있어.”
세 번째 사탄이 나타나 자신은 사람을 꾀어낼거라 장담했다.
“나는 그의 영혼을 낙망하게 만들거야.”
사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겠다!”
기독교는 믿음과 기쁨과 용기와 부끄러워하지 않을 소망의 종교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이 언제나, 오직 악에서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 하나님은 모든 절망과 실의에 변함없이 “내가 너 와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응답은 더 깊은 낙심에 빠지는 것을막아준다. 우리가무기력하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대신해 싸워 주신다면 문제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우리의 무능력은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약할때 하나님 안에서만 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함은 실은 우리의 가장 강한 힘이다. _ 한나 휘톨 스미스.「하나님을 아는 넓고 깊은 지식」(브니엘)
성경이 항상 그렇듯이 이 시편이 끝난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시편을 건물을 짓는 것으로 묘사한다면, 이 마지막 연은 공사 발판이 아직 철거되지 않았음을 일깨워준다. 이 시편은 마무리되는 시점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긴장 속에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시편이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경험이다.
정말 잘 모르겠다고 하는게 정직한 반응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고통스러운 현재 속에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본다. 말씀으로 인해 기쁨과 소망과 찬양을 미리 맛본다. 그 찬양에는 기도와 탄식이 뒤섞여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즐거워한다. 오직 이 말씀만이 현재의 고통 속에서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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