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프(19번째) : 145-152절
[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0]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2/ 레쉬(20번째) : 153-160절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54]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155]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에 대해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이들에게 다 받아들이고 감사하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억울한 일을 당해 분노하는 이들이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이다. 영화〈밀양〉에 나오는 신애가 그런 예일 것이다. 유괴범에 의해 죽은 아이에 대한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지도 못했는데, 교인들로부터 위장된 용서와 감사를 강요받아 자신의 감정을 속이다가 결국 터져 버린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울때 우선 함께 울고 고통을 겪을 때 함께 아파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그들을 마침내 감사와 기쁨으로 초대할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충만하다면 늘 마음이 평안하고 초연할 것이라고 믿는다. 성령 충만한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과연 자신이 겪는 모든 일을 수용하고 늘 감사할 수 있을까? 이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비현실적인 요구다. 인간은근본적으로 연약하다. 몸을 가지고 사는 한, 그리고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삶에는 눈물과 아픔이 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기만 하면 눈물과 아픔이 사라진다고, 삶에 서 더는 연약함을 체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눈물 없고 고통 없는 상태는 오직 부활 이후의 복이다.
지금은 아직 아니다. 이미 천국이 도래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크고 작고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든 부분적으로만 주님의 생명과 평온을 체험한다.
믿는 이들도 세상의 수많은 고통을 다 겪을 수밖에 없지만, 다만 다른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약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거하기 때문이다.
_ 박상현,「삶이 말한다」 넥서스CROSS)
1/ 코프(19번째) : 145-152절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을 간구
[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시인의 간절함으로 응답을 간청
[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시인의 고유한 깨달음
[150]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모든 구절이‘코프’로 시작하는 145〜152절은 내용을 바탕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45〜146절은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이다. 147〜149절은 시인이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탄원의 기도를 올려 드리는지를 묘사하면서 응답을 간청하는 부분이다. 150〜152절은 시인의 고유한 깨달음을 전해 주는데, 고난의 상황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멀리 있지 않음을 역설한다.
시인은 자신이 매우 절박한 위기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고 호소하는데, 하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주의 교훈. 주의 증거를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145〜146절).
그는 새벽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고 부르짖고, 또 조용히 읊조리는, 즉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147〜148절). 믿음이 없는 자들은 그가 너무 안일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자기 ‘가까이’온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150절).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간구하고, 하나님이 주의 규례를 따라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이라고 믿을 뿐입니다(149절). 그가 이렇게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악인들보다 하나님이 더 ‘가까이’계시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며 . 하나님의 계명들이 영원한 진리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151〜152절).
이사야 62:6-7절을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사 62:6-7)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성도가 기도할 자리는 편안한 안락의자가 아니라 딱딱한 맨바닥이다. 우리는 우리의 양자됨을 갈망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온 피조물들과 함께(롬 8:18-25) 목을 길게 빼고 딱딱한 자리에 앉아 간절하게 기도드린다.
본문을 묵상하다보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악인들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계시면서도 피하시거나 그 들에게 대항할 준비를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불신자들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기도만 하고 가만히 계셨기 때문에 체포당하시고 패배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이를 통해 진정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시인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아무리 절박한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하더라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찬양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148절)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147절). 처음에는 자신이 처한 고난과 고통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으로 기도내용이 채워진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건 신비주의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착각한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우리 자신의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는 말씀에 약속하신 대로 행하시도록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약속에 근거해 호소한다. 하나미의 약속을 분명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이 실제로 하신 약속이 아님에도, 혼자 착각해서 약속을 어기셨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믿음이 파산하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분의 약속은 분명히 신실하게 이루신다. 아브라함의 가족들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은 세상을 기업으로 물려받고(롬 4:13) 그리스도(아브라함의 씨, 갈 3:16)안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는(마 5:5)이다. 약속을 따라 구하기 위해서는 약속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하고 읽고 말씀의 훈련을 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 세상 끝날까지’ 찬송은 어둠과 하나님이 동시에 가까이 있다는 이 이중적 가까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 온갖 시험 내 맘을 흔들고 저 악한 워수들이 안팎에 있으나
주 나를 돌보시사 내 방패되시고 내 옆에 계신 것을 늘 알게 하소서“
우리가 갑작스런 비극에 충격을 받고 슬픔에 마음이 마비될지라도, 유혹에 흔들리고 적대감의 위협을 당할지라도, 사람들의 아첨에 흔들리고 안일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라도, 우리는 확신 가운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히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주님의 임재보다 악이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약속을 근거로 기도할 수 있을까?”
2/ 레쉬(20번째) : 153-160절
자신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께 아룀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54]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155]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악한대적들 vs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
[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모든 구절이 '레쉬로 시작하는 153〜160절은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 대적들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한다. 153〜156절에서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 아뢰며 구원을 호소하고, 157-160 절에서는 악한 대적들과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을 뚜렷하게 대조한다.
[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그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는 건 바로 이 고난이다. 이 고난으로 인해 말씀의 길로 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다. 마치 양떼들을 위한 전기 울타리처럼, 고통스럽지만 안전하게 그를 지켜주기 위해 고난이 필요하다.
시인은 고난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잊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의 변호사가 되어 주실 것이고(153〜154절), 악인들은 주님에게서 멀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155절). 사실 시인은 많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고, 세상의 상식을 거부하면 필연적으로 주위에 적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시인은 자기를 핍박하는 대적들이 많기는 하지만 주님의 긍휼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156〜157절).
[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8절에서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다시 강조된다. 이것이 주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심의 증거다. 이 미쁘신 하나님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자들을 볼 때 역겨운 마음이 생긴다. 어떻게 그런 신실하신 하나님께 그토록 불성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토록 미쁘신 하나님의 믿음을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역겨운 감정은 159절의 주를 향한 사랑과 동전의 양면이다.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만큼 행동으로 다 실천한 건 아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법도들을 향한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그의 마음속에 새겨 주셨다.
시인은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거짓된 자들을 보고 슬퍼하지만, 그들의 영향을 받거나 그들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158〜159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들은 진리이며 영원하기 때문에(160절), 잠깐 세력을 떨치다가 금방사라지는 악하고 거짓된 자들의 영화를 따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비웃는 자들, 교회를 비방하는 자들이 주위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안팎으로 어두움의 세력이 힘을 과시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훨씬 더 크고 강함을 느낍니다.
[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강령은 하나님 말씀의 ‘시작, 머리, 근원’이라는 의미다. 이 절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진리인 말씀을 말해준다.
“위험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닻이 되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자. 자신의 문제와 영적 대적들이 더 크고 무섭게 보이는가? 아니면 주님의 자비하심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가? 어떻게 올바른 균형을 유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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