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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디모데후서 2장 8-19절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통해, 바울서신을 통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단순함의 혁신가 였다.예수님 시대는 사두개인, 바리새인, 헤롯당과 열심다. 엣세네 파들로 혼란스러웠다.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복잡한 길을 따라 행하지 않으셨다.그들의 위선을 참을 수 없었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기를 더 좋아하셨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모세오경을 연구하면서 613개의 계명을 발견해 내었다.

'-하라'는 긍정적인 계명 248(모든 신체의 뼈 숫자)이다. 율법을 가르쳐 뼈 마디 마디에 사무치도록 새겨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말라'부정적 계명 365(1365) 1년 내내 율법이 금한 길를 따르지 말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총 613개의 계명을 구속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셨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집결하여, 예수님께 어려운 질문을 드려 예수님을 당황스럽게 만들려고 했다.그들은 예수를 떠맡을 영리한 율법사 한명을 골랐다. 그 율법사는 예수님께 질문한다.

'이 수많은 계명들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 계명을 답하면, 다른 계명으로 말꼬리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간결하고 분명하셨다.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오늘 본문의 바울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15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kerigma

 

지금까지 바울은 가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없다는 말을 군사, 경주자, 농부가 수고나 고난 없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통해 표현했다.

본문에서도 이 주제를 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체험(8) 한 사도로서의 자신의 체험(9,10) 모든 그리스도인의 체험(11-13)로 강조를 계속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체험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한다. 우리는 망각의 존재이다. 교회사는 쓸데없는 무익한 신학토론, 순전히 인본주의적 활동, 자신의 편협한 교구적인 일 등에 몰두함으로 종족 그리스도를 망각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하는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는 복음, 아름다운 의탁물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시고그리고 다윗의 씨가 되시는 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먼저, 주님의 인격, ‘다윗의 씨라는 말은 주님의 인성을 암시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이라는 말은 그의 신성을 암시해 준다.

디모데가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사실들이 디모데가 선포해야 되는 복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죽음이 생명에 이르는 문이 되며 고난이 영광에 이르는 길이 된다는 원리도 예증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모데야, 네가 너의 사역에서 고통, 굴욕, 고난 및 죽음을 회피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도록 하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2. 사도바울의 체험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그는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가 로마 시민이고 무죄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범죄자처럼 쇠사슬에 매이는 고통스러운 굴욕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쇠사슬에 매였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다. 사도에 의해 감내된 고난을 통해서 영원한 영광을 선택된 자들이 얻게 된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체험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바울은 이제 초대 그리스도교의 어떤 찬송가의 단편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는 확실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죽는 생활’, ‘참는 생활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들을 함께 나누고 참을 때만이 우리는 내세에서 그의 통치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 죽음이며 그리고 영광에 이르는 길이 고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여기 첫 구절은 주님이 경고하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10:33)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이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인간의 변덕에 대한 위로의 보증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평행구절로 보았을 때 이 경우 우리가 미쁨이 없을 때 그의 미쁘심은 그의 경고들에 대한 미쁘심이 될 것이다. 그의 본분에 대한 신실함은 그의 약속 뿐 아니라 ... 그의 경고들도 실행하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울은 축복이 고난을 통하여, 결실이 수고를 통하여, 생명이 죽음을 통하여, 영광은 고난을 통하여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No cross No crown이다. 예수께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통하여 하늘나라의 통치를 획득하심처럼, 선택된 자들이 구원의 영광을 얻도록 바울이 사슬에 묶이고 감옥에 갇힘처럼, 군인으로 기꺼이 역경을 견대게 하고, 경기인은 훈련을 견디게 하고, 농부로 수고하게 하는 것이 이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런 희생도 치르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삶과 봉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4.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그리스도의 일꾼이 하는 사역은 진리의 말씀을 다루는 것이다. 또한 인정되고 진실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있는가 하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는 일꾼이 있다. 두 사람을 갈라 놓는 것은 아름다운 의탁물인 진리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태도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인정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될 것을 요구했고,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혹시 사람들의 인정은 획득했어도 하나님의 인정을 상실한 나쁜 일꾼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온갖 이유를 가지고 있다. 선한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변하지만, 악한 일꾼은 진리에 대해 그릇되었다.

 

(1) 선한 일꾼

 

옳게 분변한다는 말은 진리의 말씀을 똑바로 자른다는 것을 말하는데, 여행자가 그의 목적지를 똑바로 갈 수 있도록 도로를 똑바로 뚫거나 수목으로 뒤덮이거나 막힌 산을 직선으로 관통해 뚫어 놓는 것이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자르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받았으며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선한 일꾼은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여 사람들을 혼란시키지 않는다. 반대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견지하고 샛길을 피하면서, 자신이 항상 그 길에 확고하게 서 있고 그 길을 다른 사람들이 뒤를 이어 따르기에 쉽도록 만드는 주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다룬다.

 

(2) 악한 일꾼

 

진리에 관해 그릇되었다는 말은 궁술에서 활이 발사된 과녁에 비유되고 있다. 목표를 빗나가고 벗어난 것이다. 과녁에 향해 쏠 때 그것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행한 결과에 대한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가 길을 곧게 뚫는 다면 사람들은 그 길을 따르고 지킬 것이요. 그런 반면 그가 목표를 맞추지 못한다면 관객들의 시선은 그 화살을 좇아 벗어날 것이다.

아시아에는 심각한 오류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의 백성의 부활의 보증과 모범이 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포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영지주의자들로 영혼의 감옥인 육체에 영혼이 다시 들어와서 육체가 부활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고 영혼의 부활만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한 이단들은 진리의 말씀을 바울이 말다툼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대체시켰다.

악한 일군과 거짓된 교사에 대해 그들을 피하라고 권한다.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왜 그러해야 하는가?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고 독한 창질의 썩어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고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어진다.

인간들의 신앙의 기반이 무너뜨려질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의 기반은 여전히 견고하다. 그것은 이중의 인침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비밀스럽게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며 그들을 영원히 안전히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공개적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나게 하고그로 하여금 그의 거룩을 통하여 그가 주님께 속했음을 증명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바울은 그 자신의 백성을 알고 인정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며 그리고 오직 그만이 마음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다.

 

One point

 

칼빈은 기독교강요첫 페이지에서 자아에 대한 깊은 지식을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을 떠나서는 자아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다고 했다.

칼뱅을 따라 개신교인들은 이 신앙의 여정에 회심, 성화, 영화라는 세 개의 대략적인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회심(conversion)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성화(sanctification)는 거룩함이 자라나는 것이며, 영화(glorification)는 새로운 부활의 몸을 받음으로써 이 과정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영적여정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방정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에서 하나님을 닮는 것으로의 변화를 말함으로써, 개신교인들이 성화라고 부르는 부분을 강조한다.

 

그 어느 것도, 정말 그 어느 것도 빙하를 막을 수 없다. 빙하는 장기간에 걸쳐 눈이 축적되어 형성된다. 오늘은 1cm, 어제는 1/4cm 지난주는 미세한 가루만큼 쌓이는 그 런 과정을 통해, 눈 이 두꺼워짐에 따라, 무게의 압박이 커진다. 그러면 얼음이 형성되고, 더 많은 눈이 쌓 이고, 더 큰 얼음이 되고, 이런 식으로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지난다. 오랫동안 아 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러나 20m의 두께가 되면 이제 빙하는 움직이기 시작하며,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빙하들은 지구가 회전 할 때 일어나는 어떤 흔들림, 비틀거림의 결과다. .. 빙하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만들어지지 않기도 하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지구가 오랜 시간 동안 바로 이 방향으로 1조 분의 1도 경사져 돌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나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나는 믿는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로 조금만 확고하게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기울여만 줘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 흔들림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었던 그 곳에 마침내 얼음이 형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한평생, 아니 두 평생, 세 평생 동안 꾸준히 계속해 가라(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그러면 어느 날, 분명, 마침내 그 얼음은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가 말했다.

작은 일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작은 일에 성실한 것은 큰 일이다.

올 한해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의 전투, 믿음의 경주, 믿음의 농사에 수고의 땀방울을 뿌리자. 주님의 시간이 되면 반드시 갚아주실 것이다.

 

(7:24-25)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딤후 2:15)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