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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말씀 묵상

시편 149편 / 영광중에 즐거워하라 / 김광영목사

 

 

 

 

"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1절)"

 

우리는 항상 흘러간 옛 노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아련한 옛 추억의 발자취를 회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추억에만 집착하면 과거지향적 인생이 된다. 지난 삶 속에 분명 기뻐하고 감사할 은혜들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 속에 회한의 기억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주 안에서 새롭게 된 인생의 경험은 결코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주안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경험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의 인자와 긍휼이 날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도 노래하고 침상에서도 노래한다. 이 노래는 마음으로도 부르는 노래, 입술로도 부르는 노래, 춤추며 부르는 노래이다.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주께 드리는 노래가 새 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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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 149:5-6)

 

 

1/ 예배에 대한 요청 (1-3)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예배의 이유 (4)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3/ 예배이 확신 (5-10)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이 시편의 저자와 구체적 배경은 밝혀져 있지 않다. 포로기 이후로 추정될 뿐이다. 이스라엘이 적들의 침입으로 위협당하고 있는 때였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와서 그들의 삶에 나타난 은혜로 인해(4)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청을 받는다(1-3, 5). 그들은 적들과 싸우기 위해 출전할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6-9)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요청받는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시편 145:1에서 시인은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라고 노래한다. 시편 5권 본론의 마지막 시편에서 하나님을 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시편의 결론을 이루는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에서도 시인은 여호와가 왕이시라고 노래한다.

 

[1] a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b.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 a.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b.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여기서 2a자기를 지으신 이”(창조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앞 절에서 언급한 여호와. 동시에 자기를 지으신 이”(=창조자 여호와)2b그들의 왕과 의미론적으로 평행을 이룬다. 그들의 왕은 인간 왕이 아니라 2a창조자 여호와를 가리킨다.

14610절도 여호와를 통치자로 소개한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이처럼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 공동체는 여호와가 그들의 참된 왕이시라는 사실을 찬양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다졌을 것이다.

시인은 여호와를 구원자로 소개하면서 147:2-3에 노래한다. (147:2-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2)”.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땅으로 구원하신다는 의미이다. 이에 더해 149:4을 고백한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히브리 시인은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서 믿음의 백성들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니 이를 잘 받들어 행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늘에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인데 그 도구는 성도들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에 무슨 도움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을 초대하셔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 안으로 끌어들이신다. 놀라운 선물이자 목격자, 증언자의 삶으로의 초대이다. 그리스도인을 부활의 증인이라 선언하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증인이요 목격자이다.

 

 

6절에는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와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으라고 한다. 이 말씀을 데레사 수녀는 자신의 수도생활의 중요한 방편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녀는 한편에는 말씀을 새기는 묵상의 노력다른 한편에는 언제는 날카로운 칼을 버려 우리가 행한 선행을 가차없니 베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악행으로 오염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선을 행하되 쌓지 않는 것이다.(본인 주석(註釋)-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 버리는 것이다.)

이 또한 사도 바울이 인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은 즉 근심있는 이는 근심 없는 것처럼, 기쁜 이들은 기쁨이 없는 것처럼, 재물 있는 이는 재물이 없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되 세상을 벗어난 것처럼 살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톰 라이트는 말한다. 시편 148:11(148:11-13)의 세상 모든 왕들에 대한 언급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며 [12]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은 우리를 시편 149편으로 나아가게 한다.

거기에서 나오는 경축과 찬양의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의 사람들을 억압해 왔던 왕과 고관들을 이기고 하나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그래서, 끝에서 두 번째에 놓인 이 시편, 전체 시편이 시작하자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시편 2과 하나의 커다란 원을 그린다. 시편 2편은 여호와께서 내 아들이라 칭하시는 장차 오실 왕이 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시고, 열방의 위협과 비웃음을 존경과 순종으로 바꾸실 것이라고 했던 바로 그 시편이다.

 

일단 모든 창조세계로 하여금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를 찬양하도록 그들을 호출하고 나면, 우리는 이 세상 인간들이 지닌 권력 안의 단층선들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기 시작한다.

범신론적 정치 비전(모든 것은 그 자체의 동력 아래 자동적으로 합당한 절차를 밞아 가도록 그저 내버려두어야 한다)이원론의 정치버전(모든 것이 너무나 잘못되어 있기에, 그 유일한 해결책은 그냥 손을 떼고 신적인 영역으로 물러나 있거나, 혁명을 일으켜 체제를 완전히 바꾸는 것밖에 없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청한다.

시편은 이와 다른 버전을 제시한다. 찬양의 사람들은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축하며, 그분이 마침내 심판하러 오실 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열망을 가지고서 권력 쥔 자들을 일깨운다. 그분의 진리를 선포하고 언제가 책임을 물으신 하나님께 그들이 해명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시편 150편에 이른다.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들 모두가 그렇게 하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부터 그분의 호흡이었다. 주시고, 가져가시고, 그리고 다시 주시는 분이다.

(104:29-30)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