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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124th 약속 요한복음 5장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주약교회 김광영목사

 

오랜 동안 절망과 고통의 수렁에서 헤매어 본적이 있는가? 잠시의 고난은 우리에게 희망의 가능성을 보지만, 그 고난이 오래면 자포자기에 자리에 내려가기 쉬울 것이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그 후는 무슨 사건이후인가?

갈릴리 가나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이 나온다. 신하는 아이가 죽기 전에 주님이 내려오시길 구했으나, 예수님은 네 아들이 살았다선언하셨고, 그 말씀을 믿고 가더니 말씀하신 그 때로 아들이 살고 그와 온 집안이 다 믿었다.

그 일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신 것이다.

본문에서 이 명절이 어떤 명절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장막절로 추측되고 있다.

 

1. 베데스다 못(1-4)

 

장막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다.

이 위치에 대해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성 앤 수도원 아래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 장소에는 두 개의 모양이 아주 비슷한 못이 있는데, 한 개의 복도는 한 가운데 있어 못을 둘로 나누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어느 날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못가로 간다. 거기에는 주랑, 그러니까 지붕은 있고 벽은 없는 정자 같은 건물이 다섯 채 있었는데 거기에는 병자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 내려오는 전설하나가 있는데 이따금씩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철렁거리게 하면 그때 그 연못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것이었다.

그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희망을 잃은 사람들, 의사도 고치지 못한 사람들, 의사에게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 있다. 그들이 누워 기다리고 있는데 다름이 아닌 물의 움직임이다.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는 것이다.

 

2. 38년된 병자(5-7)

 

예수님은 거기서 한 남자를 지목한다. 그는 이미 서른 여덟 해 앓아 누워있었던 병자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이 병자를 보셨고, 그리고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왜 이런 질문을 하실까? 그 사람이 병들었고 베데스다 연못 곁에 있다는 것은 병이 낫고자하는 갈망이 아닐까?

하지만, 주님은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그에게 물으신다. 그 주님의 질문 속에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있다.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물으시는 주님의 마음.

 

38년이나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건강해지고 싶으냐?” 묻는 예수님은 제정신인가?

38년이 아니라 38일 동안 직업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정말 취업하고 싶어요?”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까? 한 푼만 달라는 거지에게 가서 진짜 돈을 원해요? 부자 되고 싶나요?”묻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물었다.

 

이현주. 예수와 만난 사람들. 생활성서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스스로를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뚱이를 그들은 이리저리 옮겨다 주었다. 나의 의지와 나의 삶과는 아무런 연결 돼 있지 않았다. 나는 나의 뜻과 상관없이 나를 둘러싼 뭇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에 의하여 시장거리에 던져지거나 마을 밖 들판에 버려졌다. 차라리 죽고 싶은 적이 몇 번 이었던가? 그러나 나는 스스로 죽어버릴 힘까지 빼앗긴 몸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치요과 원한의 38년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 또한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세상에 대하여 불평불만은 물론이요, 한 조각 분노마저도 품지 않게 되었다. 38년이라는 세월은 나에게서 삶에 대한 의욕과 마침내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앗아가버렸다. 건강하고 부유한 자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기계처럼 받아 삼켰다.

 

누군가가 나를 들어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베데스타 못가에 옮겨 놓았을 때, 그 신비한 못에 대한 소문이 잠깐 동안 내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것 같았지만 역시 소용없는 일l이었다. 못가에 행각 다섯 채가 서 있었는데 행각모다 맹인, 다른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중풍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모두 베데스다 못물이 소용돌이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하늘의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는데 그 순간 제일 먼저 들어가는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었다. 거기에도 선착순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어, 이 세상의 어쩔 수 없는 불공평은 여전했가.

내가 그 곳에 누워 있는 동안 한차례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밤중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물이 움직인다!”

이내 첨범첨벙 물 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날 밤 소동 끝에 누가 볕이 나았는지는 아무도 무른다. 누군가가 병이 나아 그날 밤으로 행각을 떠났다는 소문이 있었고, 사람들은 소문으로 만족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물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모두들 베데스타 못물을 내려다보며 거기에다 소망을 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낱 코미디의 무대일 뿐이었다. 끝내 웃을 수도 없는, 그것은 차라리 절망의 쓴 잔이었고, 무덤과도 같았다.

 

그 무렵, 거기서 그를 만났다. 그는 어느 순간, 바람과도 같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눈이 이글거리는 숯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좌우를 살펴보는 일도 없이 곧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38년 동안 멎었던 나의 심장이 새삼스럽게 고동치는 것 같았다.

당신, 낫기를 바라시오?”

순간,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는지 몰라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는 과연 낫기를 바라고 있었던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고 나또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38년이란 오랜 세우러은 나에게서 낫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까지 앗아가 버리지 않았던가?

그분의 맑고 뜨거운 시선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식힐 수 없는 연민의 숯불과 같았다. 나는 그의 눈꼬리에 남모르게 괴어 있는 락은 눔을 보았다.

이윽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나는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아무도 내 몸을 들어 저 못물에 넣어 주지도 않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나는 마치 오랜 악몽으로부터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를 내 속에 갇혀 있던 나를 벌떡 일어서게 하였다. 나는 환자들로 가득 차 있는 베데스다 못가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38년간 저주의 보증서처럼 깔고 있던 요를 걷어들고 걷고 있다.

 

병자가 대답한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대답 또한 이상하고 이상하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 저를 물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이들이 먼저 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질문과 그 사람의 엉뚱한 대답. 두 사람은 정말 대화를 나누었는가? 그 무렵 예수님이 내게 와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면 우린 무어라 답했을까?

 

그는 상대적 소외감에 빠져있다. 물이 움직일 때 다른 병자가 먼저 내려감으로 그는 이 경주에서 뒤처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스스로 못에 갈 수 없기에 누군가 나를 못에 넣어줄 조력자가 필요한데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을 도울 자 없음에 2중적 소외감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는 자신 앞에 계신이가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다.

 

앤서니 드 멜로 신부의 글을 보면,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에게 하듯 질문한다.

여러분, 정말 행복해 지고 싶으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대답하죠. !! 물론이죠... 그러면 제가 다시 말합니다. 거짓말 마세요. 여러분은 절대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그냥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에요.”

 

인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똥통에 빠져 있었어요. 뭐 그렇다구요. 그들은 목까지 똥물에 잠긴 채 겨우 숨을 몰아쉬고 있었어요. 지나가던 현자가 그들에게 물었어요.

제가 무엇을 해 주면 좋겠소?”

선생님, 저기 저 애가 자꾸 뛰면서 똥물을 튕겨요. 그때마다 출렁거리는 똥물이 우리의 코로 들어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겁니다. 저기서 나대는 쟤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해 주세요

 

 

 

3. 자리를 들고 일어남(8-9)

 

이때, 주님은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

38년의 병이 언제였냐는 듯이 주님 말씀에 즉시로 낫는다.

 

 

주님은 자신이 바로 베데스다 못보다 더 크신 분임을 말씀하신다.

후 문맥 17절에 보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다.

성전보다 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시며 긍휼의 마음으로 병자를 고치신 것이다. 우리 속에서 38년된 병자처럼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고통한다면 주님을 만나자.

천만년 어두운 동굴도 한순간에 빛이 가 닿으면 밝아진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 그림책!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한땀 한땀 자수를 놓아 그림책을 만들었다.

 

 

우리 딸은 숨는 걸 좋아해요

껍데기 속으로 숨는 달팽이처럼

그럴 땐 찾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 딸은 새처럼 즐겁다가

물개처럼 슬퍼요

 

토끼처럼 얌전하다가

악어처럼 거칠기도 해요

 

미어캣처럼 조심스럽다가

나무늘보처럼 태평스럽기도 해요

 

물고기처럼 조용하다가

수탉처럼 시끄럽기도 하고요

 

뱀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아기 새처럼 연약하기도 해요

 

거북이처럼 느리다가

캥거루처럼 날쌔요

 

가끔은 사자처럼 으르렁거리지만

아기 양처럼 순해요

 

하마처럼 서툴기도 하지만

다람쥐처럼 잘하기도 해요

 

코끼리처럼 힘차다가

아기 고양이처럼 여리기도 해요

 

....

 

속으로는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겉으로는 단단하고 숨기를 좋아하지요

 

우리 딸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이에요

 

휠체어를 탄 딸아이

 

 

이 책의 바느질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엉성한 부분도 실이 풀어진 곳도 있고 바느질 뒷면도 그대로 보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 뒷면에는 삐뚤빼뚤한 실 자국이나

튀어나온 매듭 같은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본성은 완벽하지 않고 어떤 일이나 마무리는 힘든 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앞면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고통은 수를 놓은 천과 같다

천의 뒷면은 많은 색깔의 실이

얽혀 보이기에 나쁘다

고통을 단지 괴로움으로 보는 것은

뒷면만 보기 때문이다

천의 앞면을 보면 혼란하던 실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무질서 너머의 아름다운 미래를 본다

St. Augustinus

 

 

우리 주님, 지금 이 시간 우리를 향하여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