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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121th 약속 / 갈라디아서 1장 1-10절 /다른복음은 없나니

 

 

  학생들이 처음 간 학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낯설고 힘든 환경에 마음을 열 수 있고 도시락을 같이 나누어먹고 농담도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처음 사귄 학급친구가 새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어 갈라졌는데 들려오는 소식이 그때 성실하고 착한 모습과는 달리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안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면 느낌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찾아가서 말릴 것이다. 예전의 너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고 다시 너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입에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할지 모른다.

 

오늘 우리는 사도바울이 처음으로 사도가 되어 전도하면서 세운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의 모습을 듣고 우려하는 목소리로 너희가 처음 받았던 복음에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사도바울이 예수믿는 자를 핍박하다가 예수를 믿고 처음으로 그 복음의 열정을 전하여 준 곳이 바로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같은 지역의 갈라디아 지방이었다. 심지어 돌로 맞아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침을 당하기까지 복음의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다. 그들은 또한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4:15)할 정도로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도 바울을 사랑했다. 그런데 웬 말인가? 그들이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전해준 이상한 복음에 귀기울여 이상한 데에 빠져있는 것이다.

 

 

본 론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이 세워주고 인정해준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이 맡겨주시고, 또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 주심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람으로 말미암음이 아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된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 누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왔는가? 우리는 다른 지식이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오지 않았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그 무엇을 얻기위해 온 것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그 무엇을 전해 주려 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어떤 저자가 쓴 이야기,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을 증거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 온 것도 내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요 사람들의 권유로 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올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

그는 그와 함께있는 믿음의 식구와 더불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바로 자신의 첫사랑과 같은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말이다. 그는 은혜와 평강으로 축복함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그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마나 이 말이 중요한지 가장 서두에 하고 싶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바로 이 악한 시대에 친히 자신의 몸을 드리신 예수그리자신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이 시대는 바로 악한 시대다. 바로 우리의 죄성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가운데 행하고 있는가? 우리가 죄를 안 짓고 싶어 해도 우리의 시대가 악으로 가득차서 오염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 한마디로 충분했지만,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하셨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감격이 있지 아니한가? 그냥 이 사실을 넘어갈 수 있는가? 사도바울은 이 일을 말하면서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고 찬송을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사실을 알고도 얼마나 무미건조해 있는가? 우리는 찬송을 기쁨으로 부르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이고 또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께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드리신 그 사실이 복음이요, 다른 어떤 구원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요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이는 꿈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면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어떤 이는 과학적 지식에 따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들의 책이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학교 교과서에 나온다고 진리인가? 신문에 떠든다고 그것이 진리인가?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의 진리이다. 누군가 학생들에게 학교선생님이 혹은 주위친구나 어른들이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은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속히 떠나 복음을 변질시켰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뭔가 구원을 얻을만한 또 다른 복음은 없다. 도를 아십니까? 복음외에 더 이상 필요가 없다.

 

 

 

하늘로부터 천사가 퍼득거리며 날아와서 이야기한다해도 그 복음외에 다른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선언하고 있다. .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얼마나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가? 부모님과 주변인들 학생들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 마찰없이 지내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 또한 다른 복음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이고 있지는 아니한가? 사도바울은 다시금 언급한다.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끝까지 양보 못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의 복음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를 악한세대의 죄에서 건짐받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 사도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들의 말에 맞장구쳐주고 그들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호소한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호의를 얻기위해 잘못된 지식에 동의하고 그것을 외워서 적고 수를 받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믿지 않는 부모님께 잘 보이기 위해 교회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가?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 예배를 우습게 여기지는 않는가? 사도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고 그 분의 기쁨을 구하는 자라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알고 있는가? 단지 내가 믿었고, 부모님이 교회다니셔서 오늘 교회 나온 것인가?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분이 우리를 미리정하셨고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8:30)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그 분의 은혜에 찬송을 드리자. 이 세대는 악한 세대이다. 그것을 우리는 얼마나 절박하게 알고 있는가? 그리고, 이세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십자가의 복음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하여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냥 편하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위해 그들의 삶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리를 확신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심정으로 복음을 증거하여야 할 것이다.

 

44일이 부활주일이었다. 부활은 우리 구주 예수님이 우리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를 위해 다시 사신 기쁨과 축제의 날이다. 이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믿는 믿음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증거하여 주는 것이다. 믿음으로 한 영혼 이상씩 작정하고 지금부터 기도하고 그들을 교회로 초청하여 그들생애 한 번이라도 복음을 접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내 속에 바울처럼 복음에 불붙는 열정을 허락하시도록 기도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