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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126th 약속 / 시편 136편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에 행복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한가지 테스트가 있다. 바로 감사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류근 시인은 말한다.

돌아보면 하루 한끼를 먹기위해 폭염속을 걸어가는 노인이 있고,

습식 사우나 같은 쪽방에서 누워 앓고 있는 실직자가 있고,

홍수에 한 해 농사를 다 망친 육촌 형님이 있다.“

 

  곁이 없이 홀로 있는 사람들마다에 다 만인의 견이 되어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모두가 만나길 바래 본다.

 

  아이였을 때는 받은 선물 자체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 받은 선물(gift)보다는 주신 분(giver)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할 최고이 대상이 누구임을 알려준다. 영존하시는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임을 선포한다.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자유케 하신 주님의 구원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껏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우리 필요를 신실하게 공급해 주신 하나님.

  _이동원, 묵상의 샘. 압바암마, 2014. 290-291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이 반복 후렴구는 이 노래 26개 절의 마지막에 계속해서 되풀이 된다. 전체 시편에서 이와 같은 시편은 없다. 이 시편은 원래 성막이나 성전에서 노래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레위 성가 지휘자가 각 절의 첫 행을 노래하거나 낭송하면 레위 성가대나 전 회중 혹은 레위 성가대와 회중이 동시에 이에 화답해 후렴구로 반응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 시편은 인도자에게서 성가대와 회중에게로 그리고 다시 인도자에게 일제히 빗빗발치듯 연속해서 불려졌다.

 

1/ 하나님의 찬송에 대한 감사(1-9)

2/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감사(10-22)

3/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감사(23-26)

_스티븐 J. 로슨 Main Ideafhvn는 시편 76-150. 김진선 옮김. 디모데, 2008.643

 

우리가 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은 선창과 호흥으로서의 의미가 따로 없어 함께 부르기에 맛이 덜하다. 그러나 찬양에서 이끄는 부분과 호응하는 부분이 나뉘어있다면 찬양은 이끔과 호흥이 반복되면서 점차 고조될 것이다.

후렴구는 다함없는 그 사랑 영원하여라이다. 후렴으로 호응하는 이는 앞부분의 인도자가 그들 삶에 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며 그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는가를 기다리며 기대하고 그에 호응한다. 인도자는 기다리는 대중을 향해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와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한 호흡 한 호흡 더하면서 고조시키고 비약을 감행한다.

찬양 가운데 그 은혜에 놀라며 찬양을 주고 받으며 역할로 나뉘어져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동화되고 하나된다. 성음상화(聲音相和)요 울림이 계속되는 기도이다. 피조된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부르는 인생으로도 감격이요 노예살이에서 구원받은 믿음의 백성으로도 감읍이다. 선창에 감격하고 후렴에 감읍한다.

_오경웅. 시편사색. 송대선 옮김. 꽃자리, 2019. 729-730

 

이 하나님 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첫째는 창조의 과업 이다. 하늘, , , 큰 빛인 태양,달과 별들그리고 낮과 밤이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여 생겨났고 하나님의 명에 따라 운행하고 하나님은 낮과 밤을 만들어 세월이 가게 한다.

그러나 이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고 지배하심만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시고 간섭하신다. 이 세상의 권력자의 횡포를 용납치 아니하신다. 강한 자를 치시고 약한 자를 돌보신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민족 해방의 기쁨을 가지게 한 것은 모세의 지도력이나 백성들의 단결의 결과가 아니다. 야훼 하나님이 그들을 압박의 쇠사슬에서 풀어 인도해 내셨기 때문이다.

애굽의 장자를 치고 강한 손과 펴신 팔로 홍해를 가르시고 바다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다. 이 탈출을 방해한 바로와 그 군대는 바다에 빠지게 하셨기 때문이다.”

 

시인은 광야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조목조목 언급한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불순종으로 40년을 방황했던 만큼 지우고 싶은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겨본 적도, 이겨볼 생각도 못 했던 큰 왕들을 하나님이 단숨에 제압한 역사의 장소로 길이 간직해야할 길이었다.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게 된 이후, 광야 40년의 생활은 더 큰 고통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 광야를 무사히 지낸 것도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다. 더욱이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의 강한 저항을 받았으나, 이 적들도 하나님 이 무찔러 주셨다. 그리하여 그들의 선조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가나안 땅을 그들의 기업의 땅으로 가질 수 있게 하셨다. 진실로 이스라엘은 본래 비천한 한 작은 민족이었으나 그들의 역사에 부닥친 온갖 시련과 고통에 망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더 크고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나라없이 광야를 행군하는 이스라엘의 곁을 끝까지 지키셨다. 비천할 때도, 짓밟힐 때도, 궁핍할 때도 제 때 도우셨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라도 하나님의 기억에는 밟히는 존재가 백성이다. 결국 끝까지 남아 지켜주실 분은 하나님뿐임을 잊지 말자.

_ 김정준. 시편명상. 한국신학연구소. 2004. 428-429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할 때, 그들은 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인자하심그 사랑그 은혜, 그 은총이 너무 크고 고마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스라엘의 감사 찬송을 읽고 난 우리의 소감은, 왜 하나님 이 이스라엘만 사랑하셨느냐? 하나님은 편애(偏愛)를 하셨다고 불평도 할 수 있으나, 우리가 구약 여러 곳에서 보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과 그 역사는 다만 하나님 자신의 계시를 인간들에게 보여 주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어느 민족이든 하나님 의 은총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구약에서 이미 열려져 있었다. 신약에 와서 이 길은 더욱 분명해졌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특징은 그 영원함에 있다. 그 인자하심이 우리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서 단절되거나 공백기가 존재한다면 어찌 되었을까. 늘 존재해서 평소에는 효력조차 못 느끼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의 부재는 곧 하나님의 부재로 느껴지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신명기 76-9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타자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분주한 세상에서 여러모로 우리를 생각하시고 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존재감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자 우리가 돌려드려야 할 고백이다.

 

 

 

내게 너무 바보같은 당신 (시: 옥명호, 일러스터 : 고수영 작가)

 

 

내가 상처로 혼자 울때 당신은 내곁에서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수없이 회의할때 당신은 나만을 굳게 확신하였습니다.. 내가 혼자서도 설수 있다며 고집부릴 때 당신은 쓰러진 내 몸밑에 먼저 엎드렸습니다.. 당신이 나를 부를때 난 듣지 않았고 당신이 손 내밀때 필요없다며 뿌리쳤고 당신이 한발짝 다가오면 난 열걸음 달아 났건만 바보같은 당신은 단 한순간을 날 미워할 줄 몰랐었지요.. 내가 당신을 수없이 원망하여도 당신 눈동자엔 눈물만이 깊어질뿐 당신을 향해 비수를 빼 들었어도 나를 향해 환한 팔을 벌렸습니다.. 내가 나의 모습에 한 절망을 들이 킬때 당신은 나를 보고 세상의 빛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포기하여 주저 않을 때에도 당신은 나를 향한 소망을 버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늘 당신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당신은 나를 묶어 둔적이 결코 없습니다.. 배반을 되풀이 하는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너무나 영약하게굴었지만 당신은 나에게 늘 바보같기만 하였습니다.. 이토록 내게로 오지 아니 하였다면... 난 바알의 포로, 어둠의 이름으로 살았겠지요.. 핏빛 사랑 고백으로 바보처럼 오신

그때. 나는 당신의 연인 빛의 이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