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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말씀 묵상

시편 92편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하나님을 지극히 광대하게 찬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위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너무 인색한 데 있다.“

_Matthew Henry

 

 

 

 

[안식일의 찬송 시]

 

1/ 하나님께 찬양(1-3)

 

[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2]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3]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2/ 하나님이 행하신 일(4-7)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3/ 악인의 심판(9-11)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4/ 의인의 형통함(12-15)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마음문을 열며

 

시편 92편의 머리에는 안식일의 찬송시라는 소개가 있다. 안식일에 사용된 예배시로 보여진다. 지금의 교독문과 같은 것이다. 이 시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과 안식일의 지키는 자는 축복을 읽어 낼 수 있다. 안식일은 아무 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다. 예배의 날이며 영적 안식의 날이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날 만큼은 우리의 인생의 주인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들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나날을 살고 있지 않는가? 이런 생각들은 우리로 쉽게 인생의 주인을 잊게 한다. 안식일의 고요 속에서 주인 되신 그 분이 누구시며 그가 지난 한주간도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묵상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며, 같은 마음을 지닌 다른 신자들고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특별한 날이다. 구약 성도들은 일주일의 마지막 날 안식일에 공적 예배를 위해 모였던 반면(20:8-11, 23:3),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의 첫날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공적 모임을 가졌다(20:7, 고전 16:2). 신자들은 주마다 찬양 드리는 이 지정된 시간 외에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찬양의 궁전이 되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날마다 종일토록 찬양하는 삶이 신자의 생생한 현실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적 모임은 항상 특권이므로 최대한 중시되어야 한다. 시편 92편은 그분의 백성들이 갖는 공적 모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유익한 지침을 제공한다. 여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의 정당성(1-3), 찬양하는 이유(4-11), 그 결과(12-15)가 소개되어 있다.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에서 악인의 시간은 티끌만도 못하다. 활짝 핀 악인의 시간을 부러워 말고, 아직 봉우리를 터트리지 못했을지라도 의인의 시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그 시간을 채우기에 아직 우리에게는 못다 한 찬양이 가득하지 않는가?

 

 

 

 

 

 

 

 

 

 

 

 

 

본문과 씨름하며

 

1/ 하나님께 찬양(1-3)

 

[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2]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3]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2,3절은 아침에 주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저물 녘엔 주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네 십현금을 타며 그 고운 가락에 이 내 몸을 의지하네라고 노래한다. 찬양이 젖어든 영혼의 가락이 깊이 배어있고 배어있던 것이 자연스레 우러나온다. 터져 나오는 노래에 녹아든 영혼의 기쁨만이 가득하다. 함께 읊조리게 만든다.

아침과 저녁이란 표현은 시인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지를 보여준다. ‘인자와 성실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으로서 하나님이 하신 일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일과 그 속성을 찬양함에 입으로만 아니라 열 줄 현악기와 비파과 수금 등 악기로도 연주한다. 시인처럼 때를 가라지 않고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성도가 배워야할 마땅한 바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마지못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다. 넘쳐흐르는 기쁨이 폭발하는 것이다. 감사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노래를 터뜨리는 것이다. 매일 아침은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형식을 제공한다.

 

2/ 하나님이 행하신 일(4-7)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하나님 찬양을 기뻐하는 시인의 그의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한다. 4-5절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세 차례나 언급한다. 그는 하나님이 손수 행하신 일들에 감격하며 탄성을 지른다. 시인은 하나님의 그 일들에 감추어진 지혜에도 경탄한다. 그가 하시는 일은 위대하고 계획과 생각이 매우 깊어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확실한 원인도, 분명한 결과도 전혀 모를 때가 있다. 그러나 눈만 크게 뜬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계시다는 증거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지혜로운 관찰력이 새로운 찬양거리를 찾아내는 법이다. “그분 만나는 날 영접하고, 깨닫는 날 송축하네”, 제라드 맨리 홉킨스, “도이칠란트 호의 난파‘)

 

3/ 악인의 심판(9-11)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시인은 하나님을 모르고 악을 저지르는 하나님의 원수들이 궁극적으로 심판 받을 것을 확신한다. 이 악인들은 정녕 패망하고 다 흩어져,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뿔()을 들소의 뿔처럼 힘 있게 높이셨고 그에게 신선한 기름을 부어주셨다고 말한다. ‘신선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14절에서는 나뭇잎의 풍성하고 푸름(빛이 청청하니)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원문에서는 11절의 보응 받는 것에 해당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 시인이 원수들에 대해 직접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7, 9절을 고려하면, 시인이 목격한 것은 원수들이 패망하여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이며, 무성히 자라났다가 영원히 뽑혀 말라버린 풀과 같은 모습이다. 덧붙혀, 시인은 자기의 원수(11)를 하나님의 원수(9)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시인처럼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는 자에게 대항하는 악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생각과 일하심의 정의를 알지 못하고 대항하는 자들이다.

 

 

4/ 의인의 형통함(12-15)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악인의 멸망을 선언하고, 이제 의인의 형통의 축복을 선언한다. 의인을 종려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한다. 의인은 이 나무들처럼 번성하고 성장하는 복을 받을 것이다. ‘번성하다는 나무가 싹을 내고 뻗어나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성장하다는 잎이 무성함을 표현한다. 종려나무나 백향목처럼 번성하는 의인의 모습은 풀처럼 번성하는 악인과 대조된다(7). 종려나무는 크고 곧은 줄기, 푸르고 긴 가지, 무성한 열매로 유명하며, 승리의 상징이 된다(21:8, 7:9). 백향목은 레나논에 서식하는 나무로 단단하고 높게 자라 최상급 목재로 아려져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 두로 왕 히람에게 레바논 백향목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번성과 형통함은 나무자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 나무들이 하나님의 집에 심겼기 때문임을(13)밝힌다. 생명의 근원 하나님이 계신 곳인 성전 뜰에 옮겨졌기 때문에, 나무의 뿌리가 항상 물 공급받아 마르지 않고 풍성한 잎사귀를 내는 것이다(1:3).

의인은 나이들어도 계속 열매를 맺는 복을 받는다.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나무와 같은, 종려나무는 푸르고 무성할 뿐 아니라 수년이 지난 후부터 한 나무에서 엄청난 양의 대추야자 열매를 맺는다. 시편 52편에서도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고 있는 시인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올리브나무로 비유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할 것라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것이 바로 그 예시다(52:8-9).

(52:8-9)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퇴보하거나 닳아 없어지지 아니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할수록 더욱더 원기 왕성해진다. 노년에 가장 생생하게 피어나는 믿음의 꽃봉오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 하나님, 날마다 새로운 힘을 공급받을 때 사랑과 소망의 진액이 저의 핏줄을 타고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찬양과 사랑으로 의의 열매를 노래하게 하소서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는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함의 기쁨을 얼마나 누리고 있는가? 코로나로 예배의 모임의 위축되고 모이기 힘든 상황에 있지만, 그리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공동체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5),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 영적으로 더 가깝게 마음으로 더 가깝게 성도들과 함께 소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지혜와 애정을 갖게 하옵소서.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침에는 제게 내려 주시는 사랑의 햇살과 함께 새 날을 맞이 하겠습니다. 저녁에는 무릎 꿇고 당신의 축복을 받겠습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는 제가 아는 모든 곡조로 당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오 하나님! 매사에 당신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영민한 마음을 주소서. 창조 세계 속에 펼쳐진 자비로운 모습과 구원 사역 속에 나타난 신실한 목적을 보게 하소서.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지 않고 당신의 빛 가운데 걷는 사람들과 동행하게 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