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번쩍거리는 광고들. 끊임없이 이린 저런 상품들을 소유하기만 하면 바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이런 광고들에 포위로 우리는 항상 자신의 현재에 불만족하게 된다. 그래서 광고의 미끼대로 소비로 뛰어든다. 그러면서 불만의 신속한 해결을 되풀이해서 체험한다. 체험의 대가는 값비씬 것이다. 여기저기 신용불량자가 속출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는 조급증 환자가되었다. 우리의 집중력은 한심할 정도로 짧아졌다.
인스턴트 시대,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빠르고 단순한 것에 집착하는 조급증 환자가 되어간다. 하지민,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내면의 속도이다.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할 친구를 사귀는 것,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하는 것, 풋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좋은 것을 얻는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영혼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130년의 험한 인생을 살아오고 17년의 애굽에서의 마지막 인생여정을 마치는 야곱이 그 아들들을 축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영혼의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창 48:8-16)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 이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원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 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49:22-26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
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
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
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
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1. 야곱이 병들었다함을 들은 요셉이 두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야곱은 그들을 어떻게 맞이하
는가?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회고하고 있다.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
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서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3-4절) 요셉에게,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한다.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그렇게 자녀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요셉은 요셉지파가 아닌 두 지파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남게 된다.
2. 8절에 보면 요셉이 데려온 아들들을 보고 묻는다. “이들이 누구냐?”
20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고 진술한다.
야곱은 볼 수 있는 것인가? 볼 수 없는 것인가? 할아버지가 거의 20년동안 한 곳에 살면서
도 손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야곱이 완전히 눈이 먼 것은 아니다. 그는 두 몸이 자기 아들 옆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야곱의 이러한 질문은 축복을 위한 공식적인 서언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야곱의 생애 마지막에 아버지 이삭과 같은 문제를 겪는다. 즉 시력이 약해지는 것이었다.
요셉은 야곱이 축복하도록 아들들을 야곱 바로 앞 팔로 뻗는 거리에 데려온다. 야곱이 손자를
축복하기 전에 입 맞추고 안음으로 애정을 보인다. 야곱은 자기 시력을 잃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감정은 잃지 않고 있다.
11절 손자들은 이제 야곱앞에 서지만 야곱은 요셉에게 말한다. 요셉이 “하나님이 여기서 내
게 주신 아들이니이다”라고 하는 것은 야곱이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라고 하는 것과 조학를 이룬다.
야곱은 자기 날이 얼마 안되고 험악했으며,게다가 아버지와 할아버지만큼 오래 살지 못했
다고 한탄할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손자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유일한 족장이다. 아
브라함과 이삭의 자녀들 이삭과 야곱의 자녀들이 서로 왕래했음을 보지 못했다.
13절 요셉은 두 아들을 야곱의 침대 끝에 데려온다. 요셉은 둘재 아들 에브라임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잡고는, 그를 야곱의 원쪽 앞에 둔다. 첫째 므낫세를 원손으로는 야곱의 오른쪽
앞에 둔다. 요셉은 축복에 있어 중요한 오른손이 장자 위에 놓일 것이라 생각한다.
14절 하지만,야곱은 모두에게 놀랍게도 자기 손을 자로 질러 오른손을 동생에게 왼손을 형
에게 둔다. 결국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야곱은 시력은 잃고 있지만 통
찰력은 잃지 않는다.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
님,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야곱의 생에 가운데 자녀들에게 축복한 이 일을 그가 믿음으로 행한 유일
한 일로 기록하고 있다.
(히 11:20-21)『이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 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땅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아벨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을 때 형 가인은 분노했다. 야곱에게 장자권이 넘어간 후 에
서도 분노했다. 그런데, 므낫세는 불평과 시기 대신에 오히려 동생을 향한 축복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몫의 축복을 즐거워 한다.
야곱의 축복은 (1) 하나님께 탄원(15-16a), (2) 축복을 위한 기도(16b), (3) 축복과 기도의
결과(16c,d) 세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48:4)을, 야곱은 이 두
아이들에게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야곱이 바라는 다른 결과는 자기 이름 및 아버지
와 할아버지의 이름이 에브람과 므낫세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에브라임과 으낫세가 야곱의 아
들로 알려지는 것이다.
17절 요셉은 약한 시력 때문에 아버지가 에브람과 므낫세를 혼동했다고 여긴다. 요셉은 야
곱의 왼손을 에브라임에게 옮기는 것 보다 야곱의 오른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옮기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요셉은 축복이 일단 선언되면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심
지어 야곱이 속아서 선언했다 하더라도,이삭은 야곱에게 한 자신의 축복을 되돌릴 수 없었
다.
19절 야곱은 말한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야곱은 에브라임에게 부여된 특별한
역할의 특성을 깨닫는다. 에브라임은 므낫세보다 더 클 것이며,그의 후손은 이름이 제시하는
대로 크게 될 것이다.
맏아들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이 장자가 되게 하신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에서
가 아니라 야곱이,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이 장자의 기업을 받았다. 하나님은 당시의 사람들의
관례나 체제에 자유로우시다. 나중 된 자로 먼저 된 자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자동
적으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셨고,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게 하셔서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고전 1:26-3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
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
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
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
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이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윰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D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야곱은 하나님께 돌아가기진 자녀들을 모두 모아 그들의 지금까지의 삶을 요약하며 분량대
로 축복한다.
49장 1절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라’
우리의 삶은 주님보시기에 과연 어떠한 삶으로 살아가는가?
49장 22-26절에서도 요솁에 대한 야곱의 축복이 나온다.
[22] 요생은 무성한 가지 곧 생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
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
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
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생의 복과 젖억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
란로 돌아오며 그_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그 형제중에 뛰어난 자926절)은 히브리어 ‘나지르’이다. 구별하여 드리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존귀한 자이다. ‘나실인’과 같은 어원이다. 결론적으로 야곱은 족장들의 축복이 요셉에게
임하도록 기도한다. 실제로 축복은 “요셉의 머리, 나실(뛰어난 자)의 정수리”에 임할 것이다.
나실인의 머리를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그의 구별됨이며(민6장L 포도주를 삼가는 것이 함께
일시적 나실인과(민 6장),항구적인 나실인(삼손, 사무엘)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니는 금지사항
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머리’와 ‘나실’의 이런 연결은 흥미롭다.
야곱의 축복 그 신탁은 요셉을 ‘나지르’로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창 49:28)『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
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그리고,자신의 매장지를 유언한다•
(창 49: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야곱은 두 아들이 약속으로 누릴 땅은 눈 앞에 있는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이라고 알려준다.
그는 확실성을 증명하려는 듯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뺏은 땅을 덤으로 요셉에게 더 주었다.
(창 48:20-22)『[2이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
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
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솁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到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돈이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자본주의 물질주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하나?
일리아드 오딧세이아_
한 섬에서 뭔가를 마시고 돼지가 되지만 인간성을 기억을 가진 선원들
양자의 선택____
인간의 기억을 망각하고 돼지되기 vs 인간임의 고통스런 기억을 끊임없이 상기
행복보다 더 소중한 것
1/유대감(시냅스처럼 연결된 사람들)
2/목적(나를 필요로하는 사람들)
3/초월성(나보다 큰 존재에 맡김, 자신의 내면성에서 거리두기)
4/스토리텔링(인생은 한편의 서사시 대하소설, 자신의 인생을 재구성하여 후세대에게 도움되게 들려주기)
에밀리 에스파니 스미스(Emily Esfahani Smith)라는 분의 ‘삶에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네 개의 기둥이 있는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첫째는 유대감/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든든한 유대가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 우리 벗님들이 함께 우정으로 세워가는 사랑별 모임과 독캠이 바로 그 예라고 칭찬해주신다.
둘째는 목적에 대한 자각/
‘목적이 이끄는 삶‘ 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할 때 우리 삶이 든든해진다고 했다.
셋째는 초월성/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깊은 사색을 통해 창작해 내는 행위가 바로 그런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해준다는 것.
넷째는 스토리 텔링/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인데...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라고 했다. 누구도 우리 인생 책을 대신 써줄 수 없지만 나의 성공이나 실패했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격려해주시다.
우리에게는 그 이야기를 실패와 쓰라림, 부끄러웠던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 경험들을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심
에밀리가 말하는 자기 아버지 이야기 가운데 수피교도였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심근 경색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을 때. 수술에 앞서 마취실에 들어간 그는 잠들기 전에 의사가 숫자 열까지 세리고 할때 숫자를 헤아리기보다는 자기 아들과 딸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고 했다.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자기의 마지막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이 네 기둥을 굳게 붙잡아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근본적 사실을 믿는 것. 그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불의를 떠난 삶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삶이 곤고해도, 세상이 여전히 혼탁해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자. 이 믿음이 있어야 낙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사랑은 이어지고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고 있다. 고단하지만 삶은 이렇게 계속되어야 하고 그 최악의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바꾸는것은 여전히 믿음 이며, 우리가 쾌활함과 친절함을 놓치지말고, 지향을 분명히 하고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하신다.
인생은 살만한가?
내가 처한 일상의 하루하루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사람은 이미 아름답다.
그의 속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으니까 _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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