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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말씀 묵상

시편 78 편 32-55절 (下) _ 고집불통 이스라엘

 

 

시편 78 편 하() 조상들의 고집불통

 

시편 78 편은 출애굽과 가나안의 역사 전체를 아울러 전개시키는 파노라마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과 이스라엘의 빈번한 배반과 거역을 역사를 통해 대조시키고 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위 중의 하나는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다. 구약을 기억의 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과거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그 분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셨고 우리 겨레는 어떻게 응하였으며 그 결과 어찌 되었는지를 바르게 기억하는 것,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낳는다. 과거를 바르게 기억하는 이가 미래에 올바른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오경웅은 이 시편의 제목을 조상들의 고집불통이라고 하였다.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은총에 대한 감격보다는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음을 거듭 저지른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기억한다. 부끄러운 모습을 주님 앞에 드리는 중에 다듬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더 선명히 느낄 수 있으리라1 긴 호홉의 노래이니 끊임없이 입에 담아 부르는 중에 부지불식간 깨어 있는 신앙으로 이끌려 갈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칼빈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2절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매를 맞을 때 지혜로워진다는 격언이 있다. 결론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도 사람들의 회개하지 않고 마음이 변화되지 않아서 완전히 실망시켰다는 말이다. 그들은 어떤 벌이 내려져도 고치지 않았다. 힘세고 씩씩하던 사람들이 죽어서 땅위에 뻗어 있는 모습은 하나님의 보복이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오싹한 광경을 보고도 느끼는 바가 없었다.

 

33절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어 보내게 하시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외에는 광야에서 모두 멸망하리라 하셨다. 나머지 사람들은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스스로 닫고 난 뒤에 40년에 걸쳐 광야에서 죽어갔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일

 

1. 정탐꾼들의 보고

 

사십일간의 정탐을 마친 정탐꾼들의 보고회가 열였다.

그들의 증거물로 그 땅의 실과를 보였다.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왔는데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왔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이 그 땅의 실과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장대한 거인족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이때, 갈렙이 나와 말한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말한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니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아낙자손들에게 겁먹은 이스라엘 백성과 믿음으로 골리앗 앞에 나아간 다윗의 모습을 대조하여 생각하게 된다.

과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어정쩡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앞에는 아낙자손이요, 뒤에는 광야가 있다.

세상으로 가자니 들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세상길로 가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생활하자니,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2. 원망하는 회중들

 

이 두 보고서 중에 사람들은 전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했다고 했다.

우리가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

그들의 곡함이 차라리 하나님을 향한 간구나 그들의 믿음없음에 대한 회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앙의 단두대는 고난이다.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 하는가 아니며, 원망하며 다른 계획을 세우는가가 우리의 평상시 신앙을 판가름 한다.

 

3. 옷을 찢는 갈렙과 여호수아

 

이 불신앙의 모습을 본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는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인데, 여호와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마고 하셨는데,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고, 그 땅 백성을 두려워말고 가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가나안 정탐을 마친 12명중 하나님의 약속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며, 저것 우리 밥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두사람 뿐이다. 10명의 정탐꾼과 그 보고를 들은 모든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메뚜기 관점을 가졌다. 우리 별거 아닌데, 저 땅에 들어갈 꿈이라도 꿀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

 

기도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자에게는 현상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고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환란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는 것이다.

고후1:8-10 바울 사도는 말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가운데서 세상에 삼키운바 되거나 도망하며 살지 않고 세상을 담대히 정복하며 살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믿음의 눈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붙드는 믿음이다.

우리는 매일 두가지 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세상의 소리요, 하나님의 하나님의 음성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이다.(딤후1:7)

세상은 우리에게 근심을 준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다.(14:1)

 

 

성경은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고전10:6)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고 했다.

그런즉, 우리는 선 줄로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며

반면, 낙심하고 뒤로 물러서야 할 것처럼 약해질 때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전10:13)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가 되신다. 의인으로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10: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 찌라도 주를 찾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께 기도하자.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칼빈의 시편주석에서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비록 하나님이 그들의 겹친 죄악을 참으셨고 그들을 용서하심에 자비를 베푸셨으나 그들은 그가 인자함을 베풀 때마다 그것을 이용하고 그가 그들을 혹독하게 대할 때는 끈질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그들이 완전히 죽임을 당하지 낳은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그들 중 몇 사람은 살리기로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정하시는 이유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인간은 쇠락에서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지나가 버리고 저절로 떨어지며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비유된다.

욥은 말한다.

(14:7-10) [7]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시편 103편을 통해서도 보게 된다.

(103:13-16)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53]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자신의 양 떼로 삼으사 조금도 싫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먹이시고자 자신을 낮추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품고 계시는 독특한 사랑의 표시이다.

애굽을 놀라운 기적을 통해 탈출하자마자,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다음과 같은 불평의 토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14:11-12)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54]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면서 소망을 얻게 된다.

(2:1-9)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