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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70th 약속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_삼하 22장 29-37절_ 김광영













[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7]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12월 마지막째주 설교

Sun, 29th Dec 19

  


 

<NIV>

 

(삼하 22:29-37)

[29] You are my lamp, O LORD; the LORD turns my darkness into light. [30] With your help I can advance against a troop; with my God I can scale a wall. [31] "As for God, his way is perfect; the word of the LORD is flawless. He is a shield for all who take refuge in him. [32] For who is God besides the LORD? And who is the Rock except our God? [33] It is God who arms me with strength and makes my way perfect. [34] He makes my feet like the feet of a deer; he enables me to stand on the heights. [35] He trains my hands for battle; my arms can bend a bow of bronze. [36] You give me your shield of victory; you stoop down to make me great. [37] You broaden the path beneath me, so that my ankles do not turn.

사무엘서는 한나, 사무엘, 사울, 다윗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의 생존시기는 주전 1000년 전후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주전 1800년경)과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때의 중간 시기이다.

사무엘서 주석가 인 한스헤르츠베르크는 한나 이야기 뒤에 나오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세 폭짜리 그림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한 획을 그었던 사무엘과 다윗 그리고 문제의 인물 사울, 이 세사람은 왕국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며 셩경의 많은 메시지가 그들의 삶과 투쟁에 묻어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진정한 왕의 전조(前兆)이자 사자(使者)들이다.”

 

사울과 여타의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쫓겨다니던 다윗이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진 후 부른 노래이다. 그 감격과 은총을 어찌 압축해서 한 두 마디로 말할 수 있으랴? 긴 서사의 시를 드려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고, 치욕에서 영광으로 높이 올려 졌으니 그 감격 속에 담긴 심정을 고작 언어로 어찌 다 드러낼 수 있을까? 찬양이 이어질수록 부족함만 느끼지 않을까? 누릴수록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님의 은혜요 그에 비해 감사와 찬양은 점점 더 부족할 뿐이다.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의 승전가이다. 1절을 보면 말한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한해의 마지막주에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관통한 그 은총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자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에 예배하며 노래하는 자였다.

시편이 우리로 하여금 여러 시간의 교차점, 곧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만나고 과거 그때 지금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교차 하는 그 지점에서 기도하고 노래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아가는 인생의 리듬 안에서 그러한 감정들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수십 년의 싸움이 끝나고, 전쟁이 끝났다. 다윗은 마침내 그의 적들에게서 쉼을 경험했다. 다윗이 이겼다. 이 역사적 배경을 강조하고자 삼하 22장은 시편 18편을 거의 단어 대 단어로 포함시킨다. 이 시편은 다우시의 인생에서 거의 끝무렵에 만들어졌다. 시편 119편과 시편 78편에 이어 세 번째로 긴 시편이다. 다우시은 멋진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갈등과 전쟁의 긴 인생을 돌아보며 반추하고 있다.

 

이것은 아주 기쁨이 넘치는 기도다. 다윗의 시 가운데 이 시 만큼 다윗의 인생 전체를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시는 없다. 폰 발타자르는 초대교회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이레나이우스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완전히 살아 있는 한 인간이다”, 다윗이 바로 이레니우스가 말한 그런 사람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셨고 다윗을 통해 말씀하셨다. 지금은 다윗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다. 다시 말해 다윗이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말씀은 한 가지 상황, 즉 한 세계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존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어떤 세계다. 즉 언어는 계시다. 그 상황이 여기에서는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이라는 구절에 상술되었다. ‘구원하셨다’(delivered)라는 말은 다윗의 기도에 나오는 핵심 용어다.

구원하셨다와 동의어인 건져내셨다’(saved)는 다윗의 기록에 14(명사나 동사로)나온다. ‘구원하다건지다는 다윗의 기도를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동 안에 깊이 뿌리박게 한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행동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순서가 정반대다.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시고 그 다음에 다윗이 기도한다.

 

여러시대를 걸쳐 다윗의 이야기를 읽는데 하나의 관습이 전해져 온다. 내러티브를 읽을 때, 다윗의 시편들을 적절하게 함께 읽는 것이다. 내러이터는 시편을 하나 선택해서, 다윗의 일생을 요약하는 지금 시점에 그 시편을 두었다. 일종의 고별사로 시편 18편을 선택하여 사무엘하 22장의 다윗 이야기에 집어넣었다.

 

시편 18편을 연으로 나누어 보면 이러하다.

1. 서두의 찬양(1-3)

2. 시편 기자의 간구와 하난님의 현현(4-19)

3. 하나님의 선하심(20-20)

4.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과 그의 종(31-45)

5. 살아계신 여호와에 대한 결론적 찬양(46-50)

 

시편기자는 개인적인 성찰로 돌아간다(28-29). 이러한 성찰을 통해서 그는 자기가 당한 위기와 자신에게 임한 구원을 회상한다. 그는 죽음과 스올에 거의 사로잡힐 뻔하였다(4-5). 여기서 죽음과 스올은 어두움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빛을 제공해 주었으며(28),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어둠을 몰아내었다. 그는 적들의 위협을 받았으나(3) 하나님에 의해 보다 큰 적의 세력(적군)을 공격하고 ’(적의 요새나 성읍의 성벽, 29)을 뛰어 넘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이러한 명상들은 그의 도가 완전하심’(30). 하나님님을 찬양하지 않고서는 끝날 수가 없었다(30).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12:5-6)은 완전하게 의지할 수 잇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난처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방패시다.

 

(12:5-6)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29절부터는 그의 가슴이 감사와 확신으로 넘쳐 흐른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등불을 밝히실 것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힘을 주셔서 그가 겪는 고통의 어두임이 그가 하나님과 연할 할 때는 그로 하여금 더 이상의 일을 하도록 격려해 주는 그 새로운 생의 기쁨과 새로운 생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다윗과의 신뢰관계를 지키셨고 그의 약속의 이행하셨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로 피하였을 때 그를 지켜주셨던 방패였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하루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에 빛이 떠오른 법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불로 우리의 등에 불을 붙이실 것이다. 하나님이 붙이신 불은 마귀가 끌 수 없다. 모든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것은 아니다. 진실로 빛이란 감미로운 것이며, 태양의 빛을 받는 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면 모든 슬픔을 제하시고, 성도들로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긴긴 겨울밤에 등불을 켠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빛을 받는 것은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애굽의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을 아껴서 등의 기름을 산다고 한다. 어두움 속에서 앉아 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29절부터는 다윗의 기도는 간증으로 바뀐다.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준비시키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다윗은 행동하는 다윗, 하나님이 힘을 불어 넣으신 다윗,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다윗이다.

그러나 다윗이 기술하는 실제적인 활동을 보면 충격받을 것 같다. 다윗의 기본적인 활동이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기뻐하며 수행했던 대부분의 일은 하나님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는데, 그런 일의 대부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상호아이나 환경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날씨, 토양, , 계층간 갈등, 부족의 전통 사회적 관습들, 과학기술, 연주되는 음악의 종류 등 우리 주위의 환경이다. 우리는 대부분 상황이나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엄마의 젖처럼 흡수하며, 그것에 관해 생각해 보지 않는다. 상황이나 환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에게 어떤때는 호의적이나 어떤 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찰스 윌리암스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되는 것에 관해 아주 잘 설명한다. 예수님은 세 가지 환경에서 태어나셨는데, 로마의 권력, 헬라의 문화, 인간의 죄라고 했다.

성령은 오랜 세월을 걸쳐 교회가 처한 상황들의 변화를 통하여 예수의 삶을 설명하시는데, 성령은 언제나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 역사하신다.” 그런 환경들 상황들이 성령의 사역을 제한하지 아니한다.

다윗은 전체적으로 볼 때 블레셋 문화와 가나안 사람들의 품행, 즉 폭력과 섹스가 만들어 낸 환경 속에서 살며 기도했다. 고고학자들이 옛 유적지에서 발굴한 블레셋 사람들의 맥주잔과 가나안의 다산 여신들이 두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사람에게 이보다 마음에 맞지 않는 시대나 마음에 들지 낳는 환경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다윗이 직면한 현실이었다. 그는 폭력과 성적문란의 철기 시대에 태어나 살다가 죽었다. 하지만 다윗은 아주 믿기 어려운 방법으로 그 환경들을 극복해 내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런 상황들이야말로 거룩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다윗은 이 전쟁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어떻게 강하게 하셨는지를 묘사한다(18:30-45)

다윗은 하나님의 준비시키심으로 시작한다. “ 이 하나님의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18:32). 군인이 훈련소로 떠날 때, 군대는 싸움을 위해 그를 훈련하기 시작하고, 그에게 장비들을 지급하며, 그가 군대에서 일하도록 준비시킨다. 33-36절은 다윗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소를 묘사한다.

하나님의 그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만드심으로써 다윗에게 속도와 민첩성을 주셨다. 하나님은 무기들을 사용하도록 다윗을 훈련시키셨다. 만약 놋 활이 다윗이 사용했던 물리적 활을 말한다면, 이것은 아마도 놋 장식이 달린 나무로 만든 활이거나 놋으로 만든 촉이 달린 화살들을 사용하는 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하나님이 싸움을 위해 다윗에게 주신 엄청난 힘을 묘사하려는 시적 방법일 것이다. 이는 그가 마치 단단한 놋을 구부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하나님은 또한 다윗에게 갑옷, 방패같은 구원을 주셨다. 그리고 공병대처럼 하나님의 다윗의 발을 위해 길을 깨끗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사탄과 이 타락한 세상에 대한 영적 전쟁을 싸우고 위해 전사로 오셨다,. 악한 영들은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었다. 예수님은 죽음,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그의 순종으로 그의 정복을 완성하셨다.

우리에게도 영적 무기와 장비를 갖추도록 하신다.

 

(6:12-18)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은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운데서 우리로 영적 전쟁에 승리하시도록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었는가? 진리가 허리띠인가? 우리 급소가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보호받고 있는가? 평화의 복음으로 암사슴의 발같은 민첩함을 가지고 잇는가? 믿음의 방패를 들고 있는가? 무엇보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가?

 

<오경웅, 시편사색 시편 18>

 

여호와께서 내 맘의 등을 밝혀주시니 내 어둔 눈을 밝히 보게 하시네

수많은 적들 내 앞에 있다해도 주님을 의지하니 두려움 없도다 주님 보호하시고 도우시나니 적의 높은 담장 뛰어 넘나이다

주의 길 순결하고 야훼 말씀 순수해라 주님을 의뢰하니 위태로움 없구나

야훼님 아니라면 그 누가 주님인가? 하느님 아니고 대체 누굴 의지할까?

주님 내게 힘 주시고 내 길 안전케 하시니

내 발걸음 사슴처럼 날렵하게 하사 이 내 몸 높은 곳에 세워주시네

내 손을 전투에 능케 하시며 팔을 강하게 하사 강궁 쏘게 하시네

이 몸 지킬 방패를 내려주시고 거룩한 오른 팔로 보호하시네 사랑과 은총으로 보살피시니 주의 덕으로 더욱 창성하도다

내 걸음 크게 하사 지경을 넓히시고 내 발을 든든케 하사 넘어지잖게 하셨네

적의 자취를 쫓아 무너뜨리니 그러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