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단락은 ‘서기관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 두 단락들과 연결되어 있고, ‘과부’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되면서 뒤이어 나오는 단락(41-11절)과 연결된다. 서기관들과 과부들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흠모의 대상이었던 서기관들은 본 단락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부각되는 데 반해, 곤궁과 비천의 대명사이던 과부는 다음 단락에서 본받아야 할 모본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서기관들에 대한 언급은 앞의 내용(12,35)과 주제상으로 연결된다. 이 가르침은 도입문 역할을 하는 경고, 이 경고의 근거가 되는 서기관들에 대한 서술,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심판 위협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비판은 대중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데서 나타나는 명예욕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점잖은 예복을 입음으로써 자기네들의 신분을 나타내며 장터에서 공손한 인사받기를 원하며 예배시간과 잔치에서 높은 자리를 요구한다.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NIV>
(막 12:38-44)
『[38] As he taught, Jesus said, "Watch out for the teachers of the law. They like to walk around in flowing robes and be greeted in the marketplaces, [39] and have the most important seats in the synagogues and the places of honor at banquets. [40] They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show make lengthy prayers. Such men will be punished most severely." [41] Jesus sat down opposite the place where the offerings were put and watched the crowd putting their money into the temple treasury. Many rich people threw in large amounts. [42] But a poor widow came and put in two very small copper coins, worth only a fraction of a penny. [43] Calling his disciples to him, Jesus said, "I tell you the truth, this poor widow has put more into the treasury than all the others. [44]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all she had to live on."』
1/ 서기관들에 대한 비판(38-40절)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서관들의 문제는 그들이 과시적이고 지위 지향적이며, 착취적이고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 제사장의 옷을 본떠 만든 ‘긴 예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즐기고,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사 받는 것’을 기대하였다. 회당에서는 자신들의 지위에 걸맞게 제단을 뒤로하고 청중을 마주하며 앉는 특별석에 앉기를 원하고, 잔치에 초대 받더라도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예수님께서 이미 경고하셨던 위험한 것들로서 제자들과 무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서기관들의 소유욕을 질타하는 둘째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유대교에서 과부(와 고아)는 특별한 법률적 보호를 받는다. 이미 출애굽기 22장 21절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어떤 수단으로 빼앗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들은 법률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 댓가로 뻔뻔스러울 정도로 많은 금액을 요구했던 것일까? 이런 착취를 하고 위선적인 긴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더욱 타락한 행태일 것이다.
2/ 가난한 과부에 대한 칭찬(41-44절)
예수님은 헌금궤 맞은 편에 앉아 있다. 이 말은 유대인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성전 경내, 즉 여인들의 뜰 가까운데 있었던 보물 창고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헌금함을 말할 수도 있다.
보물 창고 안에는 나팔처럼 생긴 열 세 개의 헌금함이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자진해서 내는 헌금을 받기 위한 것이다. 자진해서 내는 헌금은 특히, 온전한 제물로서 거의 배타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소제를 드리는데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보물창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동안 군중은 헌금함에 돈을 넣는다. 수많은 부자들은 많이 바친다. 헌금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많은 경우 부자들은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액수의 돈을 넣는 중에 사람들이 관심은 주로 많은 돈을 넣는 부자들에게 관심이 쏠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관심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한 과부에게 쏠리신다.
이 과부는 빈궁한 가운데서도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다. 마가는 이 여인이 넣은 액수가 매우 작음을 두 화폐단위로 밝혀주고 있다. ‘렙돈’은 당시 통용되던 최소단위 헬라 화폐로 직경 1cm도 안 되는 작은 동전이다. 이는 당시 통용되던 로마 화폐인 ‘고드란트’의 1/2이다.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의 1/128에 해당하였다. 이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하루 품삯의 1/64밖에 안 되는 지극히 작은 액수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이 그 과부가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홝비 전부’였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 중 하나만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둘 다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헌신과 신뢰가 어떠한지를 잘 ㅗ여준다. 이 과보는 당장 다음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문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과부의 집들을 삼키는 서기관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드리는 자가 인정을 받기 마련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돈의 액수보다 그것을 드린 사람의 중심이 어떠한가에 따라 인정여부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평결로서 예루살렘성전에서의 주님의 교훈은 종결을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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