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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강해_막 12:28-34 _가장 큰 계명_김광영

 


 



1/ 서기관의 질문(28)

 

예수님께 나아온 율법학자는 앞의 대화를 들은 증인으로 소개된다. 바리새인들의 세금에 대한 질문, 서기관들의 부활에 대한 질문, 그 질문들은 예수님을 책잡고 시험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주의 깊게 들은 율법학자는 그가 들은 내용이 인상깊었기에 예수님께 진지한 질문을 제기한다.

 

많은 종교지도자가 예수님을 시기하고 시험할 때, 그를 진심으로 대접하며 신앙의 중요한 본질을 묻는 이가 있었다. 예수님께 동조하는 것에 늘 불이익이 따른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체면과 분위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갈 기회를 저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손실을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계명에 대한 이 물음은 개종자가 되려는 한 이방인의 입을 통해 두 랍비 학파의 우두머리인 샴마이와 힐렐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제기된다. 디아스포라 출신인 힐렐은 이 물음에 대답할 태세가 준비되어 있으나 샴마이는 이 물음을 아예 거절해 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랍비들은 613개나 되는 토라의 개개의 계명들을 사소한 것, 중요한 것으로 구분하였고, 이 모든 것을 준수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샴마이가 율법을 하나의 최고의 계명으로 총괄하기에 거절한 것은 이해할 만 하다.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교리문답 교육에서 유래한 물음이 유다의 율법학자에게 넘겨졌다.

이 율법학자는 율법에서 으뜸되는 계명을 묻지 않고(마태 22:36), 모든 계명들 가운데 으뜸되는 계명을 묻는다. 그는 하나님의 뜻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1/ 서기관의 질문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 예수님의 대답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 예수님의 칭찬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2/ 예수님의 답변 (29-31)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그 답변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인 신명기 64-5절을 인용한다. 고대에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은 제의적 집회의 시작을 알리는 부름말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이 이방민족의 다신교와 다른 오직 한 분 여호와만이 존재한다는 의미의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 모든 이스라엘 남자는 아침과 저녁에 이 본문을 낭송해야 했다. 이 문구를 양피지에 적어 경패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힘과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그와 함께 예수님은 둘째 계명인 이웃사랑을 제시한다. 두 계명을 병립시킴으로써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랍비들은 토라를 이렇게 원칙적으로 두 개의 기본 계명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힐렐은 황금률을 율법의 총괄로서 제시하고 랍비 아키바는 레위기 1918절을 토라의 위대한 일반적 원칙으로 본다.

헬레니즘적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이웃사랑이 두 핵심으로 강조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십계명의 두 판에 대한 압축된 설명으로 보인다.

 

이 계명에 있어 중요한 질문 하나는 과연 사랑의 대상인 네 이웃이 누구인가이다. 대개 유대인들은 이 이웃의 범위를 동족 이스라엘과 한정했던 것 같다.

(19:17-18)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지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와 유사한 질문을 던진 한 율법학자에게 그 이웃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밝히신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은 그 이우ᅟᅲᆺ의 범위를 원수들에게까지 확장하신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둘째는 이것이다’(31절 상)라는 도입구로 소개하신다. 곧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 기초를 두었을 때라야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잇음을 밝히신 것이다. 이 들 두 계명은 각각 고유한 위치를 가지면서도 그 진정한 의미가 상대 계명에 의해 확증되는 상화관계적 일체성을 보인다. 예수님은 이들 두 계명의 동등한 중요성을 시사하는 결론적 선언을 하신다. ‘이것들보다 더 큰 다른 계명은 없다이 두 계명은 사랑하여라라는 동일한 명령을 포함한다. 그리고 십계명이 두 부분을 각각 대표한다.

 

3/ 예수님의 칭찬 (32-34)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율법학자는 훌륭한 그리스어로 생각되는 말로 표현함으로서(선한, 옳습니다) 예수님께 동의한다. 그는 예수님의 대답을 반복하는데 예수님의 말을 약간 변경하여 축소하여 말한다.

이때 그는 우선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한다. 둘째 구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총괄한다. 이로써 두 계명이 동등한 가치가 보다 뚜렷이 표현된다. 신명기 65절의 인용구는 다시 게가지 언급(마음, 지혜, )에로 돌아간다. 새로운 개념 (지혜가 목숨, 생각을 대신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더 가치있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대답에 대한 일종의 주석이다. 이로써 성전 제의가 폐지된 것이 아니라 현저히 상대화 된다. 예언자들도 그러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마가복음에서 한 유대율법학자가 희생제를 드리는 장소인 성전에서 제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이 총명하고 분별력 있음을 알아보시고 칭찬하신다.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 보증함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그런 판단을 하시는 권위자임을 드러내신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서기관, 그는 하나님 나라에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 칭찬받았다. 그의 지혜를 자기과시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주님 말씀에 겸허히 동의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마가는 아무도 감히 예수님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는 말로 본 단락을 마무리 한다. 이로써 마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는지 부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