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솔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막12:10-11)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1절과 12절에 이 비유의 대상이 드러난다. 예수님의 성전청결에 대한 권위논쟁을 걸어온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11:27)이다.
1절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되
12절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이 비유에는 풍유적 알레고리의 요소가 두드러진다.
포도원 비유 | 이스라엘 역사 |
포도원 주인 농부들 종들 사랑하는 아들 다른 농부들 |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 선지자들 예수님 새로운 이스라엘 |
비유의 상황설정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웅덩이를 파고, 망대를 세웠다’는 1절의 내용은 이사야 5:2을 인상적으로 반영해 준다.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알레고리적 풍유적 해석으로 ‘울타리’를 이방 민족들과의 혼합을 막아주는 율법, ‘망대’를 성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비유의 전체 내용은 다르다.
(사 5:1-7)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실패의 주체가 이사야에게서는 포도원 자체와 그 가운데 심겨진 나무인 데 반해, 예수님 비유에서는 농부들로 나타난다. 실패의 결과도 이사야 비유에서는 포도원이 버려지는 데 반해, 예수님 비유에서는 다른 농부들에게 주어진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이사야 비유의 틀로 사용하시지만, 현재의 이스라엘 상황을 의미있게 반영하고자 상당부분 새로이 구성하신 것이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지주는 자신의 땅을 소작농에게 세주고 소출 중 일정 부분을 소작료로 징수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새 포도원의 경우 정상적 결실이 이루어지기까지 적어도 4년 정도는 소작료를 면제해 주었다.
‘때가 되자’ 그 면제 시기가 지났을 그때, 자신의 종을 보내 기대한 소작료를 받고자 한다. 하지만 소작인들이 그 종을 ‘붙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낸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지 다시 또다시 자신의 종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주인의 종들을 잘못 대우한다. 점점 더 가혹해 진다.
3절 붙잡아 때렸다. 4절 머리를 때리고 능욕했다. 5절 죽였다.
(렘 7:25-26)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포도원 주인은 종들이 계속 희생당해도 다시 종을 보내어, 농부들이 돌이켜 다시 주인과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준다.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은 자신의 존경을 회복하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씀을 듣고 다시 찿아온 돌이킴의 기회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거절하고 때리고 모욕하고 죽이기 까지 한 것이다. 그 당시에도 세례자 요한도 죽였다. 이제 주인은 중대한 결단을 한다. 자신의 종들이 죽음까지 당한 상황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보낸다.
예수님은 이 아들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묘사한다.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의 세례시에, 변화산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칭한 독특한 호칭이었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들은 주인의 종들에 이어 주인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붙잡아 죽이고, 그를 포도원 밖에 내던졌다.’
예수님은 주인이 그들에게 행할 마땅한 조치가 무엇일지에 대해 질문하시고 스스로 답하신다.
‘그가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그 포도원은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9절)
주인의 아들역시 죽임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임을 당한 아들인 당신께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를 시편 118:22-23을 인용하여 밝히신다.
(시 118:22-23)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사람에게 버림받아 죽임 당할 아들을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시고 당신의 우편에 앉히심으로 영화롭게 하실 것을 내다보고 있다.
(벧전 2:4,7)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건축자들이 부적당하게 여겨서 버렸던 돌이 주춧돌내지 종석(宗石:마룻돌)으로서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된 사실은 그가 교회의 주가 된 것이며, 교회 안에서 이 모퉁이 돌을 통해 이방인과 유다인이 결합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대지도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에 관한 것임을 눈치 챈다. 하지만 들을 귀 없는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잡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 편에 서 있는 ‘무리’를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예수님을 떠나간다.
종교지도자들은 비유의 의도를 알았지만 마음을 돌이켜 회개치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잡으려 했다. 내가 악을 다스리지 않으면 악이 나를 사로 잡는다. 여러 관계속에서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혹은 심기를 불편케 하는 설교가 들려질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종교지도자들은 무리를 두려워했다. 정말 두려워해야할 하나님의 경고는 무시하면서 함께있는 사람들에게서 소외되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를 경외하며 두려워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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