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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14th 약속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마태복음 3장1~10절









  구두수선공으로 초등학교도 못나온 D.L. 무디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할 때 한 학생이 무디의 설교 내용 중 문법 틀린 것들을 적어서 주었습니다. 이를 본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내 문법이 틀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문법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생은 알고 있는 문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 그 학생은 충격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학생회 회장이 무디를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이런 동기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역사상 유례 없는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으며 선교의 거대한 장을 열었습니다. 일곱 명의 우수한 학생이 중국 선교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중에 중국 선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있었습니다.  





1. 광야의 사람


   유대광야에, 옷은 약대털옷, 허리에는 가죽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
   세례요한에 대한 묘사다.
   눅 1:80 대제사장의 아들로 광야로 가서 심령이 강하여졌다고 함.
   눅 3:1-2 당시 배경, 로마의 유대지방 총독은 빌라도, 당시 로마 통치자는 티베리우스
           유대의 분봉왕 헤롯, 대제사장으로는 안나스와 가야바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헤롯에게나 대제사장들에게 임한 것이 아니다.
   광야의 사람 아웃사이더 인생처럼 보이는 세례요한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온 유대지방,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는다.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음성임을 그 당시에 의심하는 자들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종교지도자들이 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하였느냐” 논쟁한다.


   주님은 도리어 질문하신다. “세례요한의 권위가 하늘로서냐, 땅으로서냐”
   그들이 이 질문앞에 멈칫한다.
   하늘로서라 하면, 왜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냐 할 것이요.
   땅으로서라 하면, 모든 백성들이 그를 선지자로 여김으로 돌맞을 일이다.
   그들이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그래서 모르겠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나도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겠다 ."하신다.

   왜 하나님은 이 광야의 사람 세례요한을 쓰셨을까?





   소음과 욕망이 가득한 세상을 떠나 광야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우리는 세상의 요구에 너무 민감하게 쫓아다니느라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음성은 놓치고 있지 않는가?
   주님이 누구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전도자로 쓰실까? 가방끈이 긴 좋은 대학 나온 사람. 안정된 직장에서 취직한 사람. 주님은 광야의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의 음성에 깨어있는 사람.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쓰신다.
   무디같은 사람. 세례요한 같은 사람을 쓰신다.

   광야에서 세례요한이 본 성전을 세운 헤롯이나, 그곳에서 대제사장으로 종교적 직무를 수행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독사의 자식들이었다.
 

2. 사명의 사람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 전령의 외침이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군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외친다. 사람들의 마음의 길을 예비하며 회개의 세례를 증거한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을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하라.”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라.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독설을 날린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즘, 우리가 전도하라면, 죄인, 회개, 지옥 이런 단어들을 잘쓰지 않는다. 예수믿고 잘되고 복받는다는 말로 나갈 때가 많다. 하지만, 예수님을 증거하는 세례요한의 인간의 뿌리깊은 죄성과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임박한 심판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말을 듣고도 예루살렘 온 유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성장이라는 우상 때문에, 죄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듣기가 쉽지않다. 혹시라도 위로받고 복을 구하러 교회에 나온 초신자들 다 떠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쓸데없는 우려에 사로 잡힌다.
   하지만, 교회는 성도는 세상을 향해 세상이 듣고 싶은 달콤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복음을 싸구려 시장에 내놓은 떨이품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복음은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진리다. 그 안에는 인간의 죄에 대해 뼈아픈 지적이 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심판의 불이 지날 때 주의 진노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주님을 자비와 사랑의 주님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심판의 주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외침에 돌아올 자들은 돌아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습관처럼 신문을 보던 한 사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의 사망기사를 본 것이다.
  욕실에 들어가 거울앞에 섰다. 볼도 만지고 코도 잡아당겼다. 아프다. 살아있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는 식탁으로 가 펼쳐놓은 신문을 다시 읽었다.
  - 다이너마이트라는 무기의 발명가, 죽음의 상인, 영원히 숨을 거두다.
  다시 한번 숨을 멈추고 읽었다. 죽은 사람은... 바로 자기 형이었다.
  노벨의 형의 이름을 노벨로 착각해 기사가 난 것이다.

  신문이 자신의 사망소식을 ‘죽음의 상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충격을 받았다. 마흔이 넘어서도 결혼도 않고 다이너마이트 연구에 공들인 자기 발명품을 ‘무기’로 표현한 것도 마음이 걸렸다.
  그는 바위를 뚫고 산에 터널을 만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발명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기를 무기로 사용하게 되고 세상사람은 그를 ‘죽음의 상인’으로 불렀다.
  그는 다이너마이트, 죽음, 파괴로 세상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평소 알고 지내던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 파괴의 반대말이 뭐지요?”
  “평화죠”
  그 순간 그는 파괴가 아닌 평화의 이미지로 기억되고자 노벨평화상의 창시자가 되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노벨상을 유언으로 남기고 자기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_ 이은성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노벨의 인생을 전환하게 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적나라하고 비판적인 언어였다. 그냥 좋은 말로 인생을 선하게 살고,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는 그의 사망이후 정말 ‘죽음의 상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죄인이라고 신랄하게 외친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마는 여호와께서는 심방과 폐부를 시험하시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죄악된 인간의 마음을 엑스레이 MRI로 정확히 집어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해 보이겠지만, 우리의 말의 지혜에 복음의 능력이 있지 않다. 아덴에서 전도설교를 한 이후 바울사도는 자신의 지혜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했다.


  고전 2: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1)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ㄱ)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사 29:14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3.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그는 실체가 아니라 소리일 뿐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당신이 바로 그 메시아냐”
  “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자니라.”
  그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올려 놓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증인이 되고 있는가?


  사도행전 14:8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우리는 복음증거의 통로 일뿐이다. 예수님은 흥하시면 되고, 나는 쇠하여져도 된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증거자의 고백이다.
  우리는 달의 역할만 하면된다. 해는 발광체지만, 달은 반사체이다. 내 삶이 내 전하는 말이 그분의 메시지의 온전한 통로가 되도록 하면된다. 그러면, 우리의 그 말을 통해 반사된 진정한 태양되신 그리스도를 그들은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외침이 남았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김광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