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님들, 더운 무더위를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이번 휴가를 받아 충주 수안보의 성봉채플을 다녀왔어요.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을 기념하여 지은 작은 예배당이었는데, 언제나 열려있고 결혼식도 올릴 수 있도록 예쁘게 잘 지어져 있더군요.
독서캠프였는데, 50여명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왔어요. 서울과 거제도 포항과 전국에서 심지어 일본 동경에서 이 캠프를 참가하기 위해 오신 분도 계셨지요. 다들, 바쁜 일상들 1년에 한번뿐인 휴가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책의 저자이신 시인과 목사와 노래하는 가객 그리고 벗들을 만나기 위해 빡빡한 일정 속에서 영혼의 정화와 사귐을 위해 오신 분들이었다.
3가지의 ‘간’이 있어야 모임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 다 ‘사이 間’을 쓰고 있어요. 그렇게 한 공간에 같은 시간에 독서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이 모이니, 독서캠프가 되더군요. 오늘 우리 이 주일이라는 시간, 주약교회라는 공간, 그리고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 이렇게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새롭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바로 예배하기 위해 그것도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예배공동체로 교회로 지금 이렇게 모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초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가 아니면 어찌 제가 진주에 오게 되고, 또 우리성도들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성도님들 또한 이 자리에 함께 있음이 어찌 놀랍지 아니합니까?
오늘 우리는 한 만남을 주선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바로 엘리야 선지자와 한 과부가정의 만남입니다. 그 속에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목도합니다.
■ 본문과 씨름하며
1. 약한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릿시냇가에 피신해 있던 엘리야를 불러내어,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라고 명하신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온 팔레스틴 땅에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았고, 골짜기 시냇가 까지 다 말라서 이제 더 이상 그 곳에 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르밧의 과부에게 가면 그가 엘리야를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맥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악한 왕 아합을 제어하기 위해 하나님은 무명의 사람을 일으키셨다. 그의 부친의 이름도 명시되지 않는 디셉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는 지명의 엘리야를 부르신다. 그 이름의 뜻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뜻이다.
그는 아무 상황설명없이 단도 직입적으로 아합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뭄을 예고한다. 그는 멀리 외딴 곳에 은둔하며 까마귀들이 물어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한다. 하지만 그 공급마저 끊어지는 때가 왔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땅을 떠나 시돈 땅으로 떠날 수 밖에 없다.
엘리야는 일어나 사르밧으로 간다. 그리고 성문까지 이르렀다. 그가 기대한 것은 어떤 과부였을까? 아마도 하나님이 그릿시내가에서 떡과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생명을 연명시켜 주심처럼, 이 지독한 가뭄가운데도 엘리야를 먹여줄 만큼 양식과 물이 풍부한 과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당도한 곳에서 그가 발견한 과부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과부였다. 나무가지를 줍는 사람은 당시 종들이나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아마 엘리야의 기대는 무너졌을 것이다.
신명기에서 과부는 이렇게 표현이 되고 있다.
(신 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는 조심스럽게 처음 보는 그 여인에게 “청하건대 내가 오랜 길을 걸어왔으니 목을 축일 물을 조금 가져다 줘서 나로 마시게 해 주시오”라고 요청한다.
여인은 처음 보는 이 남자의 초췌한 모습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는지, 나뭇가지를 줍던 손을 거두어 물을 가지러 간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저를 부른다. “여보시오, 청컨데 당신의 손으로 떡 한 조작을 내게 가져다 주시오”하고 다시 청한다.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이 요구를 들은 과부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이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나뭇가지 두엇을 줍고 있던 것도 나와 내 아들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이 가뭄 중에 이것이라도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이러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서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시냇물을 마시고 살았는데, 이제 그 물까지 말라 하나님으로 명으로 자신을 먹여줄 과부를 찾아서 여기 이방땅 시돈까지 먼 걸음을 걸어 왔는데, 자신이 만난 과부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기는커녕 자신이 도와줘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이 여인의 입장도 어떤가? 당시에 과부라는 신분은 참으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신분이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남편없이 여자가 살림을 꾸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그에게는 아들까지 있어 챙겨주어야 했고, 더구나, 오랜 가뭄으로 말미암아 온 땅이 굶주림 가운데 있을 때 이 여인의 처지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 밀려 있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한 이름 모르는 처음 보는 타국의 남자가 와서 물을 달라하지 않나 떡까지 내 놓으라 하지 않나 이제 통에 한 움큼 있는 가루를 먹고 그냥 그날로 아들이랑 죽어버리려는 마당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 엘리야를 하필 시돈 땅 과부에게 보내어 그를 돕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눅4:25에 이 사건을 말씀하셨다.
(눅 4:25-26)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그것은 약한 자를 도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아직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엘리야나 사르밧 과부 이 경우에 모두 어쩌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여인은 여호와의 사심으로 결단코 만들어 줄 떡 한조각이 없음을 말하지만, 그의 현실은 먹고 죽으리라는 것이었다. 여호와는 살아계시지만, 자신은 죽은자나 다름없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예배때마다 고백하지만, 그 하나님은 입술에서 불리워지는 이름일 뿐, 나의 삶의 현장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는가?
시편에 보면 이런 슬픈 노래들이 많이 있다. 시22편에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자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 왜 나는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습니다. 왜 친구들이 나를 진정으로 받아주지 않나요? 왜 부모님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자신의 뜻만 강요하나요? 내가 기도해도 왜 내 병은 빨리 낫지를 않는 겁니까?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어려움이 많고,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겁니다. 남들은 다 잘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왜 나는 잘하는 게 없죠? 키도 작고 눈도 작으며 운동도 못하는데다가 춤도 못추고 공부도 못하며 말도 잘 못하고 좋은 친구도 없고.....
이 여인이 하는 말이다. 나는 떡이 없고 이제 마지막 가루로 떡이나 하나 만들어 먹고 죽어야 겠습니다. 나에게는 더 이상의 기댈 희망이라고는 전혀없습니다.
2. 순종하는 여인의 믿음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가 이 과부에게 말한다. “두려워 말고, 니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어 위하여 떡을 만들라 여호와 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그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더 황당한 말을 하고 있다. 무슨 요술 병이되어서 기름이 끊기지 않고 요술 통이 되어서 가루가 없어지지 아니한다니?
제가 만약 과부였다면 엘리야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 사오정아니요! 방금 내가 한 말 못들었소. 글세 이 가뭄통에 먹을 게 없어 배를 졸졸 굶다가 이제 남은 가루로 음식하나 만들어 먹고, 죽으려는데 당신 떡을 만들고 그 다음에 남는 것으로 저와 제 아들이 먹으라구요. 미친 사람! 일 없소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
그래야 당연하지 않는가? 그런데, 여인은 엘리야의 이 말을 듣고, 어떤 연유에선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한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엘리야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던 것이다. 이왕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죽을 것인데, 엘리야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자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대로 이 과부에게 요청한다. ‘두려워말라’는 것이다. 그녀의 믿음이 한 걸음 더 내디딜 것을 요구한다. 바짝 마른 토양으로부터 이러한 것들이 자리기 위해 필요한 비를 여호와께서 주시기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놀랍게 다시 채워질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상식’과 ‘믿음’은 다르다. 상식은 어둠속에서 빛이 비추이면 그 밝은 만큼 발 내딛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상식이다. 그런데 ‘발을 먼저 내디뎌라’는 음성을 듣고 암흑천지에 발을 내딛는 것은 ‘믿음’이다. 천길 낭떠러지가 있을지 가시밭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Sun 18th Aug 19 주약교회 설교 김광영 목사
우리는 한걸음 내디딜 빛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한발짝을 먼저 요구하신다. ‘믿음’은 말씀하시는 그 분에 대한 믿음이다. 아이가 아버지를 향해 몸을 던져 점핑하듯이 말이다.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을 들을 때 어떤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설교를 들을 때, 혹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을 읽을 때 또 들을 때 어떤 마음으로 받는가?
“그것은 성경에난 쓰인 이야기지 나 하고는 상관없소. 나는 마음에 근심거리 밖에 없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염려할 것 밖에 없도.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우시오” 할 것인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시리라”는 그 음성에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도대체 뭘 어떡하란 말이요”하며 우리의 상식과 고집을 끝까지 밀어 붙일 것인가? 성
경은 이런 사람에게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고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에게 있는 마지막 남은 그것을 다오 그러면 내가 다함이 없이 채우리라.
우리 학생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예수님, 저는 주일날 교회 못와요! 다른 친구들 다 고3이라서 학교가고 도서관 가는데, 내가 교회오면 하루 공쳐요. 예수님, 저는 드릴 헌금이 없어요. 당장 쓸 돈도 없는데, 헌금낼 돈이 어디있어요. 예수님 저는 기도회하거나 전도할 시간 없어요. 빨리가서 컴퓨터 채팅도 하고 게임도 해야 되요! 그 시간 예수님께 드리면 전 죽어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주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내가 네가 복을 주겠다.”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신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대답해야겠는가?
‘빨리 뛰어간다고 1등으로 골인하는 것 아니다. 갑자기 공이 날아와서 머리를 칠 수도 있고, 다른 친구의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뛸 수 없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제대로 뛸 수 있는 상황을 주셔야 뛸 수 있다.’
서부개척시절 사람들은 금을 캐러 서부로 갔다. 한 가정은 다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가기 위해 쉼없이 달렸고, 한 가정은 주일이면 여장을 풀고 예배드리고 쉬면서 갔다. 예배드린 가정은 늦게서야 그 자리에 도착했다. 금은 그대로 있고, 앞서간 사람들은 안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들이 열심히 달려서 지쳐있을 때, 인디안들의 습격을 받아 금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몰살당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지 않으면, 성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파숫군의 경성함이 헛된 것이다.
3. 다함이 없이 흘러나는 기름, 양식
[15절 하]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여인은 엘리야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통에 남은 그 하루 한 움큼을 찧어서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왔다. 그리고, 그 통에 다시 가보니, 가루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분명이 다 퍼왔는데.... 기름토의 기름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으로 자신과 아들의 떡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다시 통과 병에 가보니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렇게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으나, 여호와의 말씀하심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그의 순종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다.
가객의 작은 간증을 들었다. 부산 만덕터널 위 산에서 ‘철학로 커피’라는 작은 커피트럭을 운영하며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분이다. 최근 잠을 못이루고 한 질문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고 한다. “만일, 내게 6개월의 시간 밖에 이 지구별에서 주어지지 않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아름다운 노래를 작사 작곡한 것을 앨범을 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앨범 한 장 만드는데 3천 5백만원이 든다고 한다. 하루하루 커피장사를 하며 초청이 있으면 기타하나들고 노래부르던 그에게 그런 거금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던 중 장애인사역을 30년째 해오던 한 목사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보영씨, 30년 장애인 사역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이다.’
그런 중, 영국의 한 속담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그러한 신비로움을 믿고, 앨범을 만들기 위해 작곡한 곡 40여개를 들고 앨범사를 찾았더니, 앨범이 2개가 제작되어야 곡을 다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비용이 2배가 더 발생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주어진 세미한 음성 강렬한 이끌림을 믿고 행하다 보니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게도 되었다.
한 기업의 초청으로 음악연주를 부탁받아 갔는데, 뜻밖에 500만원이라는 거금을 후원해 주시더라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손길들이 이어지면서 ‘햇살별빛바람단비’라는 앨범을 발매하여 8월 15일 헌정식으로 이번 독서캠프에 오프닝 연주회를 가졌다.
■ 정곡을 콱 찌르며
온 세상이 다 흉년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하나님은 이 가정에 풍년으로 채우신 것이었다. 세상이 다 죽는 소리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결코 죽임을 당치 않는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한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아무 기대감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나아왔다면 이제 기억하자.
절대적 절망 속에서 엘리야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믿음의 용기를 내었던 마지막 빵을 만들어 왔던 그에게 극심한 가뭄에서 생명을 유지할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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