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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49th 약속 '여호와께서 세우시는 집' _ 시편 127 편 _ 주약교회 예배

 

 

 

 

 

 

 

 

 

 

 

 

 

 

 

 

 

 

 

 

 

서론

 

우리의 삶에 수고의 열매를 먹지 못하는 허탈함을 경험해 본적이 있는가? 그 가운데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본론

 

1. 성경은 그러한 수고에 대해 무엇이라고 교훈하고 있는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기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집을 짓는다는 영상은 농사나 포도농사에서 나온 영상이다.

어떤 사람은 집을 짓지만, 그 안에 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산다.

수고했지만, 결실이 없다.

1절 상반절의 집을 짓는다는 개념은 하반절의 성을 지킨다는 것으로 발전한다.

집이 개인의 안전과 보람이 담긴 곳이라면,

성은 공동체의 안전과 보람이 담긴 곳이다.

파숫꾼이 경성하여도 하나님의 지키심이 없이는 그것이 허사라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진한 열망의 하나는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 땀흘리는 수고의 가장 큰 이유도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가정은 행복이 출발하는 장소이고 우리 행복을 결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흔들리는 가정을 다시 세우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된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가정의 건축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현대 가정의 비극의 출발점은 가정에서 하나님을 추방한 것이다. 가정의 설계자요 건축가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2. 우리가 빠지기 쉬운 2가지 함정은?

 

바벨탑 문화는 인간의 능력과 이성을 절대시하여

기계문명을 고도로 발전시키며, 스스로의 안전과 명예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분주히 일한다. 늦게 눕고 일찍 일어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빠져 버린 수고는 공허하고 헛된 수고임을 말씀한다.

2절을 보라.

일찍 일어나며 늦게 눕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일어나다눕다는 하루의 모든 활동을 가리킨다.

거기에 수고의 떡을 먹음은 너무 힘든 노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동을 하지만, 기쁨이 없이 계속되는 걱정과 염려 속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고의 떡을 먹지만, 그것도 헛되다고 말한다.

학개서 1장 구멍뚫어진 전대에 넣음과 같음.

 

반면에, 동양의 문화는 인간의 수고에 대한 뿌리깊은 염세주의를 드러낸다.

공수레 공수거인데 현실일에 집착해서 뭐 하냐는 것이다.

어디 절에 가서 도나 닦으면, 욕심에서 벗어나고 해탈한다는 세계관이다.

 

절대적 인간의 노력만 신뢰하는 활동주의는 인간을 일벌레 일중독자로 만든다.

그런가 하면 현실도피주의는 인간을 현실의 낙오자로 만든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의 노력을 무효화 시키지 않는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하며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며,

바울 자신도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한다.’(살전2:9)

고 도전한다.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까지 고생하고 과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2). 이 말씀은 근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625~34절에서 주님께서 신중하고 사려 깊은 생각을 하지 말라 하신 것이 아님과마찬가지다. 이 말씀은 한 편으로는 염려를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 만만한 움직임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염려와 자신만만함은 둘 다 불신의 증상이다.

 

우리에게 있어 노동의 신성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들어와 질 때만이 그 가치가 발견된다고 한다.

하나님을 일하시는 분이시다.

‘ .. 아니하시면이라는 조건절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키시는 분, 일하는 분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고달픈 것은 일 자체가 아닌 헛되고, 무분별하고, 무익한 일 때문이다.

반면,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준다고 하신다.

시편 3편에 보면, 용사가 적군에게 휩싸여 있는 데도 편안히 눕고 자는 약속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편히 누워 자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쉴 수 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단 잠을 주시고 우리의 수고를 헛되지 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수고는 세상 가운데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과의 접촉이 끊어질 때 그릇된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강박적으로 일에 집착하거나, 맡겨진 일을 방치하고 태만할 때

우리의 수고는 다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해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은 혹독하고 강박적인 일의 노예로 우리를 부른다.

성경은 그것의 본질이 교만하고 헛된 것임을 보여준다.

 

필요와 욕구는 우리를 끊없이 쉬지 못하게 하고 만족을 모른다. 이 욕구는 끝없는 약탈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24시간 일주일 내내 많은 일을 하는 사회를 이루어 무언가 얻고 행하고 소유하려 한다. 생산만큼이나 소비도 중요해 진다. 상품 소비 시스템은 우리가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사용하고, 더 많이 먹고 마시기를 요구한다. 이런 약탈과 착취를 반복하는 극심한 경쟁은 쉼없이 이어지며, 결국은 제저악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고마는 불안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사람이 무언가를 맹령히 추구하다보면 당인히 이웃 소유것마저 차지하고 싶어 이웃을 해치는 폭력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만족을 모른채 생산을 독려하는 이집트이 파라오의 명령만큼 오래되었다.

도저히 만족을 모른 채 생산을 독려하는 파라오의 명령, 파라오가 다스리는 체제 속에서 사람들에게 쉼이 있었으리라고 상상하기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결국 불안만 안겨주는 파라오의 체제에서 구원받아 광야로 나간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만나를 받았지만, 이 만나를 저장해 두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매일 필요한 빵이 오직 그날 것만 주어지는 상황에서도 안식일을 보낼 빵은 공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뜻밖의 양식 공급은 사는데 필요한 빵이 파라오의 혹독한 통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그것은 생명을 보존해 주시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십계명의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은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것과 연관된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다. ‘탐욕이라는 죽음의 순환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불안을 물리치는 해독제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상품의 세계를 사귐의 세계로 바꾸는 것이다. ‘소유에 근거한 탐욕이 아닌 선물에 근거한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이다.

 

 진주 주약교회

담임목사 김광영 주일설교

 

 

소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피로한 시스템 속으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뚫고 들어오신다. 그 하나님은 절망뿐인 노예들의 노역을 굽어살피신다. 당신의 백성을 그런 착취 시스템에서 해방시키기로 결심하시고, 인간이 해야할 일을 맡기시고자 모시를 부르셨다. 이 애굽의 현실에서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채 생산 할당량을 치유라고 요구하는 파라오와 그 신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경제생활을 더 이상 좌지우지 하지 못하고 강제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비롭게, 변치 않는 사랑을 베푸시며, 신실한 나나님으로 성실을 다해 언약관계에 헌신하는 분으로 나타내신다.

 

 

    

 

 

3. 하나님의 일하심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우리는 집을 세우는 것과 일하는 것에 대한 말씀을 대하다가

갑자기,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하며 자녀에 대해 말하는 시편기자를 본다. 자녀라는 선물, 그것은 우리의 일의 특징이 업적이나 소유가 아닌 관계에 대한 것임을 말해준다. 이 태의 열매야 말로 하나님이 수고하는 인간에게 주시는 상급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예배의 자리로 들어오는 것, 그것은 일을 이용하는 소비자였던 우리를 다른 사람과 창조적 관계를 맺기위한 존재방식으로 일을 하는 살가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결론

 

이 시편의 표제는 솔로몬의 시다.

그는 자기 궁궐을 13년간 지었고, 하나님의 성전을 7년간 지었다. 그는 나라의 성벽을 건축하였다. 그는 군사대국 경제대국의 집을 지었다.

하지만, 왕상11장을 넘어가며 그가 한 평생 세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다 허무는 것을 본다. 많은 이방여인을 사랑함으로 우상이 득실되고 왕국은 분열되었다.

자신이 가정을 세우기에 실패하고, 다음세대에 분열의 씨앗을 남긴 솔로몬, 그는 어쩌면 그의 실패담을 꼽 씹으며, 지혜의 깨달음으로 이 시편을 지었으리라.

하나님 없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수고 하는가?

하나님안에서 우리는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은 복을 허락하시는 주님을 확신하는가?

 

탐욕이라는 죽음의 순환고리에서 안식일은 불안을 물리치는 해독제가 된다. 안식일은 우리가 소유가 아니라 선물로 산다는 것, 우리가 상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신실한 관계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이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인 여호와의 기업’(3)로 여겨야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다”(4). 장사 아버지가 늙으면 자식들이 나이들어 아버지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자”(5), 상업과 거래와 소송이 벌어지는 장소인 성문에서 어떤 쟁론이 벌어져도 자기 몫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찬 빵을 선물로 내어주신 순간이야말로 기독교의 전통소기에 자리한 안식일 쉼 관념의 본질을 이루는 중심이다. 우리는 그 선물을 감사하며 받는다. 우리는 공로나 성과나 자격도 없는데, 받는 쪽에 자리해 있다.

선물이 주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무거운 짐을 지고, 조심해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많은 이들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평화로운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