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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말씀 묵상

시편 4편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들어가며

 

우리가 사는 세상, 시험과 유혹의 공간이다. 불꽃 튀는 경쟁의 현장, 페어플레이가 되지 않는다. 깜박이 없이 끼어드는 차처럼 갑작스러운 위험의 공간이다. 진흙탕 같은 죄의 현장이다.

다윗의 시편 또한 여유롭고 한가해서 지은 것이 아니다. ‘죽음과 내가 한걸음차이라고 말할 정도의 긴박한 협곡을 벼랑 끝을 지나가면서 자신의 영성을 어떻게 지켜왔는지를 보여준다.


본문과 씨름하며

 

시편 전체 중의 본 시편의 위치, 즉 본 시편이 아침기도(3) 바로 다음에 수록되어져 있다는 것은, 본 시편이 정규적인 저녁 예배 시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시편 35절에서 내가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고 했다. 내가 개어서 읽는 시편이 3편이라면, 4편은 저녁의 기도이다. 크리스챤 시인준 유안진이라는 분이 있다 그의 시 저녁기도에 보면 이렇게 시작한다.

주님 날이 저물면 왜 나는 눈물이 나는지요?”

 

우리 기도의 스승들은 저녁 기도인 시편 4편과 아침 기도인 시편 5편을 본문의 앞쪽에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우리 삶에 이 기본적인 리듬이 자리 잡게 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 내는 운율 속에서 기도하도록 이끈다. 들숨과 날숨의 리듬은 이제 잠들고 깨어나는 리듬과 통합되고, 이 리듬을 따라 구성된 기도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분의 사랑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실 때 우리 인격의 깊은 부분을 하나님의 깊은 목적과 조화시킨다.

 

스탠리 재키(Stanley Jaki)는 말한다.

시편 4편은 석양이 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늘 사용되었다. 옛 로마 카톨릭 교회 예식를 보면, 일요일 끝기도(하룰 마치면서 드리는 기도)마다 이 시편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베네딕트에 따라는 여러 수도원에서도, 매일 저녁 수도사들이 모여 이 시편을 노래했다.”

시편 기자는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잠들기 전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의 일과를 중간 중간 가로막는 사건과 소소한 일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였다. 게다가 그를 비방하고, 일을 방해하며,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웠다. 녹초가 되어 버린 그에게는 안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내 의의 하나님을 부른다.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구한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 하소서”(1)떼쓰는 어조로 된 시작부분에서부터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8)라는 잔잔한 결어에 이르기까지 이 저녁기도는 은총의 리듬을 우리 안에 회복하기 위해 6개의 동사를 사용하는 중심부의 양편에 대조 어구 두 묶음을 하나씩 배치하여 대칭의 미를 보여준다.

 

첫 번째 대조 :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 자(2) VS

 

여호와께서 택하신 경건한 자(3)

 

두 번째 대조 :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냐(6)

왜 다들 더 많이 갖지 못해 안달일까? 맨달 , !”

더 많이! 더 많이!”(The MSG)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까.”(공동번역)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구하는 자 VS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7)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분의 임재 앞에 압도된 자

1. 시인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이유는? (1)

 

시편기자는 이미 고통을 덜어버렸다고 주님께 말씀드린다.

곤란한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1)

이처럼 첫 세절의 구조는 마치 시소놀이와 같다.

 

청원

하나님을 신뢰함

1절 상

응답하소서

1절 중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1절 하

내게 은혜를 베푸사

 

 

2

죄에 대해 한탄함

3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고,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곤란이란 단어는 차르 좁은 해협을 의미한다. 다윗의 삶이 이 좁은 해협을 지나는 것과 같은 고통과 긴장의 상태를 말해준다. 이것은 시23: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유사한 표현이다.

특히, ‘곤란 중에라는 말은 현재형이다. 시편 4편은 시편 3편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기던 그 시절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곤란 중에도 너그럽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시32편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토설치 못한 때의 아픔을 이렇게 묘사했다.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우리도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하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이 저녁에 기도하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2. 시인이 그의 대적들에게 경고하는 것은?(2~5)

 

인생들아! (여기 인생들은 권세나 영향력을 지닌 자들을 지칭한다)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그의 근심과 번민의 원천은 인생들로 묘사되어져 있는데, 그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권세나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인생들은 헛된 것들과 거짓된 것들을 추구하는 가운데 기편 기자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또 그를 비난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중에도 그들은 그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을 말할 때 히브리어로 벤 아담이라고 쓴다. 여기에는 매우 독특한 표현이 쓰였다. 이것은 아마도 다윗이 잘 알고 있는 사람. 그이 생애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가르킨다고 본다. 자기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매우 중요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그들에 의해 다윗은 명예가 실추되고 고통을 받는다. 몹시도 고통스러웠던 그날, 다윗은 저녁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수치스러운 자리에서 우리는 화를 내게 되고,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인간 본능의 온갖 찌꺼기들이 위로 터져 올라 나오게 된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외친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4절의 난점은 자기 원수들을 향한 말인지 자기가 기도하며 깨달은 진리를 너희로 표현한 것이가?”로 갈라진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자기 원수들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떨며 더 이상 범죄하지 말고 자리에서 누워 잠잠하라. 더 이상 나를 괴롭히려고 하지 말고 그만 나자빠져라

하지만, 사도바울이 4절이 해석을 잘 해내었다. “너희는 분 내어 범죄하지 말지어다.”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며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에베소서에서 정확하게 바울이 이 시편 44절을 인용하였다. 관주성경에 표시되어져 있다. 잠자기 전에 들기 전에 평안히 자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고 해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분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삼하 16:7~8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거거라.

사울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말한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기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다윗은 도리어 말한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하고..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60: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신앙인은 모든 것이 막연히 잘 될 것이라고 바라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는 자이다.

 

3. 여호와의 얼굴의 비취심을 받는 자의 복은?(6~8)

 

하나님 앞에 나아간 다윗의 심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시는 줄 너희는 알지어다.

주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은 저희 곡식과 새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

이 경건한 자란 헤세드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체험한자.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배운자이다.

시인의 기쁨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추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빛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쁨이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9:14-16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 그들을 부러워 말자. 도리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그 은혜를 귀히 여기고 찬송하자.

 

우리는 여기서 민6:25절 이하의 아론과 제사장들이 축복하는 문구를 떠올린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평안히 눕고 잘 수 있음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과 눕고 자는 것까지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빛으로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

 

 

나오며

 

시편 4편은 그릇된 비난과 압제와 불의에 대한 이론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도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압제자들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비난을 받거나 압제를 당하는 의로운 자의 번민과 의혹이 아무리 깊고 크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잠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내적 평안을 주신다. 비난은 마음에 박힌 가시와 같아 불안과 번뇌의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기도는 그런 비난을 받아들이고 감수할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을 준데,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미 낮을 모두 가졌다. 이제 밤은 모두 하나님이 취하시도록 하라. 당신의 하루를 살았으니 지금을 그것을 제물로 제단에 내어 놓으라. 그리고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5)

히브리 제단에서는 정결케 하는 번제를 드릴 때 향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통해 제물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독교의 성찬에서, 우리는 떡과 포도주를 드리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되돌려 받는다. 이 변화는 용서와 정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죄악 된 삶을 하늘로 올려드리면 거룩한 삶을 다시 되돌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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