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눅 4:27)
“And there were many in Israel with leprosy in the time of Elisha the prophet, yet not one of them was cleansed-only Naaman the Syrian.”(Luke 4:27)
열왕기하 5장은 전체적으로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 관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1-14절은 나아만이 나병에서 치료된 이야기, 15-19절은 나아만의 회심 사건이 나온다. 20-27절은 엘리사의 사환이 게하시의 거짓말과 그에 대하나 징벌로 나병에 걸린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나병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는 중요한 모티브다.
1-3절 이스라엘 소녀의 엘리사 소개
4-7절 엘리사를 찾아 이스라엘로 가는 나아만
8-12절 엘리사를 만난 나아만
13-14절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
■ 1-3절 이스라엘 소녀의 엘리사 소개
1절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히브리어로 존귀한 자 ‘네슈 파임’은 ‘얼굴이 들려진 자’라는 뜻이다.
나아만이 이렇게 아람 왕의 군대 장관으로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함을 받는 인물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람을 구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나아만이 아람은 구원한 것이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열방을 다스리는 분이심을 말한다.
이렇게 용사이고 왕의 존귀함을 받는 나아만, 그에겐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나병으로 번역된 ‘메쪼라’는 성경에서는 나병으로 번역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외상’이다. 조금 비전문적으로 말하면 ‘비늘이 있는 피부’로 본다. 이 병은 껍질이 벗겨질 뿐 아니라 부어오르거나 진물이 날수도 있다. 구약에서는 이 병에 걸리면 부정한 사람으로 보는데(레 13:14), 바벨론인들도 이 병을 부정한 상태나 신들이 벌에 의한 것이라고 여겼다.
일반적인 한센병이었다면, 그는 군대장관을 할 수도 없도 왕의 제의에도 참여가 불가했을 것이다.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 볼 때 건선, 습진, 황선 등 각종 감염으로 인해 피부병으로 불 수 있다.
2절 전에 아람 사람이 떼어지를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2절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아람사람들이 습격대를 보내어 가볍게 무장한 군사들이 재빠른 공격을 했을 당시에, 이스라엘 땅에서 소녀 하나를 붙잡았다. 이 여종의 나아만의 아내의 수종을 들고 있다.
지금 지위가 높으며 남성이고 군대장관인 나아만과 종이고 여성이고 이름도 없는 외국인이 이스라엘 소녀가 대조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녀의 말에는 큰 힌트가 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나병의 고통은 나아만의 권력과 지위, 명예를 하찮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름모를 이스라엘 하녀는 선지자의 능력을 알고 믿은 사람이다. 나아만에게 복음은 ‘크고 존귀한 자’라는 사람들의 찬사가 아니라, 나병을 고칠 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소녀의 말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위협국인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승리를 주셔서 존귀하게도 하시고 나병을 주사 수치를 겪게도 하신다. 겉으로는 아람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쥔듯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
신명기 32장 39절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 4-7절 엘리사를 찾아 이스라엘로 가는 나아만
4절을 보면, 나아만이 그 소녀의 말을 무게 있게 여겼다. 그의 주인께 찾아가 고하는 장면이 4절에서 나온다.
아람 왕이 말한다.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나고, 은 10달란트 금 6000개, 의복 10벌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전한다.
나아남이 가지고 간 예물의 양은 현재 단위로 볼 때 은 340kg, 금 90kg정도이다. 현재의 기준에서도 막대한 양의 예물을 가지고 나갔다. 이는 나아만이 얼마나 간절하게 질병에서 낫고 싶어 하는지 보여준다.
나아만은 여종의 말만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을 고치겠다면 이스라엘로 갔다. 하지만, 나아만이 들고온 아람왕의 편지를 받고 이스라엘 왕은 당황한다.
그 글의 내용인즉 이러하다.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의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7절에서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한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 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바하려 함인줄 알라.’
자신은 나병을 낫게할 수 없으니, 아람 왕이 전쟁할 빌미를 찾고자 이런 터무니 없는 서신을 보냈다고 말한다. 마치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아만은 여호와의 능력을 기대하며 나왔는데, 이스라엘 왕은 침략의 빌미를 얻으려는 전략일 뿐이라고 비통해 한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만 것만 생각했지, 이 나라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 8절-12절 엘리사를 만난 나아만
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의 진의를 오해하고 옷을 찟으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을 내게 보내라고 한다.
엘리사에 대한 호칭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왕의 오해와는 달리 나아만의 병은 왕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고칠 것을 암시한다. 엘리사도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한 이유를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아만은 말과 병거 등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마치 위협이나 하려는 듯이 엘리사의 집 앞에선다. 하지만 엘리사는 이런 위협적인 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7번 씻으면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와 깨끗해지리라 한다.
하지만, 나아만은 어이없어 화를 폭발한다.
(1) 어마어마한 선물을 가지고 멀리서 군대를 대동하여 온 자신을 정중하게 친히 나아와 얼굴을 대하여 맞기는커녕 나와보지도 않고 말을 전달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이다.
(2) 엘리사가 어떤 제의도 행위지 않고 그냥 요단강에 7번만 씻으라는 극히 간단한 방법만 제시한 것이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12절)
11-12절에서 나아남의 관점에서 자신의 치료법이 드러난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부위에 손을 대고 흔드는 등 방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나아만은 불같은 화를 내며 그곳을 떠나려 한다.
나아만은 포로된 소녀의 정보를 듣고 즉각 행동할 정도로 마음이 가난했지만, 군대장관의 격에 맞는 대접과 자기가 기대한 치유방식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는 새삼을 입을 수 없다. 내 영광과 내 고집을 포기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구원을 보게 된다.
■ 13-14절 병 고침 받은 나아만
이때, 종들이 나아만의 결정을 만류한다. 선지자가 어려운 일을 하라고 보냈으면 하지 않았겠냐며, 어려운 일도 아니고 씻으면 깨끗하고 된다고 하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주인을 설득한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대로 물로 내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일곱 번 물에 몸을 담갔다가 올라온다. 어린아이 피부처럼 완벽한 회복을 받는다.
11절에서 노하여 물러갔던 나아만이, 14절에는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근다.
물러남이 교만의 표지였지만, 내려감은 겸손의 표지이다. 나아만은 요단강으로 내려간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낮추고 내려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의 작은 순종을 잃어버린 자들은 아닌가? 큰 일을 도모하고 복잡한 것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 앞에 단순한 순종을 못하는 자들은 아닌가?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그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성경의 말씀들을 붙잡고 기도와 간구의 자리를 놓치고 있지 않는가?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것도 여종의 말 때문이고, 나아만의 병이 나은 것도 종들의 설득 때문이다. 나아만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포로로 잡혀온 여종이나 나아만의 종들은 잘 알고 있었다.
15절에 깨끗함을 받은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게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의 앞에 서서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 믿음으로 말씀을 받는 자
예수님께서 수리아 사람 나아만을 언급하신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눅 4:27)
나아만은 순종으로 치료받았지만,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보지 못하고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로 주님을 믿지 못함으로 주님은 말씀하신다. ‘선지자가 고향외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함이 없다.’
김광영 목사 주일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받고 있는가?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격려와 칭찬으로 말한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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