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en Mind
여호수아 2장은 여리고성을 정탐한 두 정탐꾼의 이러한 보고로 끝맺어진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그러한 보고를 받고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의 장막을 걷고 요단에 이르렀는데, 건너지 않고 유숙하게 되었다. 왜일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여기까지 왔는데, 진격하지 않고 멈추어 서게 된 것일까?
15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그 3일동안 요단강의 물이 불어서 언덕까지 넘쳐 흐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는 모맥을 추수하는 시기였습니다. 요즘달력으로 3, 4월쯤의 봄철입니다.
요단강의 범람현상은 이처럼 봄철에 자주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요단의 주요 세 지류인 ‘야르묵, 얍복, 모드옛’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물과 겨우내 오랫동안 레바논 산에 덮여있던 눈이 녹은 물 합치면서 강물이 불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이때가 되면 늦은비라고 불리는 우기철까지 겹쳐 강물은 더욱 불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요단강이 그 넓이가 20-30미터이고, 수심이 3-4.5미터정도이지만, 이때가 되면 요단강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수영을 해야 할 만큼 급류를 이루는 깊은 강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광경을 3일이나 실컷 목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들은 아마 하나님께서 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다면 어디 물길이 얕고 건너기 편한 적당한 곳을 우연히 찾아 어렵사리 건너게 하시지 않을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곳은 어디도 없습니다.
“이게 뭐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나안땅을 주신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요단강이 저렇게 불어나니 어쩌란 말이고?” 김씨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박씨가 “그래 물이 빠지기는 커녕 3일 동안 물이 계속 불어나고 이렇게 언덕에도 넘치는데 니 배있나?”
그때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최씨가 벌떡 일어서며 “다리도 없고, 배도 없는 우리가 어린아이들이랑 여자들을 데리고 가나안에 어찌 들어가노?. 가나안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겁을 먹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짜겠노? 그건 코메디야!”
회의적인 생각과 두려움, 염려등이 그들의 생각을 가득 엄습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시기에 물이 넘치는 줄을 모르셨다는 말인가? 왜 하나님은 백성들을 여기까지 불러놓고 시퍼런 요단강 앞에 멈추어 서서 그것을 보게 하시는가?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이해 못할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그렇게 수고했는데, 우리 가족에게 갑작스런 병이 생기다니, 하던 일도 잘 안되다니...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지체들을 위해 수고했는데, 아직도 노처녀 노총각으로 나이만 먹다니.... 하나님믿고 주일지키고 십일조도 내고 식당봉사도 하며 여전도회도 잘 섬겼는데 이렇게 나를 무시하시다니.... 내가 콧물감기 낫기 위해 모처럼 금식기도 했더니 목감기에 폐렴까지 겹치다니... 내가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의 십일조 내려고 했더니, 누가 훔쳐간 거야.. 어떻게 이렇게 꼬일 수가 있느냐 말이지...”
◎ Kerigma
여호수아는 3일동안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은 이 삼일동안은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여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포기하든지, 물이 빠질때까지 기다리던지, 그 강물을 헤치고 가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나 기다림은 아닐 것같고 그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놀랍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와서 무력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40년전 이스라엘 백성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신 사건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 때 홍해를 건넌 사람은 자신과 갈렙 두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3일후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에게 지시합니다. “우리는 내일 요단을 건널 것이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요단을 건너는 길은 너희가 이전에 한 번도 건너가보지 못한 낯설고 알 수 없는 길이지만,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가운데 기사를 행하실 것이다.”
여호수아 자신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강을 200만이 넘는 군중으로 건너게 할 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기사를 행하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해야할 일을 2가지 지시합니다. 뭡니까? 3절을 읽어봅시다. 5절을 읽어봅시다. 예! 언약궤를 따르는 것과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1)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생활을 하면서 항상 그들 가운데 세웠던 성막,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지성소에 두었던 궤입니다. 광야생활동안 이 언약궤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이동하고, 정착하였습니다. 이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너희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언약궤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따른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하는 길은 처음가는 낯선 길이었습니다. 백성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인도하실테니 오직 그 뒤만 따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임재의 표적은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항상 그의 백성들보다 먼저 행하시며, 앞서 나아가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나안땅, 하나님나라를 위해 길을 가야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그 길을 개척해 나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는 길을 항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겠다는 약 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을 가는동안 푯대를 향하여 달렸다”고 빌립보서 3:14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푯대가 바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히브리서 12장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가운데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는 모든 길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푯대이며, 소망이며, 인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는 법궤라고도 하는 데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징하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른다는 말은 ‘이 성경에서 우리의 갈길을 발견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119편에 주의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길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 내가 가는 길을 인도하는 내발앞의 후렛쉬라는 것입니다. 잠시라도 엉뚱한데 한눈팔다가는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여호수아는 이 언약궤를 따르라고 하면서 이 언약궤와 백성들의 거리를 2천규빗쯤 유지하라고 합니다. 1규빗은 45cm정도로서 2천규빗이라하면 900미터나 되는 거리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이것은 앞서 가는 사람들은 물론 큰 무리를 이루며 따라가는 모든 백성들이 이 법궤를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200만명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즉 모든 백성들이 이 요단강을 건너면서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한순간도 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앞에 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두 번째로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결케하라’고 하신 뜻을 살펴봅시다.
5절에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내일 하나님께서 너희가운데서 놀라운 기사를 행하실텐데 너희는 성결케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에서 ‘성결케 하라’고 하는 명령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단지 그들의 입는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입으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의복의 깨끗게함은 그들의 마음을 청결케 하라는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를 기대하면서 그들이 성결케하는 의식을 먼저 행했다는 것은 중요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앞서 사람의 편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가 이 성결이라는 것입니다.
성결 :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마음을 내어드리는 것
결코 그의 능력이나 지식이나 왕성한 열정과 수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딤후2:20-22)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으로 좇으라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단지 우리가 준비할 것은 우리의 그릇을 깨끗이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의 역사에 사용되어질 그릇들,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면서 우선적이고, 기본적으로 요구하시는 명령이 있다면 나의 마음과 삶을 하나님앞에서 깨끗이 함으로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지 못한, 깨끗하여 구별되지 못한 그의 백성들을 그분의 일을 위한 도구로 결코 사용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언약궤를 쫓았고, 성결의식을 행하였습니다. 드디어 다음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기뻐하셨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인도자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믿음과 순종을 기뻐하셨고,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십니다. 7절과 8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적에서 크게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잇는 것을 그들로 알게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강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눈앞에서 범람하는 그 강에 발을 넣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어떠한 거부나 지체함없이 순종함으로 발을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다 잠겼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곧 북쪽에서 흘러 내리던 강물이 그순간 뚝! 끊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16절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이미 흘러내리는 물은 제사장들이 굳게 선 지점 멀리에서 한벽을 이루어 쌓이면서, 그 물줄기를 막았고, 동시에 강바닥은 마른땅으로 변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금세기에도 3번이나 발생했는데, 아람 근처 요단강의 깊은 협곡이 사태를 일으키면서, 가능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식으로 가능했던, 그것은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들어간 직후에 일어났고, 4:18에서 제사장들이 나오자 물이 다시 흘렀듯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이고, 섭리임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널 수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자연의 신비였지만 백성들은 기이히 여길 필요가 없었다. 전능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홍해를 건넌 모세와 같은 권위를 여호수아는 부여 받아 백성의 눈에 크게 되었고, 백성은 사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시라는 믿음을 갖게되었고,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모든 왕들은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5:1)
◎ One Point
요단강은 이스라엘의 행로를 가로막은 큰 장애와 시련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가장 어려워 하는 현장 그 가운데 처음부터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이 다 지나기까지 끝까지 그 자리에, 가장 힘든 그 자리에서 백성들이 다 지나도록 서 계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교회당 건물이나, 예배시간에만 계시는 분으로 생각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 건물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그 현장에도 계신다. 우리가 이 강을 다 건너기까지 먼저 건너 기다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싸워내야하고, 건너가야하는 그 위기의 삶의 현장에 계신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시험가운데서도 외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본문 : 여호수아 3장 7-13절
찬송347 허락하신 새 땅에
● Sun 7th Oct 18 주약교회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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