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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22th 약속 겔 37장1~17절_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외일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물결과 국제화의 바람 속에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뿌리 뽑힌 삶을 살고 있다. 해마다 연출되는 명절의 민족대이동에서 우리는 그것을 절감한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적인 뿌리를 갖지 못해 당하는 소외감이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청년 실업 400만 이태백 이라는 말은 우리 주위에서 취업 3수생 4수생들을 보며 피부로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선택된 직업은 자신의 전공이나 취향을 살린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일시적 탈출구가 되어, ‘내가 이런 일 할려고 기껏 그렇게 공부하고 준비했는가하는 허탈감을 안겨준다.

아니, 낙원이 아닌 실낙원인 이 세상 자체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의 후예인 우리의 뿌리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137편에서 시인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통곡한다. 그들의 잃어버리고 초토화된 고향땅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존을 위해 끌어온 바벨론의 강변에서 그들은 노래를 잃어버렸고, 그 자리를 울음이 채우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애통함의 한 가운데서 에스겔이라는 한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시대적 배경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 에스겔서는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에스겔이라는 사람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때는 30세경이다. 1:1에 보면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이 내게 보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태어났을 때는 언제인가? 그가 활동하게된 주전 593년에 30년을 더한 주전 623년경이다. 그 시기는 유대 역사상 요시야왕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요시야왕은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책이 발견되자 그 율법책을 모든 백성에게 읽게 했다. 또한, 유월절을 지키고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했던 하나님을 잘 섬기던 왕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부시는 한 아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지어준 이름이 바로 에스겔이다. ‘하나님께 강건케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요시야왕을 통해 강건케 하시리라는 기대와 소망이 담긴이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요시야 왕이 죽자 상황은 달라졌다.

이스라엘의 죄는 극에 달하고 이방 민족의 전쟁을 위협을 받으며, 바벨이라는 대 제국의 창칼에 졸지에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어버렸다. 에스겔은 이 공격 때 바벨론 땅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잡혀갈 그 때는 이제 막 제사장의 사역을 시작해야할 시기였다.

그런 에스겔에게는 어떤 의문이 들었겠는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겠는가?

아마도 하나님 정말 살아계십니까? 살아 계시다면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내가 지금있는 이곳에서 약 1120km 떨어진 조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포로신세가 된 나에게 제사장 신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문과 회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에스겔을 찾아 오셨다.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박탈당한 에스겔, 민족의 소망이 다 사라진 에스겔에게 다가 오셨다.

성경은 종종은 우리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아무일도 시작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1. 골짜기 가운데 많고 마른 뼈들

 

에스겔이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리어 간 곳은 골짜기 한 가운데 였다.

그가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거기에 가득한 것은 골짜기 지면을 가득 메운 삐적 말라 비틀어진 뼈들의 무덤.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은 푸른 풀조차 보이지 않은 뼈들의 무덤이었다.

에스겔이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뼈들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현 주소였다.

37:1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한다.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우리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가히 정보쇼크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인터넷과 개인휴대폰 위성tv를 통해 정보의 바다속에 빠져있다.

하지만, 그 좋은 정보망을 통해서 흘러 들어오는 소식들, 보여지는 영상들은 무엇인가?

조류독감이나 사스니 하는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신종 유행병이다.

전쟁영화를 방불케 하는 폭탄과 테러의 현실과 전쟁의 소식이다.

그리고, 이란의 대지진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온갖 기상이변으로 감뭄과 태풍과 폭염의 소식이다.

우리나라 안에도, 독버섯처럼 번진 음란 문화,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와 깨어진 가정들, 빈익빈 부익부의 불균형속에 로또 열풍으로 떠들썩한 한탕주의, 신용불량자 350만 시대의 각종 범죄와 자살 소식들, 공교육이 무너지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코자 맞벌이하는 부부들, 그리고 입시철 마다 되풀이 되는 수험생들의 자살사건과 탈선하는 청소년들의 암울한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소식들 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골짜기를 또한 보게 됩니다. 아니 이 땅은 물질적으로 번영해 가는지 모르겠지만, 영적으로 더 깊은 혼란과 암흑기로 점점 더 빠져들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말세의 고통 하는 때’ (딤후3:1)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골짜기 가운데 서 있었던 에스겔의 비통한 심정으로 우리는 이 시대를 바라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 흘리시던예수그리스도의 그 마음을 알게 됩니다.

 

2. 여호와의 말씀에 회복된 뼈들 (3-8)


그때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음성 앞에서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 도저히 소망이 생길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만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모든 뼈에 대한 대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뿐이었지만,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 하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에스겔이 보니 그 뼈가 들어맞을 뿐 아니라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절망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이 죽음을 모든 것의 으로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죽음이 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지만, 하나님은 죽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소망 없는 이 땅에 우리는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소망 없는 텅 빈 가슴들을 바라보며, 그 영혼을 소생시키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며 증거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에스겔이 뼈들을 향하여 예언하자 엄청난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과 상황들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협력을 요청하십니다. 이 엄청난 구원의 사역에 우리를 협력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상이 뼈들의 천지라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린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일입니이다. 비록 생동하며 움직이는 것 같지만,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2:1) 사람들, 장차올 심판 가운데 눈에 잠시 보이는 안개 같은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오직 말씀을 보는 자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고 선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자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말씀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들 뿐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경험한 자로 이 소망 없는 땅에 주의 복음을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이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확한 메시지와 그 음성을 대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못 배우고 가난하며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을 수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언 받은 자이기에 당당히 그 음성을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전 주셨던 대 위임령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18-20)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 시대의 에스겔이 되어야겠습니다.


3. 여호와의 생기에 군대로 일어난 뼈들 (9-10)


뼈와 힘줄과 살과 가죽으로 형체를 갖춘 사람들이었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속에 생기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가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명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창조하신 과정과 같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처럼, 형체를 이루신 다음 생기를 넣으셨습니다 (2:7). 생기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숨결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 명대로 대언할 때,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였습니다.

이 환상에 대한 해석(11-14)은 그 의미를 죽은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의 살아있는 백성에게 적용합니다. 당시에 알려진 세계에 흩어진 백성, 특히 에스겔이 있던 바벨론에서 송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신 말입니다.

이 환상은 그들에게 바벨론이라는 무덤을 열고 그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신이 하시는 일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주전 539년 포로로 잡혔던 백성들은 고토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상황은 이 환상의 영광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은 그것을 능가하는 성취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당신의 영으로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2:10)과 이방인들을 이 부활의 사건에 동참토록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 환상을 훨씬 더 폭넓게 경험하게 됩니다. 안식후 첫날 저녁때 제자들이 두려워 모인 곳에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사, 평강을 주시며 저희를 향해 숨을 내쉬며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20:19-22)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린도 전서에는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15:52-54) 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호와의 생기,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된 우리는 이제 극히 큰 군대로 주님의 군대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부터의 탈출만 아니라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나온 것처럼 죄로부터의(form) 구원일 뿐 아니라 복음의 군사가 되기 위한(for) 구원입니다.

딤후 23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고난받는일에 동참시키시고자, 그리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서 진리의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짐으로’(6:14-17)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 결론

 

에스겔은 기쁨이 스며있는 이 메시지를 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와 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희망을 품고 있을 때 에스겔은 멸망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멸망의 시점에서는 희망을 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그 소망의 메시지는 그림의 떡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파괴되고 파멸되어 생명의 소망을 잃어버린 곳에서 생동감 넘치는 여호와의 군대의 환상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에 대한 긍정하고 이 세상의 재물을 모으는 일에 관심 있고 자신을 위해 쌓아두기에 여념이 없는 어리석은 부자들에게 심판과 멸망을 외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절망과 소외의 틈바구니 속에서 절규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선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 였던 에스겔처럼, 우리는 교만한 자에게는 회개의 메시지를 고통에 빠진 자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를 힘입게 증거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황무한 땅이 에덴동산 같이 되고(36:35), 메마른 뼈들의 골짜기에서 극히 큰 생동감에 찬 군대가 일어나는(37:10) 이 메시지는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 절망스러운 차디찬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봄을 알리는 전령자로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메마른 뼈들의 골짜기로 나아가 외칩시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김광영목사 진주 주약교회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