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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말씀 묵상

시편 135편 / 여호와는 위대하시며 / 주약교회 김광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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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135:4)

 

1/찬송을 해야 할 이유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2]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2/ 찬양의 내용

 

[5]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7]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8] 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9] 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표적들과 징조들을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보내셨도다

[10] 그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11] 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

[12]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13]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15]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16]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18]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3/ 하나님이 우리의 찬송을 원하심(찬양의 크레센도)

 

[19] 이스라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아론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0] 레위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1]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오경웅은 이 시편을 번역하며 제목을 지으신 분과 지음 받은 인생이라고 붙였다. 지으신 분을 바르게 알아야 지음 받은 인생 또한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선명해 진다. 어디서 왔는지 알아차리면 지금은 어디쯤이며 또 어디로 가야 할지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시작하신 분에 대한 신뢰가 있고 알맞은 때에 마치리라는 평안함이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계(거기)까지 가게 하시리라는 믿음은 지으신 분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선물이다. 그 간격을 알지 못하면 지음 방은 인생이 얼토당토않으며 엉뚱한 짓(우상 만들기)를 하려든다. 시인은 통렬하게 비판한다. 우상을 만든 자도 우상과 같고 우상을 섬기는 자도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제가 만들고 제가 취하여 놀아나니 어리석음 한이 없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받고 런던 선교회 협회에 가입 남아프리카로 갔다. 그의 영혼에서 울리고 있던 핵심 성경 구절은는 시편 135편이었다. 그가 스코틀랜드에서 가족과 고향에 작별 인사를 할 때 그와 함께한 것은 바로 이 시편이었다.

135편이 귀에 쟁쟁히 울리는 가운데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로 향했고, 너무나 힘든 악조건에도 그리스도를 보내며 30년을 보낸다. 이 시편의 어떤 점이 개척자적 산교사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은 것일까? 이 질문의 대답은 이것이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이라는 사실이다.

135편은 온 땅을 다스리시는 참되신 한 분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요청한다. 피조물과 열방과 구속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소유하며 살아간다. 그 중 대부분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쓰레기 같은 것들로 전락하여 폐기처분 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사할 때마다 우리는 이런 것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아주 특별한 소유가 있어 평생을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보물로 기념하고 싶은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시인은 우리 성도들의 존재 자체가 주님 자신의 아주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죄와 허물투성이로 살아가는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만유를 소유하신 여호와께 무슨 부족함이 있어 인생이라는 소유가 다시 필요할까?

하나님은 자신을 닮아 인격적 교감을 나눌 대상으로 인간이 필요하셨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아주 특별한 그의 사랑의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인생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존재로 지음받았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애정을 고백하는 인간의 존재 자체는 하나님의 기쁨인 것이다.

 

이 찬양시는 찬양과 설교를 겸한 시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목회의 경험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설교의 내용이 설교 전후에 부르는 찬송가에 반영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는 크게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봤다. 찬송가가 만일 그렇게 불려진다면잘한 설교는 그 감동적인 메시지를 신도들의 마음속에 더 깊이 부각시킬 수 있고또 만일 설교가 서툴게 표현되고 감동이 없었다고 해도 같은 내용의 찬송이 이를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설교자는 누구나 자기 설교의 감동의 보충을 위하여 설교 후 부를 찬송가를 선택함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 찬송은 그 구조를 서론14, 본론518, 결론1921으로 나눌 수 있고, 또 그 내용도 서론부에서는 찬송을 해야 할 이유가 밝혀졌고 본론부에서는 찬양의 내용이나왔고, 결론부에서는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인간의 찬송을 원하시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135편의 시는 예배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창작성보다도 모방성 또는 다른 자료를 가지고 자기 것을 만드는 조작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1-4절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요청이다. 세 번에 걸쳐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세 번의 반복은 그 내용을 최상급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주를 자랑한다는 뜻이다.

5-18절은 찬양의 이유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으로 인해 찬양한다. 여호와가 선하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야곱을 택하셨기 때문이다.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권세에 있어 그분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 속성이 영원하시다.

19-21절은 찬양의 크레센도이다. 마지막 찬양의 크레센도로 예배에 대한 시편기자의 요청이 정점에 도달한다. 모든 신자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외친다.

 

유명한 불가지론자 안토니 콜린(Antony Collins)자유신앙주의 담론이라는 책을 썼다. 인본주의 철학으로 철저히 무장한 채 인간에 대한 낙관론과 하나님을 폄하하는 사상을 쓴 그의 논문이 영향력이 있었다.

어느 주일 콜린스는 교회로 걸어가는 가난한 영국 노동자를 만났다.

 

당신의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오? 아니면 작은 하나님이오?”

 

선생님, 저의 하나님은 너무나 크셔서 하늘의 하늘도 그분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분으로 너무나 작으셔서 나의 비천한 마음 속에 거하실 수 있는 분입니.”

 

이 철학자는 자신이 읽은 기독교를 옹호하는 모든 책보다 이 노동자의 이 고백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