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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6장 5-9절 주안에서 주께 하듯

 

 

 

 

A.D 150년경 아리스테이데스(Aristeides)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쓴다.

“... 그들의 남종과 여종들에 관해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종들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인 되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주인들은 아무 차별없이 그 종들을 형제라고 부른다.”

교회의 독특한 용어가 형제 자매이다. 세상의 어떤 직함이나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것이다.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6:5-9) [5] Slaves, obey your earthly masters with respect and fear, and with sincerity of heart, just as you would obey Christ. [6] Obey them not only to win their favor when their eye is on you, but like slaves of Christ, doing the will of God from your heart. [7] Serve wholeheartedly, as if you were serving the Lord, not men, [8] because you know that the Lord will reward everyone for whatever good he does, whether he is slave or free. [9] And masters, treat your slaves in the same way. Do not threaten them, since you know that he who is both their Master and yours is in heaven, and there is no favoritism with him.

 

 

A.D 150년경 아리스테이데스(Aristeides)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쓴다.

“... 그들의 남종과 여종들에 관해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종들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인 되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주인들은 아무 차별없이 그 종들을 형제라고 부른다.”

교회의 독특한 용어가 형제 자매이다. 세상의 어떤 직함이나 직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것이다.

 

 

 

5절 그리스께 하듯 순종하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이어 이제 종과 주인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노예 제도가 있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에베소 교회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고 노예를 소유한 주인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이유로 종들이 주인에 대한 태도를 안일하게 해서는 안된다. 또한 주인이 종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대우해준다고 해서 종이 주인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해소서 안된다. 바울은 종들에게 주인의 명령에 순종할 것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당시 종의 주인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는 주인을 피해 도망쳐 온 종 오네시모를 다시 그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낸다. 이처럼 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며 경거히 행동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바울은 두려워하고 떨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성실한 마음은 둘로 갈라지지 않은 하나 된 마음으로 중인에게 순종하라는뜻이다. ,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명분으로 육체의 상전에 대한 의무를 등한시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더욱 주인을 잘 섬겨야 한다.

직장생활이나 위계질서가 있는 관계들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의 갈등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처럼 아랫사람에게 많은 윤리적 지침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자리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6-7절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진실하게 하라

 

주인을 섬기는 종들의 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주인이 볼 때에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눈가림의 순종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실한 순종이 아니라 속이는 것이며 게으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인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행하라는 것은 육신의 상전을 대하기를 마치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처럼 하라는 뜻이다. ,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순종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육신의 상전들이 주와 같지 않다는 것을 ᄌᆞᆯ 알고 있다. 주는 선하고 의로우시며 자비하신 분이지만 육신의 상전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상전에게 마치 그리스도께 하듯 진실하게 순종하라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분이나 상황에 있든지 항상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하기를 원하신다.

 

8절 행한 대로 받게 될 것이다

 

바울은 왜 종들이 육신의 상전에게 주께 하듯이 순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의 뜻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은 곧 주께 하는 것이 된다.

종이 주의 뜻에 따라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께 순종하는 것이되며, 주께서는 그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 앞에서는 종이나 주인이나 모두 동일하다. 종이라는 해서 자유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지 않고 주인이라고 해서 종들보다 더 대우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께서는 각자가 선을 행한 대로 갚으시기 때문이기에, 주인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주인이 종에게 선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주의 뜻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된다.

 

 

9절 주인들에게

 

바울은 주인도 종에게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종에게 모든 일에 있어서 주께 하듯이 하라고 명령했던 것처럼, 주인도 종을 대할 때 그러한 태도로 하라는 뜻이다.

보통 종이 주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냉정하고 가혹하게 대하지 않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주인에게 종을 위협하지 말고 명령한다. 바울은 여기서 주인도 그리소도 안에서 종이란 신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만약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자신의 종에게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 하나님의 종이란 같은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종을 대할 때도 종으로 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로 간주하면서 그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16). 왜냐하면 하나님은 종이나 자유자나 신분에 따라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오직 주의 뜻을 그가 행한대로 갚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노예나 자유자나 종이나 주인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모두가 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한 백성일 뿐이다.

 

그리스도인 주인들은 자기가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의식하며 겸손히 직원들을 대해야 한다. 내가 주인이라고 직원들에게 겁박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노예제도의 윤리성 문제와 그것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바울은 그리고 그후 교회는 왜 노예제도를 고치지 못하고 결국 18세기에 세상 사람들의 손에 의해 폐지되도록 방치했을까? 시원한 대답은 없으나 몇 가지 사실을 알 필요는 있다.

첫째, 예수님과 바울의 가르침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사회상과는 아주 달랐다. 처음 몇 세기 기독교는 소수 종파였다. 노예제도를 중대한 근간으로 삼던 로마 제국의 사회구조를 개혁할 만한 사회 세력을 구성하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현대적 민주주의 개념이 없었던 까닭에 노예제도 폐지하러 나서는 것은 곧 자살행위였다. 로마제국은 기독교 박해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매사에 기독교 원칙을 세세히 적용하기 보다 그 원칙을 세우는데 집중했다.

둘째, 미국의 노예해방 운동의 직접 요인은 노예 매매에 있었다. 노예나 피고용인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그 요인이 아니었다. 이점에서 18세기와 19세기는 로마시대와 다르다. 더구나, 종에게 자유의 기회가 부여되고 대우도 공정하던 히브리 사회, 그리고 그 원칙을 계승한 기독교 사회에서는 종을 다루는 태도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유와 책임이 이뤄내는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가 없으면 율법주의로 흐르고, 책임이 없으면 방탕해 진다.

 

#참고도서

아이칸 컨디. 성경본문의 맥을 밝혀주는 에베소서-데살로니가후서. 한국성서유니온, 1997, 37

찰스 링마(Charles Ringma). 행동하는 신앙인을 위한 자끄 엘룰 묵상집. 윤매영 옮김. 조이선교회, 2004. 123

'설교와 묵상-에베소서'. 성서유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