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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97th 약속 나를 이리로 보낸 이

 

만약 우리는 타락의 길로 이끌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들이 우리 곁에 있다면? 우리의 고통과 불행이 악마들의 치밀한 유혹의 결과라면? 이런 작가적 상상력으로 씌여진 책이다.

상위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이자 신참 악마 웜우드에게 인간을 어떻게 요리할지 어떻게하면 원수인 그리스도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할지 31통의 편지글을 통해서 자신의 노하우를 설파한다.

 

C.S.루이스는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말한다.

악마를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다. 그 내용은 서로 정반대이지만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인 오류들이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쏙는 것이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과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한다.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서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용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하다는 뜻이니까.

인간이 불변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바로 이 기복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다. 골짜기로 떨어졌다 꼭대로 올라갔다 하며 끊임없이 후퇴했다 복귀해야 한단 말이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은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확기차며 쉽게 감동하는 시기와 무감각하고 결핍된 시기를 번갈아 겪어야 한단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 걸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우리는 고난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와야 했던 요셉의 삶을 다시 주목해 보자.

 

인간은 문제투성이다. 시기와 질투, 욕망과 야망, 좌절과 기쁨 등이 어우러져 부딪히기에 인간사회란 안정과 평화보다 갈등과 투쟁이 더 자주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복수심이 싹튼다.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자는 무덤을 두 개나 파는 격이다 중국속담-

C.S 루이스는 말한다. ‘용서란 인간적인 공평함을 넘어서서, 절대로 그냥 봐줄 수 없는 문제들을 너그럽게 용납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 곳곳에서 쓴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과거의 일들을 기억한 채, 자기 연민과 분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안정되고 침착한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은 억눌린 증오로 들끊고 있다.... 쓴뿌리는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육체도 해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위궤양이나 편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원한이 불면증과 연관이 있다고도 한다. 의학자들은 분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분을 삼키고 억누르는 사람은 감정을 표출함을써 화를 풀어 버리는 사람보다 훨씬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쓰라린 추억을 승화시키며 소화해야 하는가

우리가 대처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그 쓰라린 추억을 승화시키며 소화해야 하는가이다.

요셉에게는 자신이 이곳에 노예로 팔려온 것에 대한 원망이 있을 것이고, 요셉의 형들에게는 요셉에 대한 죄책감이 늘 따라다닌다. 죄를 품고 사는 일만큼 양심과 영혼을 갉아 먹는 일이 없다.

(전문맥)창세기 441-20절 은잔의 시험

은잔은 시험은 아버지의 편애가 머무는 베냐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형제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다루어 보는 요셉의 시험이었다. 예전의 자신을 팔았던 그 형들인지 아니면 그동안 어떤 변화의 모습을 갖게되었는지 보고자 함이다.

 

1문단 _ 요셉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다(1~5)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그 양식값도 돈과 함께 넣으라.

 

2문단_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하다(6-17)

 

청지기

형들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이런 일은 결단코 종들이 아니하나이다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면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주의 종이 되리이다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뉘게서 발견되면 그는 우리의 종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는 책망이 없으리라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리라

양식을 가지고 돌아가는 일은 가족공동체의 생존이 달린 것인데, 베냐민이 일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요셉의 시험임을 알지 못하는 형제들의 입장에서 베냐민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형제들 스스로 그는 죽을 것이요라고 가장 가혹한 선고로 결정하는 것을 주목하라. 형제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호소하지 않는다. 도둑은 중죄를 지은 데 대해 처형돼야 한다.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무죄를 분명하게 확신하므로, 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할 수 있다.

청지기가 대답한다. 법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두가지면에서 수정한다. 첫째, 도둑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종이돼야 한다. 둘째, 나머지 형제들은 노예로 삼지 않고 놓아준다. 역설적이게도 피고인이 더 심각한 형벌을 제안하고, 원고가 더 가벼운 형벌을 제안한다.

 

이 황급한 사태에 그들이 취하는 행동

 

옷을 찢고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옴.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러 그 앞 땅에 엎드림

 

요셉에게로 3번째 나온 형제들, 처음 두 번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공식적으로 절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정중하기보다 필사적이다. 형제들은 요셉앞에 엎드린다(바이펠루).

그들에게 말한 요셉의 수사적 질문은 두가지 가운데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왜 너희는 내잔을 훔쳤느냐? 내가 점을 치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못하느냐”, 둘째 너희는 내 잔을 훔치고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너희는 내가 점술의 대가이고 어떤 식이든 너희를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두 번째 해석은 형제들의 완전한 무력감을 강조한다. 애굽에서 외국인이었던 그들은 도둑들이거나 최소한 형제들 가운데 하는 도둑이다. 그들은 점치는 능력으로 어디든 추적할 수 있는 자의 손에 달렸다.

 

여기서 말하는 점술형태는 수점(물에 기름을 붓거나하는 것)이나 더 일반적으로는 레카노점(용기에서 액체의 움직임을 관찰함)이다. 물과 기름이 섞일 때, 점술가들이 연구하고 해석하는 배열이 만들어 진다.

 

3문단_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호소하다(18-34)

 

요셉과 유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자 하는가?

 

요셉

유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느냐

나같은 사람이 점 잘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진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것이니이다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이전에 주께서 물으시길.....

창세기에서 사람의 가장 긴 발언은 유다가 요셉 앞에서 한 발언이다. 길이가 크게 다른 두 단락으로 구성된다. 첫 단락은 가까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다(18-32), 둘째 단락은(33-34)은 현재에 초점을 둔다.

 

정황적으로는 형들이 보기에 베냐민의 잘못이 분명하기에 그가 책임질 일이었다. 베냐민을 남겨놓고 올라갈 만도 하다. 그들은 이전에 시므온도 남겨두고 갔었다.

시므온과 유다는 레아에게서 난 아들이다. 베냐민은 유다의 이복동생이다. 그런데도, 유다의 제안은 은잔을 훔친 베냐민을 포함해 열 한명 모두가 다 종이 되어 남겠다는 것이다. 유다가 연대책임을 지며 베냐민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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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 본문

 

1문단 _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1~8)

 

유다와의 대화를 통해 형제애를 확인한 요셉의 반응을 보게 된다.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지른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렸다.

오랜 과정의 요셉의 응어리풀기는 이후 형제들과의 관계를 가식없이 편안하게 대하게 한다. 내속에 해결되지 못한 응어러진 관계는 무엇이런가? 요셉은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놀라는 형들을 어떻게 안심시키는가?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의 과거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요셉은 과거를 잊을 수는 없었지만, 과거에 발목잡힌 사람이 아니었다.

 

요셉이 이전에 형제들과 만날 때, 자신을 통제하고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43:31). 그러나 이제는 그는 이 통제력을 완전히 잃고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창세기에서 세 번째로 요셉이 우는 것을 기록한다. 4224절과 4330절이 있었다. 처음 두 번은 숨어서 울었다. 요셉이 떠나 들키지 않고 울 수 있었다. 여기서 요셉은 그 밖의 모든 사람이 나가라고 명령해서 통제할 수 없는 흐느낌을 표현한다. 그는 이제 야곱을 내 아버지로 부른다.

 

(45:7-8)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의 유명한 지위를 마지막에 드러내는 것이 흥미롭다. 요셉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성공을 달성했는지, 자기에게 온 어떤 명예가 있는지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대신에 형제들에게 무엇보다 자신이 분석하기에 애굽에 있게 된 이유를 드러냄으로써 시작한다. 요셉은 자신보다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한다.

 

 

2문단_ 요셉이 야곱에게 전하는 메시지 (9-15)

 

아버지께 속히 고하여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고센땅에 나와 가깝게 하소서.

요셉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요셉의 형들이 전달해야 한다. 네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진다. (1) 사자에게 임무 부여 (2) 메시지 문구 (3) 완료로 된 보고와 명령으로 된 소환 (4) 동기유발.

 

지금까지 새롭게 발견된 관계 속에는 독백과 눈물만 있었다. 요셉이 모두했다. 이야기는 있었지만 접촉은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접촉이 있으며(14-15), 대화(15)가 있고, 요셉은 많은 눈물을 흘린다. 베냐민에게서 시작해서 요세은 각 형제들에게 옮겨가고 각자와 입맞춘다. 이들은 20년 이상 헤어져 있던 간격을 메우기 위해 할 얘기가 많았다. 이후로 오랫동안 있었던 형제들 사이의 간격이 이제 끝나는 과정에 있다.

요셉은 이렇게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고, 형들과 입맞추고 안고 운다. 나의 애굽에서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고하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라 청한다.

 

 

 

3문단_ 바로가 요셉의 초대를 승인하다 (16-20)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린다. 바로와 그 신복들이 크게 기뻐한다. ‘애굽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 아내, 아비를 데리고 오라명한다. 수레, 길 양식, 옷 한 벌씩 주고, 베냐민에게는 은 300과 옷 5벌을 준다. 그 아버지에게는 수나귀 10, 애굽의 아름다운 물건, 암나귀 10, 길에서 공궤한 곡식, 떡과 양식을 준다. 요셉의 형들은 먹을 것을 조금이라고 구하기 위해 왔지만, 바로와 신하들은 크게 기뻐한다. 요셉의 형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요셉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의 반응은 어떠한가?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한다. 요셉이 부탁한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한다. 야곱이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소생한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 살아있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을 들은 야곱, 그의 깊은 아픔이 예기치 못한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지막 절에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새로운 이름으로, 곧 새로운 운명과 새로운 미래를 말하는 이름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있다. 요셉은 살았고, 이스라엘은 요셉을 만날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삶에서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금욕적으로 감내하려는 태도도 옳지 않다. 고통은 다 쓰임이 있으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생을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 상황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상황을 대하는 우리 내면의 태도인 것이다.

_ 에버하르트 아놀드

 

우리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시며, 섭리자시며, 내 삶을 빚어가시는 토기장임을 믿을 때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할 영적관점이 보여진다. 우리가 쓴뿌리와 복수심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주변에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진정한 용서를 베풀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을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풍차를 만들 수는 있다.

 

파도를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배의 돛을 조종할 수는 있다.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_폴 마이어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대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치르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들이 짊어진 짐을 발견하고

신음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_ 존 왓슨

 

넬슨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핍박을 받아 27년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된 다음 남아공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7년 수감생활이란 미움과 원한이 사무칠만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해 주러 온 내빈들을 소개하면서 세상을 깜짝놀라게 했다. 세계각국의 정계요인들을 소개하고 그 다음으로 그를 가두었고 지켰던 세명의 간수들을 소개했다.

수감실에서 나와 바깥세상의 자유로 통하는 대문을 넘어설 때 분노와 원한을 감옥에 남겨두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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