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NIV>
(막 13:9-13) 『[9] "You must be on your guard. You will be handed over to the local councils and flogged in the synagogues. on account of me you will stand before governors and kings as witnesses to them. [10] And 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 [11] Whenever you are arrested and brought to trial, do not worry beforehand about what to say. Just say whatever is given you at the time, for it is not you speaking, but the Holy Spirit. [12] "Brother will betray brother to death, and a father his child. Children will rebel against their parents and have them put to death. [13] All men will hate you because of me, but he who stands firm to the end will be saved.』
이제 예수님은 앞 단락에서 기술된 불안정한 상황에서 제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말씀하신다. 한편, 마태가 본 단락의 내용을 제자 파송 강화에서 소개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아마도 마태는 성전파괴상황(13장/마 24장)과 제자파송강화(마 10장)사이의 시간적 내지는 상황적 연관성을 전제한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제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적대자들로부터 미움과 고난을 받게된다. 이 고난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그 상황을 빨리 멋어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스스로 조심하라는 서두의 명령은 제자들에게 고난과 박해를 예고하는 이 단락의 내용을 총괄한다. 때와 기한을 알아보려는 묵시문학적 호기심은 다시 거부된다. 자신이 제자임을 확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다. 제자들에게 제기되는 요구는 클 것이다. “넘어가다”는 말은 암시적인 것이다. 이것은 법정용어로서 실제로는 누구를 재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태형은(12:3-5)은 지방 법정들의 권한에 속해있었다. 태형이 회당에서 행해진 것은 위협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의 추종자들을 끌고간 총독들과 왕들은 이방법정을 나타낸다. 이 문구는 그리스도교적 공동체가 유다교적 공동체의 재판권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그 재판관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이 지역이 팔래스틴에서 생겨났음을 말해준다. 제자들이 고백하는 예수의 이름이 제자들에 대한 박해의 원인이다. 박해를 받으면서 그리고 변호를 하면서 행한 증언 적대자들을 정죄하는 객관적인 증언이다.
‘주의하여라(블레페테)’라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다만 목적어 ‘스스로(헤아우투스)’가 추가됨으로 제자들 자신과의 연고나성이 좀더 부각된다. 그들이 주의할 것은 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부딪쳐 올 박해와 연관된다.
그들이 맞게될 박해는 세종류로 예측된다.
첫째, 제자들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적대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파라도수신)’ 그들이 넘겨질 대상은 공회들, 실제로 제자들은 공회에서 심문을 받았다.
(행 4:5-7)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둘째, 그들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다.’ 실제로 바울 자신이 박해자로 행하기도 했고, 제자로서 당하기도 했다.
(행 22:19-20)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고후 11:24-26)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셋째,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총독들과 왕들 앞에’죄수로 재판을 받으며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실제로 바울이 로마총독들 앞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그러했다.
(행 26:24-26)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직면하게 될 박해는 복음선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복음선포 대상이 유대인을 넘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 특히 예수님은 ‘먼저(프로톤)’이라고 언급하심으로 이 일이 성전 파괴에 앞서 이루어져야 함을 밝히신다. 그렇다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선ㅍ포되는 것은 성전파괴의 징조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권력자들 앞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 그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베드로는 공회 앞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그들이 깜짝 놀랄만한 연설을 수행한다.
(행 4:8-13)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이러한 박해는 심지어는 가족 일원들에까지 확대될 것임을 예고하신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가족들 사이에 단순한 증오심 정도가 아니라 ‘죽음에 넘겨주는’상황까지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실예로 네로 황제 박해당시(64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족의 밀고로 죽음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런 급박한 상황속에서도 ‘끝까지’인내해야 한다. 그러한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끝까지’는 ‘영원히’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제자는 육체적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인내함으로써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감당할 만큼 고난을 주신다. 인간이 자초한 재난을 고스란히 다 받는다면 끝까지 신앙을 지켜낼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내가 겪고 있는 이 시련은 감당할 만하니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인내할 힘을 구하자.
(마 10:34-36)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우리의 신앙이 때로 가족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깨어지는 대가를 치룰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고난을 시작될 것을 보여준다. 하지마나 나중까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복음을 위해 자기를 내어줄 각오를 하지 않는 삶, 그래서 굳이 인내할 필요가 없는 삶은 내 몫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며, 종말을 사는 성도의 사명을 외면하는 삶일 수 있다.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교회를 출입한다면 나는 구원에서 아주 먼 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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