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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 말씀

64th 약속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_ 눅 22장 7-13절 _김광영목사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유월절을 준비하라

누가복음 227-13

(성찬식)

 

 

무교절은 헬라어로 아쥐모스라고 한다. ‘는 없다는 뜻 부정의 접두사이다. ‘쥐메는 누룩이라는 뜻이다. 누룩없는 떡을 먹는 절기이다. 떡을 발효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어 무교병을 먹었던 출애굽 당시를 회상한다. 그렇게 급작스레 출애굽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이다. 아빕원(정월) 15일부터 1주일동안, 계속되었다. 무교절 전날밤을 유월절로 지켰다.

 

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말씀하신다.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왜 유월절에는 양을 잡아 식사를 하는 것일까?

 

유월절 만찬

 

성만찬의 기원은 유월절 식탁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과거에 노예의 땅 이집트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던 출애굽을 기념하는 날인데,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졌던 마지막 만찬이 바로 이 유월절을 기념하는 식사였습니다. 유월절 식사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어떤 중요한 상황을 전제로 마련된 식탁입니다. 유월절 식사는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는 식사(12:21-27)이고,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종살이하던 자들이 그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놓여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기념하는 생명의 식탁입니다.(22:15-16) 즉 유월절 식사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동일한 희망과 메시지를 그 안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신비로운 식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문맥 1-6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백성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열둘 중 하나인 가룟인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간다. 내부자와 외부자가 예수님을 죽이고자 만난다.

4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 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며그렇게 돈을 주기로 언약하고, 유다가 예수님을 무리가 없을 때 넘겨줄 기회를 찾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할 백성의 지도자들이 왜 백성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백성의 신망을 얻은 예수님을 죽이려는데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공적으로 행할 수 없는 악한 일들을 모의하는 불의함을 판별할 지혜, 또 저항할 용기가 우리에게는 있는가?

4장 광양의 시험에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얼마동안 떠났던 사단이 가룟유다의 마음에 들어왔다. 12:3-을 보면,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가는것으로 유다의 모습이 묘사된다. 욕망을 이기지 못해 신앙을 포기하는 마음이 사단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우리속의 탐심과 욕심을 이기도록 언제나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

 

후문맥 22:14-23을 보며, 주님은 고난받기전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다.

 

(22:14-16)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떡을 떼시며 잔을 나누시며, 너희를 위하여 죽는 내 몸이라,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하신다. 악한자들의 악한 동기를 통해서도, 유월절 어린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구원을 성취하시는 주님을 뵈옵는다.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먹게 하라이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 되묻는다. “어디서 준비하시기를 원하시나이까?” 그들은 가룟유다와 달리 순종하는 제자들이다.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우리는 주님의 요청과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유월절 식사를 아주 치밀하게 준비하시는 예수님, 그 일의 성취를 통해 예수님의 권위를 또한 드러내신다.

 

가룟유다와 베드로 요한 각기 어떻게 유월절을 준비했나? 유다는 사단이 들어가 적대자들과 의논하며 예수님을 넘겨줄 배신할 방도를 찾는 것으로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유월절 식사를 준비한다.

우리는 누구의 제자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우리의 마음을 지켜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주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소서.

 

 

최후의 만찬

 

이 신비로운 식탁에서의 예수님의 만찬사에 대해 마태와 마가는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26:26, 14:22)라고 했고, 누가와 바울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22:19와 고전 11:24)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과, 고난 중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도중에 제자들을 보시고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22:19;고전 11:24, 25)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당부는 곧 당신의 죽음을 기념케 하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념하라'는 뜻의 헬라어 '아남네시스(ναμν-ησις)''예수의 삶과 수난과 죽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그 삶을 성도의 삶 속에서 재현해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처럼 살지 못하면 주님이 기념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찬에의 명령은 예배에의 명령임과 동시에 예수적 삶에 대한 명령입니다.

 

정리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일 준비를 하는 자들과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실 준비를 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대조된다. 사단에게 정복당한 가룟유다의 마음과 예수님의 말씀을 충식히 수행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도 뚜렷이 나뉘어진다.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님, 우리 삶이 주님의 선한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