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아이는 아무리 이런저런 말을 하고 다른 것에 주의를 돌리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끄럽게 울어젖힌다.
그러다가도 어머니가 젖을 물리기만하면 금새 조용해 진다.
하지만, 젖을 떼면서부터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얻는 것’보다는 단순히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스도인은 엄마한테 젖 달라고 울어대는 갓난아이와 거리가 멀다. 그보다 엄마 품에 얌전히 안겨, 엄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는 젖 뗀 아이의 평온한 모습이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오직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단으로 여기는 성향에서 벗어나, 엄마를 엄마자체로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가 되듯,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의 과정을 거친 예배자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갈망하는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의 삶이 무게 중심이 옮겨진 것이다.
큰 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에 힘쓰지 아니한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 안에서 안정감과 평온함을 누리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혹은 무시 받을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고자 큰일 기이한 일에 휘둘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들여 주시는’ 그 관계에서 안식을 누린다.
많은 목소리들이 우리의 주위를 끈다. “네가 좋은 사람인 것을 증명하라”는 목소리가 있다. 다른 목소리는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편이 낫다.” 그 목소리는 말한다. “아무도 너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나는 말하길, “성공적이고 유명해지고 힘있어 질것을 확신하라.”
그러나 이 모든것의 저변에 자주 대단히 잡음 같은 음성 여전히 고요하고 작은 음성이 말한다. “너는 사랑받는 존재이고 나의 호의가 네안에 쉬고있다.” 그 음성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는 필요한 음성이다.
그 음성을 듣고자함에는, 그렇지만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것은 고독과 침묵과 강한 듣고자 하는 결심이 요구된다.
기도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내 사랑하는 자요”라고 말씀하시는 그 목소리를 듣는것이다.
믿음이란 신경증적인 의존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뢰이다.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할 신앙의 모델로 어린아이를 추천하셨다.
(막 10:14-16)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이것은 어린아이의 무력함 때문이 아니라, 흔쾌히 주님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자발성과 순수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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