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대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네.
그가 말하길 '돌로 되어 거대하지만 몸통은 없던 두 다리
사막에 서 있었네.
근처 모래 위에는
반쯤 묻힌 깨진 두상이 누워있었는데, 그 표정이 찌푸려져 있고,
주름진 입술엔 독선의 냉소가 감돌고 있었기에,
조각가에게 말하길 "왕의 정열을 잘 읽었구나.
그것을 조각한 조각가의 손과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하던 왕의 심장을 뛰어넘어
생명없는 물체 위에 각인된 채로 살아남았소."
그리고 받침대 위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
너희 강대한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뭉툭하게 삭아버린
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며,
외롭고 평탄한 모래 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네.'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창작한 소네트(sonnet)이다. 1818년 1월 11일 런던의 이그재미너(Examiner)지에 처음 발표되었다.
제목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그리스어 명칭에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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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혜교사의 서문
[1]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이 말은 누구에게 외쳐지는가? ‘뭇 백성’이며 ‘세상의 거민들’이다. 이 말속에 선포될 지혜는 나라와 민족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 지혜는 현실의 지위나 귀천에 상관없이 적용된다.
지혜의 교사가 할 말은 ‘지혜’와 ‘명철’이다. 그것은 ‘비유’와 또 ‘오묘한 말’과 관련이 되어져 있다. 시편 49편의 지혜는 삶의 가장 위대한 수수께끼들 중의 하나, 즉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러한 수수께끼에 쉬운 대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수수께기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나갈 지혜는 있다. 지혜 교사가 ‘풀고자 하는’ 또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2/부유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 관한 지혜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교사의 예비적인 질문(5-6절)은 그의 지혜를 얻고자 찾아왔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죽음의 위협을 받는 환난의 때에 강력한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자기들의 부와 지위를 의지하며 그와 유사한 위협에도 잘 견뎌내는 것 같다. 그러나 교사는 질문한다. “왜 그러한 원수를 두려워 해야 되는가?”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 자신들은 면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면제되었다고 또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잇는가? 지혜교사가 고난 받는 자들에게 그것과 상반된 견해를 밝힌 것은 바로 그때이다.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물을 주고도 자신을 구할 수 없다. 세상의 어떤 부자라도 그의 속전을 바칠 수 없다. 이 말들의 배경이 죽음이라는 것을 문맥은 정확히 암시한다. 최후에 모든 인간들은 평등하게 대하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만일, 돈이 죽음의 기준이라면, 부자는 영생을 얻어 결코 ‘무덤’을 보지 않을 것이다(9절). 죽음의 위협을 받고 그의 가난으로 상처를 입은 시편 기자에ㅔ 부자는 자기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지혜교사가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부자들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시각이다.
적어도 죽음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다. 10—1절이 잘 표현한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무덤’은 영원한 집이다. 불멸에 대한 헛된 소망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여놓은 부자들의 집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11절).
인간과 짐승은 죽음이 그들의 생명을 단절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지혜교사는 부자와 권세있는 사람들은 죽음에 직면해도 다소 유리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깨고 있다. 그들은 유리할 것이 없다. 죽음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3/부를 신뢰하는 행위의 어리석음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지혜교사는 이제 그의 관심을 그들의 어리석은 삶의 방식으로 돌린다. 그런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자 그는 죽음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부를 추구하려는 유혹을 제거한다.
권력있고 부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12절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다. 그러나 15절에 인용되어져 있는 그들의 말속에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담겨져 있다.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그들의 삶의 쾌적한 초원을 ‘스쳐지나가며’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죽음’이 이미 그들을 스쳐지나가고 있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삶의 초점이 지향하고 있는 ‘고상한 거처’가 아니다. 그들의 육체는 스올에서 소멸될 것이다.
시인은 부자의 운명에 대한 이러한 비참한 묘사와 대조하면서 확신의 말을 인용한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특권을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특권을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다. 죽음은 생명을 종결시키고, 명예와 부는 최후의 여정에 동반될 수 없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지혜교사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을 때 자신은 부를 가지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성공한 삶이 죽음에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확신을 타파하고 자 한다.
‘그가 생전에 축복받은’(18절)사람은 죽음에 관해서 쉽게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이 번영할 때 타인들의 찬사가 그러한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라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 49 편의 지혜교사는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2가지 두려움을 몰아낸다. 환난의 때에 원수에 대한 두려움(5절)과 부자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다소 유리한 점을 자리리라 생각하는 두려움(16절)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죽음안에서도 확실한 소망을 보게 된다.
주약교회 김광영 목사 수요예배
(고전 15:50-55)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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