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 되겠는 걸 이렇게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이런 모양으로 어떻게 뚫고 들어가겠소? 오늘은 그냥 돌아갔다가 내일쯤 다시 와 봅시다.”
사람들은 곧잘 지금은 안 되겠으니 다음에 해 보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도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결코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일이 있다. 우리에게 ‘내일’이란 영원히 오지 않는 어떤 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이 맑다고 해서 내일도 반드시 맑으라는 법도 없다. 비바람에 태풍이 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다 아웃렛 가서 옷을 하나 사는 일 따위는 내일로 미뤄도 좋을 것이다. 내일에도 아웃렛에는 옷이 있을 것이고, 옷을 오늘 당장 사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 목숨이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그렇게 한가로이 다음 기회로 미룰 수 없는 일이 있다. 오늘 이 한 사람에게는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되었다.
들것의 앞머리를 들고 선 친구가 말했다. “내일 다시 오자”
하지만, 중풍병자는 아마도 고개를 좌우로 힘껏 흔들며 대꾸했을 것이다.
“안 돼, 친구! 이대로 돌아가면 안 돼! 어떻게든 나를 그분한테 데리다 주게, 부탁일세!”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Sun 29th Sep 19
주약교회
본문: 막 2장1-8절
※ 본문과 씨름하며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하였다. 이 때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의 친구가 침상 채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무리가 너무 많아서 메고 들어갈 틈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건강한 두 다리가 있어서 언제고 마음 내킬 때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께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예수님을 모신 집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건강한 사람들중에 예수님을 뵈러왔다가 무리가 많아서 다음기회로 미루고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중풍병으로 몸져누워 스스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이 사람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다음기회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기회에 그분을 만나야만 했다. 그 분을 만나면 이 지루하고도 고통스런 인생이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들린 사람도 고쳐주시고, 온 몸에 문둥병든 사람도 온전케 깨끗하게 하신 그 분을 만나면 자신에게도 분명 무언가 구원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중풍병이 무엇인가? 몸의 반쪽이나 한쪽이 마비된 채 사용하지 못하는 질병이다. 중풍병이 걸려서 당장 죽는다든지 문둥병처럼 집에서 쫓겨난다든지 하는 정도는 아니었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무척 힘든 것임에는 분명하다. 본문에서도 스스로 일어나 오지 못하고 침상에 누인채 친구들의 힘에 의지해 예수님께 나오는 중풍병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어느 순간 다가온 이 중풍병은 사지를 굳게 만들고 마치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어느 날 잠자리에서 깨어난 이 사람은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 갑작스런 일에 자신과 가족들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어쨌던 중풍병자의 증상은 더욱 심해져 몸져누워 스스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이런 것이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인가?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 나에게 그 더러운 저주의 병이 옮았는가” 그는 탄식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를 만나기만 하면 어쨌든 지금의 이 저주스런 삶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우리 마을 가까이로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런데 마침 그가 우리 마을에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친구들을 졸라 자신을 예수님 앞에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졸랐을 것이고, 친구들도 그를 측은히 여기 침상에 맨채 예수님계신 집 앞까지 부랴부랴 달려왔던 것이다.
우리가 그의 친구들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나의 바쁜 일을 핑계로 그들을 외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 일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을까? 누군가 교회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친구를 교회에 데려오기 위해 시간을 내고 문자메세지를 남기고 약속을 잡고 그에게 관심을 써줄 마음이 있는가? 그 친구들은 스스로 예수님앞에 나오지 못하는 중풍자를 위해 침상 채 들고 예수님께 달려나왔다. 수많은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어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기와를 벗겨내고 구멍을 뚫어 병자를 침상 채 예수님 앞에 까지 내려다 놓았다. 중풍병자의 안타까움과 아픔에 진심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셨다.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병자를 달아 내린 친구들의 믿음을 보신 것이다. 그리고 선언하신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사건가운데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무리들이다. 그들은 예수님곁에 서서 그들이 예수님을 보겠다는 열심히 정말 지금 그분을 보아야할 이 병자에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병자와 친구들이 예수님께 곧바로 나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19절에 말씀처럼 이 무리 때문이다. 도로가에 아무리 차가 막혀도 앰뷸런스가 욍욍거리면 길을 터준다. 사람을 살려야 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빨리 가겠다고 앰뷸런스의 접근을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무리들은 친구들이 병상채 중풍병자를 데려온 심각한 상황을 보고서도 무관심하게 그들을 외면했을 것이다.
교회에 처음나온 방문자나 새신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싶어하는데 우리들의 불친절하고 무관심한 모습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지 못한다면 우리가 바로 이 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들인가? 그들의 길을 막는 자들인가? 그들은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를 보고서 예수님에 대한 인상을 갖게될 것이다. 저분이가 예수믿 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제대로 한 번 믿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가? 저사람처럼 되기 싫어서 교회 안다니겠다고 이야기 하는가?
어쨌든 친구들은 무리들 때문에 정문으로 예수님께 가지 못하고, 지붕에 올라갔다. 상상해 보자 지붕을 뜯어내고 그 아래로 침상을 내리는 장면을 예수님이 한창 설교를 하고 계신데 흙이 떨어지고 지붕에 구멍이 뚫리더니 햇빛이 비춰들고 그 사이로 뭔가가 내려오는데 중풍병자가 그 위에 누워있는 것이다. 아마도 집안의 사람들의 눈길이 그 쪽으로 쏠렸을 것이다. 집주인은 왠 사람들이 남의 집을 다 뜯어 놓느냐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붕위에서 그 친구들이 “이 사람을 꼭 받아주시오, 예수님을 꼭 만나야겠답니다. 이렇게 하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어요.”
중풍병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붕을 내려오며 눈을 감고 있다가 감고 있던 눈을 떳을 때 사방에서 따가운 눈총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며 웅성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음성이 들려왔다. “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바로 그토록 뵙고 싶어 하던 예수님의 그를 향한 자비로운 음성이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육신적 질병을 고침받을까 기대했지만, 예수님께 나온 그에게 그를 짓누르고 있는 영혼의 질병 곧 깊은 자신만의 죄의식에 대해 사죄를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질병의 근원이 죄에 있음을 아셨고, 그 근원을 치료하신 것이다. 단지 몸의 불편을 해소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삐뚤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아 주신 것이다.
이 때 이 선언을 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라는 저 친구 하나님을 모독하다니 대체 하나님 말고 누가 죄를 사할 권세가 있단 말인가?”하며 삐죽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다. “쓸데없는 일로 수근거리지들 마시오, 당신들은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으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는가? 그러나 이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당신들에게 증거해 보이겠소”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다가서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당신의 죄는 이미 용서 받았소. 그러니 여기 이렇게 누워있을 까닭이 없소 이제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시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중풍병자는 온 몸을 죄고 있던 음흉한 힘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던 몸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이러나 누워있던 침상을 걷어들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자신을 낫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갔다. 그에게 구원의 큰 기쁨이 임한 것이다.
※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그분의 우리의 당면한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지만, 고통의 근원인 죄를 지적하시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직 그분을 통하여서만 죄의 용서를 받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가는 일을 미루고 있지 않는가? 그분께 나아가는 일은 조금도 미룰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온 것처럼 그렇게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기도를 드리자. 내 현실의 문제뿐 아니라 고통의 뿌리인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절히 간구하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5절에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초청하고 이끌어오고 들려주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주변의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들이 천국을 소유하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전도초청주일 주제는 ‘아름다운 만남’이다. 우리가 4사람이 한 사람을 도와 그를 예수님께 데려온 것처럼 한 영혼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애정을 가져보자. 우리힘으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중보기도’ 카드를 만들었다. 직분자들이 매일 돌아가며 책임감 가지고 기도하자. 이름이 없어도 기도하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 (약5:15-16)
태신자 카드를 적고, 그를 초청하자. 모바일 초청카드를 만들었다. 안수집사님께 드렸으니 성도들에게 전송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초청할 태신자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초청장을 보내고 관심을 이끌어 내자.
나이가가라 폭포를 향해 외치는 외침과 같다. 지금은 물살이 잔잔하나, 곧 회오리와 함께 곤두박질 치게될 위기가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약교회 김광영 목사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 요엘서 말씀이 인용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0-21).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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