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구하는 자들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
마가는 2막(8장27절~10장52절)으로 넘어가기 앞서 1막 전체(1장14절~8장10절)을 돌아보며,
두 장면을 소개한다. 바로 본문의 표적을 구하는 자들의 이야기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에 대한 주의이다.
마가복음 전체구조
1:1 표제
1:2-13 서언
1:14-8:26 제 1 막 _ 갈릴리와 그 주변 지역 사역
8:27-10:52 제 2 막 _ 예루살렘을 향한 십자가의 길
11-16장 제 3 막 _ 예루살렘의 사역
■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 한 것이 문제다.
예수님께서 지금껏 행하신 이적들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 충분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기보다 오히려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보신 예수님은 ‘심령에 깊이 탄식하셨다’, 육체적으로 귀먹고 어눌한 자를 보시고도 탄식하신 예수님. 이제 영적 불구 상태의 바리새인들을 보시고는 더 깊이 탄식하신다.
또한 말씀하신다. ‘이 세대에게는 표적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거부하신다.
마태와 누가의 평행구들에는 ‘요나의 표적’은 허락하시겠다는 예외적인 언급이 있지만, 마가는 이 예외적 언급마저 생략함으로 예수님의 거절을 절대화 한다.
(마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눅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특히, 예수님은 ‘이 세대’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언급하신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서도 반응하지 않는 갈릴리의 유대인들 모두의 문제임을 선언하신다.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를 향하여 마음 속이 탄식하시며 표적 행하기를 거부하시는 주님. 바리새인들은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한 그들의 조상과 같은 자들이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날마다 주님이 베푸시는 말씀과 은혜속에 살면서도 여전히 주님께 표적을 구하고 또 의심하고 있지 아니한가? 주님의 속 깊은 탄식소리를 들어보자.
이 결정적 선언 후 마가는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지리적 이동과 동시에 바리새인과 ‘이 세대’를 위해서는 더는 사역하지 않으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이 사건이후 바리새인들이나 무리들과 연관된 사역은 뒤로하고 제자들을 위한 사역에 집중하신다.
■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
이 단락에서는 두 차례 먹이신 기적에도 불구하고 빵의 문제로 고민하는 제자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제자들의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배 안에는 그들에게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이 언급된 빵은 앞서 나온 두 차례의 먹이시는 기적들, 수로페니키아 여인과의 대화를 회상하도록 해 준다. 오천명와 사천 명의 무리들 그리고 수로페니키아 여인처럼 이제 ‘제자들’도 먹을 빵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 개의 빵’은 그들 모두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이 난처한 상황에 예수님의 경고가 주어진다. ‘주의하여라.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앞 단락에서 드러난 바리새인들의 위험한 경향이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 같다.
예수님의 경고에 ‘헤롯’(헤롯 안티파스)의 위험이 경고된 것은 의외이다. 지금까지 레롯을 예수님의 직접적인 대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고, 다만 3:6에 헤롯당이 언급된다.
(막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한편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헤롯당은 바리새인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막 12: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누룩’ 신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악한 세력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상징한다. 마가복음 문맥에서는 아마도 ‘바리새인들과 헤롯’이 제자들에게 끼칠 수 있는 위험을 포괄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로부터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로 인정받던 그들은 제자들의 흠모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의 예수님의 중대한 경고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단지 ‘빵’을 가져오지 않은 당면 문제에 집착한다. 가르침의 핵심은 놓치고 자신의 관심사만 집착하여 엉뚱한 오해에 빠진다.
예수님은 나무라신다. ‘왜 너희는 빵이 없다고 의논하느냐?’ 바로 얼마 전 많은 무리를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이 적어도 빵의 문제로 염려해서는 안 되었다.
‘너희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굳어졌느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오병이어 사건, 또 4천명을 먹이신 사건 그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떡이 없는 것을 염려하는 제자들,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다. 말씀을 속히 받지만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해 이내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성경 읽고 묵상하며 예배드리지만 어려움이 생기면 곧 믿음을 버리고 마는 제자들과 닮아있지 아니한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탄식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 내 가슴에 내리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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